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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선교사들의 한국 사랑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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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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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영국 의회에서 수교 140주년을 맞는 한영 양국의 인연을 언급하면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 독립유공자로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스코필드 박사와 함께 선교사 존 로스를 거명했다. 대통령 연설은 미국 선교사들에게 가려 덜 주목받았지만 이 땅에서 인류애를 실현했던 영국 선교사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한반도에서 영국 선교사와의 인연은 비극으로 시작됐다. 영국 웨일스 출신의 로버트 토머스 선교사는 1866년 조선 선교의 꿈을 품고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대동강에서 조선군에게 붙잡혀 27세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을 들은 모친은 “내 아들을 죽인 조선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로 주위를 숙연케 했다. 또 다른 선교사 존 로스는 “토머스 선교사의 뜻을 내가 이루겠다”며 자원하고 나섰다.

로스는 한글의 우수성에 가장 먼저 주목한 서양인이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접한 한글에 매료돼 1877년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을 발간했다. 교재를 펴내며 조선인도 생각지 못했던 한글 띄어쓰기를 최초로 도입했다. 독립신문이 시작한 한글 띄어쓰기보다도 19년이나 앞섰다. 최초의 한글 성경도 그가 펴냈다. 조선 선교에 관심 많았던 이들에게 1만5000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조선 알파벳은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완전하다”며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도 힘썼다.

로스 말고도 여러 영국 선교사가 한국 사랑을 실천했다. 1910년 식민지 조선 땅을 밟은 여성 선교사 엘런 홉스는 과음과 흡연의 폐해로부터 조선인을 구하겠다며 거리 금주 캠페인을 펼쳤다. 학교에선 영어도 가르쳤다. 과로로 약해진 몸에 이질이 닥치자 이겨내지 못했고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묻혔다. 해방 후에도 도움은 계속됐다. 1966년 의료 선교사로 파견된 피터 패티슨 박사는 마산에 터잡고 척추결핵을 앓는 어린이 1만2000여 명을 무료로 치료했다. 기술 강습소를 열어 완쾌한 청소년의 자립도 도왔다.

패티슨 박사는 한국이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돋움해 나가는 걸 보고 1982년 영국으로 돌아갔다. 80대 고령이지만 살아 있다면 한국 대통령의 영국 의회 연설 장면과, 영국 총리가 방산·바이오·반도체 등 한국의 유력 산업을 거론하며 “양국 협력을 확대하자”고 하는 모습을 봤을 것이다. 한 세기 전, 낯선 땅에 찾아와 희망의 씨앗을 뿌렸던 선교사들도 하늘에서 보며 뿌듯해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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