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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러 역도산, 1954년 美 샤프 형제 꺾으며 ‘日 영웅’으로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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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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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 기자

   
▲ 1954년 2월 19일 역도산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검은색 긴 타이즈를 입고 기무라 마사히코와 한 조가 돼 미국의 샤프 형제와 태그매치 경기를 벌이는 모습. 자료사진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설 역도산(力道山·리키도잔). 재일 한국인이었던 그는 1950∼1960년대 일본에서 “일왕 다음 역도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명했다. 훗날 ‘박치기왕’으로 불린 김일이 역도산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불법체류자로 구금되자 자신을 제자로 받아 달라는 편지를 쓰고 겉봉에 ‘도쿄(東京) 역도산’이라고만 적어 보냈는데 배달됐다는 일화도 있다. 역도산이 당대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것은 1954년 2월 19일 미국의 샤프 형제와의 대결이었다.

이날 ‘유도의 귀신’이라 불리던 기무라 마사히코(木村政彦)와 스모선수 출신 역도산이 한 조를 이뤄 샤프 형제와 맞붙었다. 샤프 형제의 일방적인 우위 속에 기무라가 맥도 못 추고 무릎을 꿇었다. 곧이어 링에 오른 역도산이 자신의 필살기인 ‘가라테 촙’으로 거구의 미국인을 때려눕히자 환호성이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다. 2차 대전 패전국으로 열등감과 패배의식에 빠져 있던 일본인들에게 역도산은 국민 영웅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난 그는 본명이 김신락으로 소년 씨름 장사였다. 일본인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16세에 스모에 입문했다. 3번째 등급인 세키와케까지 진출했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승급에서 제외되고 최고 경지인 요코즈나에 오를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해 1950년 상투를 자르고 스모계를 떠나 프로레슬링으로 전향했다.

미국에서 프로레슬링을 배우고 1953년 돌아와 일본프로레슬링협회를 설립했다. 샤프 형제를 초청한 경기에서 선전한 이후 프로레슬링 붐이 일었고, 당시 막 보급된 TV로 경기가 방영되며 그는 큰 인기를 누렸다. 반면 자존심을 구긴 기무라는 역도산의 레슬링은 쇼라며 도전장을 냈다. 1954년 12월 일본 프로레슬링 최강자를 가리는 경기가 펼쳐졌고, 급소를 공격해온 기무라를 역도산은 무차별 난타로 쓰러뜨렸다. 1958년에는 세계선수권자인 J S 루테스를 물리쳐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역도산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일본의 영웅’이 조선인이어선 아니 됐기 때문이다. 경계인의 삶을 살았던 그는 39세에 허망한 죽음을 맞았다. 1963년 12월 도쿄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야쿠자 청년과 시비가 붙어 칼에 복부를 찔렸다. 수술은 잘 끝났으나 복막염으로 결국 숨을 거뒀다. 당시 의료사고 논란과 함께 사망원인에 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지났지만, 역도산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북한에서도 프로레슬링의 신화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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