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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엔저, 슬픈 엔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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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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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 논설위원

   
 

일본에서 엔저 앞에 ‘와루이’(나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은 건 지난해 봄이다. 엔화 가치가 이른바 ‘구로다 방어선’이라는 달러당 125엔을 뚫고 내려가면서다. 통상 엔화가 약세일 때 수출 기업의 실적 호조를 앞세워 경기를 회복시켰는데, 이런 경로가 먹히지 않는다는 거였다. 엔저의 긍정적 효과보다 수입가격 상승이 쏘아올린 물가 급등, 무역수지 악화 등 악영향이 크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일본 재무상도 “그만큼 임금이 오르지 않으니 나쁜 엔저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국제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150엔을 넘어 152엔 수준까지 근접했다. 152엔마저 뚫는다면 엔화 가치는 버블 경제 붕괴 초반이던 1990년 이후 3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 된다. 엔화는 1985년 플라자 합의 때 ‘엔고’를 조건으로 세계 3대 통화가 됐지만, 버블 붕괴와 함께 엔고가 디플레이션을 몰고 오면서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에 진입했다.

30년여 만에 맞은 초(超)엔저는 팬데믹 이후 전 세계가 금리를 끌어올리는 동안에도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한 영향이 크다. 특히 10년간 아베노믹스 집행관으로 있던 ‘엔저론자’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올 4월 떠나고 신임 총재가 들어선 뒤에도 무제한 돈 풀기가 계속되면서 엔저의 질주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사이 미국은 금리를 더 올려 금리가 낮은 엔화를 팔고 금리가 높은 달러를 사는 ‘엔캐리’ 자금이 엔저를 부추기고 있다.

엔저 특수에 힘입어 일본 수출 기업과 관광 산업은 역대급 호황을 맞았다. 엔화를 헐값에 사서 일본 주식을 사려는 외국인 자금이 몰리면서 증시도 훨훨 날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일본 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긴 탓에 수출 기업의 실적 개선이 임금 인상과 가계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는 끊겼다. 오히려 엔저로 엔화 구매력이 바닥으로 추락해 일본 국민은 더 가난해졌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물가 상승에 100엔숍이 사라졌고, 관광객이 넘치는 대로변 쇼핑가와 달리 뒷골목 상점은 눈물의 폐업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나쁜 엔저를 넘어선 ‘가나시이’(슬픈) 엔저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데도 일본 정부는 디플레이션에서 확실히 탈출하기 전까지 엔저에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경합하는 한국 주력 제품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과거 원-엔 환율이 ‘1 대 10’ 비율보다 하락하면 한국 경제가 감기에 걸렸는데, 지금 100엔당 860원대까지 낮아졌다. 슈퍼 엔저 장기화의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우리 경제 구조를 고도화하고 수출 경쟁력을 더 높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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