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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원폭’ 설움 달랜 추석… ‘극한반대’에 갇힌 여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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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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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석/ 정치부 차장

   
 

“윤석열 정부 외교의 결정적 장면은 3월 한일 관계 정상화다.”

대통령실의 한 참모는 윤석열 대통령의 3월 방일, 4월 국빈 방미, 5월 한일 셔틀외교, 8월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로 이어지는 외교 드라이브의 가장 결정적 순간을 방일로 평가한 적이 있다. 한미 핵협의그룹(NCG) 가동, 미 상·하원 의회 합동 연설,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선언이라는 결실은 곧 한일 관계 정상화에서 잉태됐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다. 3월 16일 도쿄 하네다 공항에 착륙한 대한민국 공군 1호기에 일본 국기가 나부끼던 모습은 얼어붙었던 한일 관계를 감안하면 기자에게도 상당히 생경한 장면이었다.

이 말이 문득 다시 떠오른 것은 추석 연휴를 맞아 윤 대통령이 초대한 원자폭탄 피해 동포 초청 오찬 간담회를 바라보면서다. 5월 히로시마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한 윤 대통령은 약속대로 이들을 고국으로 초대했다. 78년 동안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소외됐던 이들이다. 5월 히로시마에서 91세의 원폭 피해 할머니가 한국 대통령 손을 두 손으로 감싸고 얼굴에 갖다 대는 모습에서는 간절히 바라던 바를 이뤄낸 소녀의 마음 같은 게 느껴졌다. 윤 대통령은 너무 늦어 죄송하다며 “다시는 여러분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피해자이지만, 피해자라고 말하지 못하고 숨어 살고 있던 이들을 양지로 끌어올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78년간 응축된 한과 고통의 ‘신원’(伸冤·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 버림)을 본다.

윤 대통령이 거센 비판을 감수하고 한일 관계를 개선해 생긴 이 같은 새로운 흐름의 성패를 섣불리 속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해법 문제에 대한 일본의 호응 조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더해 최근 또렷해진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을 바라보면 변수는 더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국외자의 아픔과 소외를 외면치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 공동체의 울타리 안으로 품어낸 것은 의미 있는 지점이다. 외교와 정치,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抽象)이 늘 서로를 증오케 하는 언사와 대립으로 우리 눈앞에 현상화되어 왔다면, 이번만큼은 어떤 정치가 구체적 개인의 삶과 의미를 개선해낼 수 있다는 증표로 기능한 게 아닐까. 최소한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는 유의 분열적 언사가 이역만리 개인의 삶을 구원하지 못했음은 분명해졌다.

시야를 국내로 돌려 우리 정치는 우리 안의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공동체를 튼튼히 하는 기능을 해내고 있나. 야당은 대선 1년 5개월이 지나도록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수렁에 빠져 있다. 여당도 민생을 외치지만 야당과의 대치 속에 대립과 반목의 언사만 눈에 띈다. 대통령실은 야당 대표와의 만남엔 손사래부터 친다. 소통 없는 ‘극한 반대’로 가득한 이 추상은 어느 것 하나 온전히 품고 보듬기 어렵다. 발 딛고 선 현실을 개선하기보다 타인의 실패를 자기 영속의 발판으로 삼는 이들만 유리해지는 구조 아닌가.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놓인 팻말 글귀처럼 책임은 결국 용산이 져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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