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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몽’에서 멀어지는 대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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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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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 논설위원

   
 

‘대만인’은 누구일까. 한족들이 거주하기 훨씬 전부터 대만섬에는 오스트로네시안 언어를 쓰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17세기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대만섬을 점령한 뒤 많은 한족들을 노동자로 이주시켰다. 청에 저항하던 정성공 세력을 1684년 청이 제압하면서 중국 대륙 왕조가 처음으로 대만섬을 지배하게 되었지만, 청일전쟁 이후엔 50년 동안 일본이 대만을 식민통치했다. 1945년부터 대륙에서 들어와 대만을 지배하게 된 국민당은 이곳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던 ‘본성인’들을 고압적으로 대했고, ‘반공’과 ‘대륙 수복’을 내걸고 38년 동안 삼엄한 계엄통치를 했다. 대만의 본성인들은 국민당을 일본에 이은 또 하나의 식민통치자로 여겼다.

복잡한 역사와 상처로 갈라져 있던 대만 사람들을 ‘대만인’으로 묶어내기 시작한 것은 1987년 계엄령 해제 이후 진행된 대만 사회의 민주적 변화였다. 국민당 계엄통치 시기에 벌어진 본성인들에 대한 탄압과 차별 등 역사 문제를 드러내고 화해를 추진하고 민주주의를 진전시켜 가면서 ‘대만인’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중국 대륙의 공산당 정부는 ‘대만 통일’을 목표로 삼고 이런 흐름을 뒤집으려 했다. 1996년 대만 첫 총통 선거 이후 군사적 압박 또는 경제적 ‘혜택’ 확대 등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써가며 대만 민심을 ‘통일’ 쪽으로 돌리려 했다.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대만인들은 중국이 대만의 주권과 경제적 자치권을 잠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2014년에는 대만 청년들이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체결에 반대하며 의회를 점거하고 ‘해바라기 운동’을 벌였다.

대만인들이 통일도 독립도 아닌, 민주와 자유에 기반한 지금의 삶을 발전시켜가고 싶다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동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몽’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핵심 목표로 선언했다. 무력을 써서라도 대만을 통일하겠다면서, 그 ‘예고편’ 격으로 2019년 홍콩 시위를 강경 진압하고 홍콩보안법을 강행했다. 중국이 홍콩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무력으로 홍콩을 억누르자, 대만인들의 대다수는 ‘중국식 통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단을 공유하게 되었다. ‘홍콩의 기억’이 새로운 대만인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13일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중국은 대만에 매일 군함과 군용기를 보내 무력 시위를 벌이고, “반중 후보”인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가 당선되면 ‘전쟁’이 날 것이라고 위협하며 “전쟁과 평화 중에 선택하라”고 대만인들을 압박했다. 하지만 대만인들은 라이칭더를 선택해 ‘중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냈고 동시에 청년들은 제3의 후보인 커원저에 대한 열광적 지지로 민진당도 민생을 위해 더 노력하라고 요구하며 ‘변화의 새싹’도 만들어냈다.

시진핑 주석은 강압적 태도와 군사적 위협으로는 대만인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교훈을 이해할까. 동아시아의 미래가 걸린 무거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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