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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작문시대’ 한글의 가치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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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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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원 / 국립국어원 원장

   
 

이 세상에는 약 6800여 개의 언어가 있다. 활발히 사용되는 언어는 4000개 정도다. 반면 문자의 수는 훨씬 적다. 고유 문자가 아닌 문자, 예를 들어 한자에서 파생된 거란 문자, 여진 문자, 이두 문자, 가나 문자 등의 파생 문자를 제외하면 12~16개의 문자 체계만 인정받는다. 그 가운데 우리의 고유한 문자, 한글이 있다.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찬탄한 사람은 국어학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외국인 학자로 ‘총, 균, 쇠’로 유명한 미국의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있다. 그는 한국이 오늘날처럼 경제성장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로 한글을 꼽는다. 한국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제일 낮은 것은 한글 자모의 모양이 간결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한글이 만들어졌을 때 아침나절이면 다 배울 수 있다고 ‘아침글’이라 불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또 그는 한글은 음소문자로 만든 후 음절 단위로 모아 적음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문자 체계가 되었다고 간파했다.

현대사회에서 문자의 가치는 기록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문자의 궁극적 가치는 타인이 쓴 글을 읽어 이해함으로써 남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훌륭한 문자는 가능한 한 적은 에너지를 들여 기록화가 가능해야 할 뿐 아니라 이 기록물을 최대한 빨리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한글이 바로 그런 문자다. 기계화 시대에 한글은 더욱 빛을 발한다. 한글날을 앞두고 세종대왕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면 이렇게 뛰어난 한글로 우리는 무얼 하고 있나. 기록을 남기는 일? 남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을 한다. 우리는 글을 쓰고 읽으며 생각을 한다. 물론 생각하는 건 말이 먼저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제일 먼저 익힌 제1언어로 생각하니까. 그러나 말은 시간적 제약을 받는다. 게다가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이것이 말의 특징인 일회성이다. 제아무리 총명한 사람도 말하면서 깊은 생각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글은 다르다.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기록할 수 있고, 고쳐 쓸 수도 있다. 고쳐 쓴다는 건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는 일이요, 생각을 정리하는 단계고, 생각을 발전시키는 작업이다. 한글로 글을 쓰는 우리는 훈민정음 이전 시대보다 훨씬 행복하다. 생각은 한국어로 하다가 그 생각을 적으려면 한자를 사용해서 중국어 문장을 만들어 내야 하던 시기에 어찌 비하랴. 생각이 그대로 말이 되고 글이 되는 시대, 그것이 한글 시대다. 세종대왕 덕분이다.

인간을 대신해 글을 써주는 인공지능이 나와 세상이 떠들썩하다. 글만 써주는 게 아니다. 책도 대신 읽어주고 편집까지 대신해 준다. 과학 발전의 정수다. 앞으로 글 쓰는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이건 착각이다. 인공지능이 나 대신 글을 쓰게 만들려면 무얼 어떻게 쓰라고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이 결정은 언어로 생각해야 내릴 수 있다, 깊이 있는 생각은 글을 통해야 가능하다. 글을 대신 써주는 인공지능도 우리의 생각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한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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