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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은 옳은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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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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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 / 문화심리학자

   
 

문화란 익숙함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한 문화 안에서 살아가다보니 거기서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친근하고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도 어렸을 때 먹었던 집밥의 맛을 잊지 못하는 이유이고 이민자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모국을 그리워하는 이유다. 문화란 사람들이 호흡하는 공기와 같아서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그 영향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익숙함의 예는 냄새다. 문화에는 냄새가 있다. 일단 환경이 다르다. 일조량과 강수량, 토질이 다르고, 자라는 동식물, 집 짓는 재료, 해 먹는 음식이 다르다. 당연히 냄새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 문화의 냄새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익숙한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신경을 쓰고 맡으면 분명히 구별되는 냄새들이 다른 나라에는 있다. 경험상 그 냄새는 그 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 옷에 밴 냄새와 비슷하다. 필자의 개인적인 느낌은 어떤 음식을 먹고 트림한 냄새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체취가 섞이다보니 그렇게 느껴진 것 같은데 언짢으신 분들이 계실까봐 미리 사과를 드린다.

중국에 갔을 때는 공기 중에서 기름에 튀긴 고기요리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돼지기름에 볶은 청경채와 녹차, 그리고 행주로 닦은 나무 식탁 냄새. 처음에는 들렀던 식당에서 맡은 냄새라고 생각했지만 주의를 기울여 맡아보니 중국(필자가 방문한 도시는 서안이었다)의 공기 중에 기본적으로 떠도는 냄새 같았다.

이 경험이 신기했던 필자는 돌아올 때는 공항에서부터 코끝에 신경을 집중했다. 우리나라에도 우리나라의 냄새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공항에서 나와 시내 지하철에 올라서자 약간 매콤하고 알싸한, 굳이 말하자면 밥을 물에 말아 김치랑 먹은 사람 냄새가 느껴졌다. 식재료로 따지자면 고춧가루와 마늘 냄새.

왜 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한테서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하는지 알 것 같은 냄새였다. 실제 냄새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냄새는 나라마다 있다. 차별적으로 쓸 표현은 아니지만, 한국이 마늘 냄새가 난다면 중국은 돼지기름 냄새, 일본은 쓰유(일본식 간장) 냄새, 미국은 버터 냄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냄새는 정작 자국인들은 모른다.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갔을 때 느껴지는 설렘에는 낯선 곳이 주는 불안감과 함께 익숙지 않은 냄새도 포함된다. 한편 귀국했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에는 익숙한 냄새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특정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자기 문화의 냄새에 익숙하고 그것에 안정감을 느낄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프랑스 같은 유럽 나라들의 거리에서 풍겨오는 영 좋지 못한 냄새도 이 익숙함 때문은 아닐까. 유럽은 로마 시대 이래로 공중화장실이 유료인 데다가 그마저도 흔하지 않다. 거리에 설치된 공중화장실들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데서 소변을 봐야 하는 민망한 외양도 문제지만 그 용량도 몹시 부족해 내용물이 길바닥으로 흐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화장실이 따로 없고 요강 같은 변기를 사용한 뒤 집 밖에 버리는 식으로 처리를 해왔다. 거리엔 오물이 넘쳐났고 이는 베르사유궁 같은 궁전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독한 냄새를 가리기 위한 향수를 위시해 오물을 피하기 위한 하이힐이나 망토 같은 복식, 여성을 길 안쪽으로 걷게 하는 예절 등이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오랫동안 이 냄새 속에서 살아온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냄새가 있어야 안정감이 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어본다고 대답이 나올 성격의 문제는 아니지만, 익숙함을 추구하는 경향성은 문화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본능과 같다. 그리고 이는 냄새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에 나타날 수 있다.

익숙함은 참과 거짓,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좋고 싫음과 같은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접하고 배워온 가치들에 익숙해지며 그러한 가치들은 곧 그들의 삶을 규정짓는 표준으로 자리매김한다. 이쯤 해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익숙함이 곧 옳은가 하는 것이다.

익숙함은 오랜 문화에서 온다. 문화에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화는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익숙함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지만 때로는 그 익숙함이 우리의 삶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사람들의 생존과 사회 유지를 어렵게 하는 문화는 아무리 그것이 익숙하다 해도 재고해야만 한다.

이 글은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글이 아니다. 또한 프랑스에 공중화장실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와도 전혀 무관함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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