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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인재단 박상원 회장, 그는 누구인가
이구홍  |  ok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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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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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홍 / 본지 발행인]

지난 10월 4일 ‘세계한인회장대회’ 참석 차 서울에 온 세계한인재단 박상원 회장님을 반갑게 만났다. 그 이전 중국 조선족동포 행사에서도 우연히 만났다. 박 회장을 처음 뵙게 된 것은 그가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한국을 자주 방문했을 때부터이니 꽤 오랜 세월 교류한 셈이다. 다정하고 온화한 인품을 지니신 분이다. 박 회장이 지난 10월 6일 본소를 방문하여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편집자 주]

   
▲ 세계한인재단 박상원 회장.

Q : 박상원 회장님은 언제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게 되었는지요.
박상원 회장: 당시 한국인이 미국으로 이민가게 된 사연은 잘 알다시피 대개 비슷합니다. 새로운 삶을 찾아서, 자식 교육을 위해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등등의 이유로 물설고 낯선 땅으로 이민 간 것처럼 저도 1982년 2월에 잘 살기 위해 미국으로 갔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아시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재미한인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이사장님과 같은 전문가들 뇌리에나 남아 있을 이야기입니다.
저에게 ‘재미한인독립운동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분을 대라면 저는 단연 서재필, 박용만, 이승만, 안창호 네 분을 꼽겠습니다.

박용만 장군은 군인이 아닌데도 장군이라는 호칭이 붙은 분입니다. 우성 박용만은 1905년 2월 6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네브라스카 대학교에서 군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한인 최초의 미국 ROTC 출신이며 재학 중에 한인소년병학교을 설립해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박용만 장군은 미국 국민들을 향해 한국은 원래 독립국가로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로서, 일본의 침략에 의해 강제 병합된 나라이기 때문에 재미한인들의 독립투쟁운동은 지극히 정의로운 행동이다라는 홍보전에 주력했고 임시정부 격인 가정부 대한인국민회 헌장을 직접 만든 분입니다.

따라서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 박사와 사상가 안창호 선생이 미국에서 국민회 활동에 깊이 관여하기 전에 선구적으로 앞장섰습니다. 1908년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 부두에서 전명운, 장인환 애국지사가 고종황제의 외교 고문 미국인 스티븐슨 암살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구명운동과 독립투쟁을 실행한 분입니다. 대국민 홍보전을 전개하는가 하면 그해 7월 11일에는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애국동지 대표회의를 통해 위태로운 조국을 구하기 위해 당대의 한인 지도자들을 한곳에 모여 방략을 수립했고 한국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기고 형식의 글을 통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용만 장군의 이와 같은 노선은 일본의 압도적인 국력과 재미 일본계사람들의 방해 공작으로 실효성이 떨어지자 이때부터 독립운동의 방향을 틀어 ‘군사학교’ ‘비행학교’ 등을 세워 무력투쟁 방향으로 전환합니다. 한편, 이승만 박사는 ‘동지회(同志會)’를 1921년 7월 7일에 하와이에서 창립했고 안창호 선생은 ‘흥사단(興士團)’을 1913년 5월 13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했습니다.

이때부터 재미한인사회 특히 독립운동 단체는 분규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승만 박사는 당시 흔치 않은 박사학위 소지자요, 미남 청년에 달변가이다 보니 이승만 박사 주도의 동지회로 이탈자가 많았고, 국민회는 크게 위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승만 박사를 하와이로 와서 독립운동을 펼치도록 주선한 분이 제 집안 할아버지 우성 박용만 장군입니다. 신한민보 주필로 한국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기고하고 대동단결을 주창하여 대한독립선언서를 함께 서명한 의형제 이승만 박사와 하와이에서 독립 노선의 갈등으로 깊은 상처와 불미스러운 관계로 추락했습니다.

그후 한국 광복과 더불어 이승만 박사가 집권하자 이승만 박사 주변에는 미국에서 박용만의 국민회에 가담했던 인사들은 모국 방문조차 여의치 않았고 이들은 박용만의 이름 석자를 지우는데 혈안이 되었으며 심지어 ‘재미한인독립운동사’와 같은 서적의 본국 반출조차 김포공항에서 철저히 제지당했던 것입니다.

제가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 사무총장으로 봉사하며 집안 할아버지이신 우성 박용만 장군에 대해 많은 업적과 정신을 이해하게 되었고 아울러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에 연류되었던 독립운동 가족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안은 박용만 장군의 일가이고 독립운동에 연류된 이유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내 아버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으셨습니다.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 애국선열 합동 추모 사업을 추진하며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 역사와 수많은 애국 지사들의 애환을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라도 나서서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아 나서겠다고 생각해 ‘박용만기념재단’을 설립했고 내가 미국으로 이주해온 것은 필연적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2003년 1월 13일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 퍼레이드가 하와이 호놀룰루 시내에서 펼쳐졌다.

Q : 그동안 미국에서 어떤 일을 주로 해오셨습니까?
박상원 회장: 미국에서 처음에는 운송사업을 시작해 기반을 마련했고 그후 부동산 개발 쪽 일을 하다가 1992년 4월 29일에 LA폭동이 일어났어요. 이를 계기로 재미 한인 동포사회의 보호와 권익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이러다 보니 생업인 기존 사업을 병행하기에는 어려웠어요. 그래서 대학 학위과정의 통신교육사업 온라인대학교를 설립했어요.

하지만 그때가 90년대 초반이어서 인터넷도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은 시대였어요. 너무 일찍 시작하다 보니 제가 설립한 통신대학교교육사업은 실패를 하고 지금은 온라인대학교 총장으로 한인 커뮤니티에 주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중에서 가장 비중 있는 것이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이 되겠습니다. 제가 당시 ‘미주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맡았습니다. 40대 초반이었어요.

2003년도에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을 하와이를 중심으로 미주 전역에서 성공리에 잘 마쳤습니다. 그때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 기념행사에 노무현 대통령께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 세계한인재단 박상원 회장과 이구홍 본소 이사장이 대담을 하고 있다.

‘100주년기념사업회’는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잔치를 하기 위하여 구성된 단체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NGO로서 미국 전체를 하나의 이슈와 미션을 두고 행사를 한 건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유일합니다. 이 기획은 미주 한인 이민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뜻에서 추진한 것인데 많은 재미동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각 지역별로 하와이는 하와이 자체적으로, 로스앤젤레스, 뉴욕, 워싱턴D.C, 샌프란시스코 등 각 지역에서 미주 한인 이민 역사를 되새기는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그리고 저희 100주년 기념사업회 총회장을 맡으셨던 故김창원 회장님은 하와이 첫 이민선을 탄 한인의 후손이기도 합니다만, 김창원 회장님이 아버지, 어머니의 생일날을 기념사업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본인이 그 집안에서 태어나서 하와이에서 크게 성공을 하셨기 때문에 미주 한인 이민 90주년, 95주년 행사를 잘 치르셨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미주 한인사회가 이렇게 규모가 큰 데 하와이만 대표할 수는 없다. 미주 한인사회는 이미 250만 명이나 되는 큰 규모로 성장되어 있고 하와이는 그저 한인 4만여 명 정도만 살고 있는 일개 주에 불과한 데 미국 본토와 연계되는 단체와 함께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주 한인의 대표단체인 미주한인회총연합회와 연계하여 미주한인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설립하고 공동으로 지난 2003년 100주년 기념사업을 성대히 마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단체나 주인이 있어야 하거든요.

미주한인회총연합회는 2003년 6월에 총회장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었어요.
새로 취임하신 회장은 이 기념사업회에 대하여 생소하였고 김창원 회장님은 2003년 말까지 기념사업회 임무를 완수하였어요. 하지만 김창원 회장님의 생각은100주년 기념사업을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단체이니 기념잔치를 잘 마쳤으니 ‘이제는 해산이다’ 이러시는 거예요. 그러나 현재 제가 사무총장을 맡고 있으니 각 지역 회장님들께 제가 호소를 한 거죠.

지난 세월의 100년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또 다른 100년, 200년, 미래에 대한 비전과 우리 한인사회의 단합을 위한 그러한 단체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렇다면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해산할 것이 아니라 여기서 했던 역할과 기능을 존속하면서 새로운 조직이 승계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김창원 총회장님의 생각은 단호하셨어요.

제가 비록 사무총장이지만 회장님의 뜻을 배반할 수도 없고 해서 이것은 동포들의 총의에 따른 문제이기 때문에 2003년 5월 9일 워싱턴D.C의 전국 총회에 안건을 올렸어요.

기능과 역할을 존속해서 미래로 가자는 것과 기념사업회를 해산하자는 두가지 안건을 올렸는데 단 한 표 차이로 존속하자는 안건이 채택되었습니다.

그래서 단체의 이름이 ‘미주한인재단’으로 정해졌고 하와이 이민선이 처음 도착한 1903년 1월 13일을 미주 이민의 출발, 즉 생일날로 정하자는 안건을 올려서 그날의 이름을 ‘미주한의 날(Korean American Day)’로 정해서 이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하는 결의안을 100주년 기념사업회에서 의결하고 단체명을2004년 1월 1일부터는 「미주한인재단」으로 개칭하고 기념사업회의 기능과 역할을 존속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미주한인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하는 법안을 위해서 2004년 1월 12일에 캘리포니아주 상하원에서 만장일치로 제정결의안이 통과됩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월 13일 LA시의회에서 선포식을 가졌고 2005년 12월 13일과 16일 양일에 걸쳐 ‘미주한인의 날’이 연방의회에서 통과되면서 지금 미주한인사회에서는 최고의 기념일로 되었던 것입니다.

Q : 세계한인재단에 기대하는 바가 매우 크겠군요.
박상원 회장: 이구홍 이사장님께서 재외동포재단에 계실 때도 역할을 해주셨습니다만 ‘미주한인의 날’이2005년 12월에 미 연방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았습니까. 그때 저는 정말 스타가 되었지요. 김영진 의원님이 저를 픽업해서 ‘세계한인의 날’ 제정에 대한 국민청원운동, 연대서명운동을 해서 국회의장한테도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매년 10월 5일을 ‘세계한인의날’로 지정하고 2007년 5월에 국무회의에서 결정되었습니다. 그때 외교부 송민순 장관 때였습니다.

그때는 ‘세계한인의 날’ 행사를 따로 했었습니다. 그 뒤로는 ‘세계한인회장대회’와 같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석하면서 저의 의견을 내놓는 자리가 마련되었기에 의견을 냈습니다.

‘세계한인회장대회’는 대회 대로 하고, ‘세계한인의 날’행사는 따로 해야 된다, ‘세계한인의 날을 세계한인회장들을 위한 날’로 기억되게 해서는 안된다고 강력히 제안했습니다.

지난 2012년에 ‘세계한인의 날’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당시 여러 지역에서 버스로 사람들을 동원하더라고요. 그때 느낀 바로는 ‘세계한인의 날’이 노무현 정부 때 제정된 것이기에 이명박 정부때 와서는 이를 홀대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울분을 넘어 비참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짓거리를 이명박 대통령이 시켰겠어요? 공직사회의 모순처럼 아부하려고 짜낸 짓거리 아니겠어요. 그래서 제가 이래서는 죽도 밥도 안되겠다는 생각에 ‘세계한인재단’을 설립했던 것입니다.

모국정부가 기념일을 이런 식으로 한다면 우리NGO들이 임의의 단체로 세계한인들과 함께 우리의 형편에 맞게 ‘세계한인의날’을 기념하겠다. 그래서 2012년부터 매년 저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기념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계한인재단’을 설립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입니다.

‘세계한인의 날’을 준수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가 ‘세계한인재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미국에 세계본부를 두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시대 애국운동, 이 시대 지도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가슴에 있는 것, 염원 속에 있는 딱 한가지를 뽑아서 주장하라고 한다면 저는 ‘평화통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 너는 무엇 때문에 평화통일을 주장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세계한인재단’ 이름으로 미국의 국가 기념일, ‘미주한인의 날’ 행사를 대한민국에서 하겠습니다. 그래서 ‘제1회 대한민국미주 한인의 날 기념대회’를 금년 1월 27일에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성대하게 개최했습니다.

   
▲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이 지난 1월 27일 오후 서울 용산에 위치한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개최한 ‘제1회 대한민국 미주한인의 날 기념대회’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이 대회를 개최한 이유는, 현재 한국에 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주한미군, 그 가족들, 그리고 대사관과 외교관, 또 주한미국상공인, 여러 기업인, 유학생, 방문자 등 약 10만 명 이상이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더 많은 미국인이 와서 살게 하고 한편 미국에서는 더욱 많은 한인(Korean)이 살아가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자랑스럽고 위대한 대한민국에 와서 살고 있는 미국인들, 이분들께 미연방의회에서 제정한 ‘미주한인의 날’이 있다는 것을 알릴 뿐만 아니라 이 기념일을 준수하고 기념하는 일은 대한민국과 우리 한민족한테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이를 통해서 한국의 평화통일 운동을 펼쳐나가고자 합니다.

이날은 물론 서울에 주재한 각국 대사 모두를 초청했습니다. 미8군사령관을 초청했더니 사령관이 다른 일정으로 못오시고 대신 부사령관을 보내셨고, 그리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도 참석했습니다. 이번대회는 세계한인재단, (사)한미협회, 대한민국헌정회, 평화통일법국민운동본부, 한국계미국시민협회(LOKA-USA)가 공동 주최했습니다.

이 운동을 통하여 이구홍 이사장님께서 도와주실 것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멘토로서 도와주시면 됩니다. 저는 이러한 운동을 통해 미국을 두들겨야(Knocking)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Knocking하​냐면 우리가 우선 워싱턴D.C에 미주에 있는 한인 지도자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참석하기 어려우니 NGO에 있는 지도자들이 운집하는 것입니다.

제가 구상하고 있는 플랜은 “we have (a) dreams”입니다. 마틴 루터킹 목사는 혼자서 꿈을 가졌다고 해서 “I have a dream”이고 우리는 공동체로 “we have (a) dreams to be happy together”입니다.

Q: 회장님의 꿈과 이상이 친미파 활동이 아니냐고 오해한다면.
박상원 회장: 오해는 될 수 있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얘기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종교단체 등 여러 곳에서 활동을 합니다만, 저는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가 지금 미국한테 책임을 묻는 운동입니다. 대한민국 분단의 근원인 DMZ-3·8선은 미국이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지난 70년 이상 방치했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젊은이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카스라·테프트 협약’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미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American citizen 즉 내가 대통령도 뽑는 유권자로서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 운동에 나서야 됩니다. 이 운동은 정치인들이 못합니다. 미국 정치인들에게 한반도 Line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美 대통령 후보자는 이에 대한 공약도 할 수 있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재미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저들은 자기들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공개적으로 성명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발표합니다. 우리 재미한인사회도 이미 연방하원의원을 5명이나 배출한 저력이 있습니다. 저는 ‘세계한인재단’을 통해서 이러한 운동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끝으로 분단 조국의 한(恨)을 안고 사는 세계한인동포사회에 간곡한 부탁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평화통일, 이 과업은 ‘우리 내외동포가 기필코 이룩해내야 할 일이고, 반드시 실현할 수 있는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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