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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안보지형 변화, 남의 일이 아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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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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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 도쿄 특파원

우크라이나 전쟁 계기로 안보 정책 숙원 푼 日
韓, 국운 좌우할 급변 정세 대응할 준비 돼 있나

“오늘의 우크라이나는 내일의 동아시아가 될지 모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개월여 만인 지난해 5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영국을 방문해서 이렇게 밝혔다. 불과 그 몇 개월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이던 이재명 대표가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고 말하고,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이 대표 지지자들이 “뭐가 문제냐”고 감쌌을 때다. 국회의원을 비롯해 당시 일본을 방문한 한국 측 인사들은 “일본 언론은 왜 그렇게 우크라이나 전황을 열심히 보도하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남의 나라 일이었다.

주요 7개국(G7) 회원국으로서 일본이 미국 유럽을 따라 러시아 규탄에 나선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해될 당시 ‘동아시아가 우크라이나처럼 될 수 있다’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에 ‘과한 것 아닌가’라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진심이었다.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순수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 북한이 연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중국이 대만 위협 수위를 높이는 현실에서 절박한 생존책이자 동아시아 주도권을 중국에 넘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준비했다. 한국이 문재인 정권 말기 현실성 없는 종전 선언과 대선에 빠져 있을 때 일본은 세계사적 변화를 간파하고 안보 정책 방향을 과감히 틀었다.

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수사가 아니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도 해내지 못한 적(敵)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현실로 이뤄냈다. 동아시아 안보가 당장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일본의 우려를 군사 재무장이나 군국주의 회귀로 본 서방 국가는 없었다. 도쿄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지를 끌어냈고 G7 지지도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사상 첫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2% 확보와 중국을 겨냥한 미사일 배치는 그렇게 완성됐다. 얄미울 만큼 글로벌 정세 변화를 감지해 현실에 맞춰 국가 안보 정책을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은 1990년대부터 30여 년간 이어진 ‘탈냉전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다. 이제까지의 국제질서 문법으로는 있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때 G8이던 러시아가 국제법을 아랑곳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도, 올리브 가지에서 꽃이 필 줄 알았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 소나기 로켓 공격과 무자비한 인질 납치가 벌어진 것도 기존 세계질서의 균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한국이 급변하는 국제질서 현실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제대로 판단하는 것인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가 문제다.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면 정권이 멸망할 것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난 판단을 해서 행동할 때 우리는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긴박한 지정학적 정세 변화를 과연 제대로 읽어내고 있는 걸까. 현실과 동떨어진 ‘한반도 운전자론’에 빠진 지난 정권도 반성해야 하지만, 정치적 수사에 가까운 거친 말 말고는 이렇다 할 메시지를 내지 못하는 현 정권 역시 미덥지 못하다.

‘현상 변경’을 시도한 러시아의 위협으로 ‘안보 강화’라는 묵은 숙제를 풀어낸 일본의 움직임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수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글로벌 안보 지형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은 지난 100여 년간 한반도 근현대사가 보여준다.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도 쉽지 않은 숙제 앞에서 조선시대 당파 싸움을 재연하는 듯한 한국의 여야 정쟁은 너무도 한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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