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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총리의 실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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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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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

   
 

영국의 중앙 일간지는 1면에 정치 기사를 싣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그들이 역사상 두 번 정치 문제를 1면 톱 기사로 다룬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제2차 대전 발발 소식이었고, 두 번째는 윈스턴 처칠(1874~1965)의 사망 기사였다.

처칠의 할아버지는 아일랜드 총독이었고, 아버지는 재무상(장관)이었으니 진골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군인이 되고 싶어 3수 끝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군 생활을 시작했다. 영국의 식민지 개척 전쟁에서 세운 공로로 군수상·육군상·공군상·재무상·해군상이 될 만큼 관운도 좋았다.

육사 출신이 공군상과 해군상이 되다 보니 “영국의 병력을 다 말아먹었다”는 구설도 들었다. 그러나 처칠은 스스로 비칭(丕稱)했듯이 ‘불독’ 같은 추진력으로 1940년에 드디어 수상(총리) 자리에 올랐다. 그런 부귀를 누리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아 평생 우울증의 고통을 잊으려고 그림을 그려 일가를 이뤘다.

제2차 대전 중 총리가 된 처칠은 카이로회담(1943년 11월)과 얄타회담(1945년 1월)에서 건강이 좋지 않은 루스벨트와 스탈린을 압도했다. 석양의 노제국인 영국의 체면을 유지하면서 세계 4대 강국의 지위를 지키고 있었다. 문제는 2차 대전의 종전이 임박하자 전후 처리를 위해 만난 포츠담 회담(1945년 7월) 때였다. 회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집권 보수당이 총선에 패배해 수상직이 날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동안 전공(戰功)으로 보아 재집권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던 터에 회의하다가 짐을 싸 귀국하려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영문도 모르고 중도에 포츠담 회담에 참여한 후임 수상 애틀리(노동당)는 스탈린과 루스벨트의 이야기만 듣다가 귀국했다. 비정한 국제정치에서 외교에 성공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내정이 안정되지 않으면 그 허다한 외교 성과가 모두 덧없다. 처칠이 남긴 정치적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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