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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사할린동포들에 대한 접근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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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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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의 땅 사할린

러시아의 연해주와 맞닿아 있는 사할린은 남한 면적보다 조금 작은 1년 중 8개월이 겨울이고, 여름에는 폭염으로 살기가 어려운 기후조건을 갖춘 ‘무주의 섬’이었고 19세기부터 죄수를 보내던 ‘악마의 섬’으로 불렸다. 1855년 러-일 화친조약에 따라 러시아와 일본인의 잡거지역으로 정했다가 1875년 상트페테부르크 조약에 따라 사할린은 러시아에 쿠릴열도는 일본에 귀속케 된다. 1905년 러일전쟁으로 사할린 중심부를 지나는 북위 50도를 기준으로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일본의 영토로 하였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할린 남부도 소련의 영토가 된다.

현재 사할린의 인구는 67만 3천명(2005년도 기준)이다.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인의 수는 3만 5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 사할린 한인 중 일부는 19세기말 연해주를 거쳐 북사할린으로 이주한 한인과 일제 강점기 토지조사 사업으로 농토를 잃고 고향을 떠나 일본령 남사할인에 이주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인들은 1942년에서 1943년 2차 대전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이거나 그 가족들이다.

1938~45년까지 약 15만 명의 한인이 사할린에 끌려가 석탄과 목재 등 일본의 군수물자 생산에 동원됐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연합군이 제공권을 장악하게 되자 일제는 사할린에서의 석탄 수송이 어렵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약 10만 명의 탄광노무자가 일제의 ‘가족원호(家族援護)’, ‘징용원호(徵用援護)’를 내세운 회유와 통제 하에 이중징용당하여 이산(離散)의 아픔을 겪어야 했고, 4만 3000명은 귀국하지 못한 채 무국적자로 사할린에 남겨졌다. 1946년 12월 미소협정을 통해 사할린에 거주하는 일본인 전원이 일본본토로 인양되었으나 한인들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할린에 잔류하게 된 것이다.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할린 동포들

무국적자가 되어 소련의 영토가 된 사할린에 잔류한 한인들은 전후복구에 정신이 없던 조국으로부터 잊어져 갔고, 일본 정부의 무관심으로 버림받는 존재로 남게 되었다. 자체적으로 한글학교를 설립하는 등 민족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이들은 소련정부의 탄압과 박해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었다.

1958년 도쿄에서 ‘사할린억류귀환한국인회(대표 박노학)’가 결성되어 사할린잔류자 귀환촉진을 호소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으나 한일 양국으로부터 외면을 당해야만 했다. 1975년 12월 일본을 상대로 귀환청구소송이 시작되어 이후 15년간 지속되었다.

사할린 한인들의 귀환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 된 것은 1992년부터이다. 그 이전까지는 소련, 일본, 한국의 책임전가로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한일 양국은 양국의 적십자사를 통해 제정을 지원하여 사할린 한인 1세들의 모국방문과 영주귀국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2009년 8월까지 영주 귀국한 사할린 한인은 2944명이다.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 지원과 관심 필요

사할린동포 영주귀국에 필요한 비용은 표면적으로는 한국정부가 앞장서서 부담하는 것이 보여도 실상은 일본적십자사를 통해 일본정부가 부담한다. 일본정부의 적십자사를 통한 해결방법도 유치하고 떳떳하지 못한 것이지만 이에 적극 대처하지 못하는 한국정부의 입장이 더 문제이다.

그동안 사할린동포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알려온 것은 NGO단체들이다. 그나마 영주귀국사업과 ‘태평양전쟁전후국외강제동원희생자지원법’이 제정(2007.12.10)된 것도 이들의 활동과 노력 때문이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이주당한 사할린 한인의 문제는 소위 구소련지역의 ‘고려인’의 문제, 혹은 일본의 재일동포 문제와도 다르다는 점이다. 이들은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박탈당한 상황이고, 강제동원에 대한 배상과 원상회복 등의 문제가 남아있다.

2005년 ‘사할린동포지원특별법안(장경수 의원안, 한명숙 의원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자동폐기 되는 등 아직도 이 법안에 대한 처리는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다.

올해 사할린희망캠페인단의 사할린방문 프로그램이 7월 1일부터 5일까지 진행됐다. 지구촌동포연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가 주축이 되어 60여명의 대학생과 함께 사할린을 방문 체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사할린 한인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행사였다.

이 행사에 여야 의원 7명이 함께했다. 박선영 의원(자유선진당) 등 ‘국회 사할린 포럼’ 창립 회원들이 주최하고 재외동포재단이 주관 후원하는 성격의 사할린 방문 행사였다. 당리당략을 떠나 뜻있는 여야 의원들의 사할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은 크게 반길일 이지만 이미 시민단체가 주도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끼어 생색을 낸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는 부분이다. 이들 단체들에 대한 정부 예산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민족의 자산이 된 이주동포들을 위한 접근

사할린 한인의 영주귀국사업으로 3000여명에 이르는 분들이 귀환했다. 대부분 나이 드신 한인 1세대들이다. 대부분 일본정부의 비용으로 이뤄지는 영주귀국 사업은 고향을 그리는 1세대들의 한을 푸는 측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영주귀국 사업을 넘어서서 사할린 한인동포들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35000명이 넘는 사할린 동포들이 민족적 자산임에는 틀림없다. 이만큼의 인원을 외국에 이주시켜 한인사회를 형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사할린 동포가 조국으로부터 잊힌 존재이고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열악한 상황에 있는 동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을 국내에 이주 시키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이루기도 힘든 일이다. 한인 2~3세가 주축이 된 그들이 그곳에서 한인사회를 형성하고 주류세력 살아갈 수 있도록 이들을 돕는 것은 사할린 영토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교포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의 확장은 지리적 측면으로 생각할 일은 아닌 것이다. 중요한 점은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우리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의 영토다’라는 인식이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한인들이 집단적으로 많이 거주하고 있는 만주지역과 사할린이다.

정부는 이주동포들에 대한 접근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민족의 자산으로서  해외동포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정책적 지원과 협력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감정적 차원의 일의 처리는 문제만 복잡하게 할 뿐이다. 실질적인 지원과 함께 보다 세밀한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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