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4.19 금 15:23
재외선거, 의료보험
> People/커뮤니티 > 교포인사인터뷰
동북아시대, 한국의 좌표를 말한다이상철 일본 류코쿠대(龍谷)대 교수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0.09.1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연일 찌는 무더위에 지칠 무렵, 때마침 내린 소낙비로 창가의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8월 24일 오후, 50대 초반의 한 신사가 필자가 근무하는 해외교포문제연구소를 찾았다. 바로 전날 고려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재일조선족과 중국조선족 동포들에 대한 역할을 조명하는 한일공동학술세미나(재외한인학회, 재일 조선족연구학회 공동주최)에 참석했던 일본 류코쿠(龍谷)대학의 이상철 교수였다.

일본에서 신문사(史)를 전공하고 있다는 이 교수가 조선족의 역할에 대해 세미나 토론자로 참석했다는 점이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이 교수의 첫 인상은 참으로 선해 보였다. 이름으로나 겉모습으로는 영락없는 순종 한국인이었다. 이 교수의 구체적인 이력을 인지 못한 필자는 그가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정도로 인식했다. 인터뷰 시작 전 잠깐의 나눔에서 특이한 그의 경력을 들으며 그의 인생역정을 조명하고 싶은 묘한 생각이 들었다.   

민족적 정체성으로는 한국인, 태어나고 자란 곳은 중국, 이제는 일본국적을 가진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 출신의 일본인 이상철(일본명 리 소테츠) 교수.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몸 주변의 것이나 본능적인 것은 지금도 한국어로 생각한다는 이 교수는 한국과 중국, 일본을 모두 좋아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어색한 나라로 느껴진다고 진솔하게 말한다. 외국에 나갈 때는 일본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솔직하게 “일본에서 왔다”고 말하지 못한다는 그는 “기존의 관념으로는 내 자신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라고 그의 복잡한 정체성에 대한 일단을 피력한다. 엄밀히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완전한 한국인도 중국인도, 그렇다고 일본인도 아닌 한계인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중국조선족에서 일본인으로의 삶

이상철 교수의 이력을 살펴보면, 동아시아의 신문사(新聞史) 연구 학자로 자리매김한 인물로 소개된다. 일본과 만주(중국) 그리고 한국의 신문사를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아시아의 근대사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대사에 있어 일제의 식민지였던 한국과 만주의 신문 역사를 통해 한중일 근대사를 조명함으로써 문화적 차이뿐만 아니라 동질성 또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철 교수는 중국조선족 출신으로서 일본에 귀화한 일본학자다. 그의 부모님은 일제시대, 1930년대 초반 중국 흑룡강(헤이룽)성 동부 가목사(佳木斯, 자무쓰)로 이주했다.

“일제의 억압과 농지 침탈을 피해 만주에 정착한 사람도 있지만, 우리 부모님은 동아시아가 하나의 공간이었던 시대 그냥 살기 좋은 곳으로 떠나간 부류에 속한 분이셨습니다. 경북 영일군 기계면(현, 포항시 북구 기계면)이 고향인 아버님은 조선팔도를 떠돌다 1930년 초에 만주에 정착하여 살다가 1970년 중국에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칠 때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은 낯설고 물선 중국에 끝내 적응을 못하고, 세상을 뜰 때까지 중국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그이 가계의 정체성을 이야기했다. 

일본에서 이상철 교수는 ‘리 소테츠’로 불린다고 한다. 이름을 놓고도 정체성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일본 국적을 가지고 일본에 살면서 한국식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기에는 그는 분명 어색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근대사는 새롭게 조명되어야

중국조선족 출신으로서 일본에 귀화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되던 1979년 이후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중국은 자국민의 외국 진출을 곱게 보지 않았습니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던 나는 정치적으로 감시가 심했던 미국보다 일본 유학이 쉬웠습니다. 유학을 떠나면서도 중국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떠났습니다.”
이 교수는 4남3여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형제 4명이 대학을 나왔고 동생은 미국에 정착했다. 이 교수가 일본에 유학하게 된 것은 베이징중앙민족대학을 다니며 신문학을 전공하면서 부터다. 대학 졸업 후 중국에서 5년간 신문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의 신문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그는 87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 죠치(上智)대학 대학원 졸업 후 4년간 기자로도 활동했다. 일본에 살면서 특별히 차별대우 받은 기억은 없다고 했다.

이 교수에게 신문사학(新聞史學)을 전공하게 된 배경을 묻자, 그는 “동아시아 신문의 역사와 근대사가 아주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 이면에는 일본의 식민통치사와 맞물려 있다”고도 했다.  
“일제 강점기 만주는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지만 한국과 대만을 비롯해 동아시아에서 신문의 역사를 파헤치다 보면 동아시아 근대사와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지역에서 일본인들이 경영한 신문의 역사를 통해 동아시아 근대사의 뿌리를 파헤칠 수 있습니다.”

   
▲ 흑룡강신문 관계자들과 함께

이 교수는 3개 지역의 일본 통치하의 저널리즘 연구를 통해 이미 조선(한국), 만주(중국)에서의 일본인 경영의 신문의 역사에 대해 저서를 출간했다. 현재는 대만에 대한 신문의 역사를 집필중이다.

이 교수의 어릴 때 꿈은 외교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서 외교관이 된다는 것은 그저 하나의 꿈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로 하여금 학자의 길을 가게 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일본인의 재일조선족에 대한 인식을 묻다 

중국조선족 출신의 눈에 비친 재일민단과 조총련에 대한 인식도 매우 궁금했다. 이 교수는 당시 통일일보 사장(작고)이 중국유학생에 대해 관심이 많아 교류도 자주 하면서 민단뿐만 아니라 일본 조선학교 출신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린 적이 있다고 했다.
“민단과 조총련의 대결은 의미가 없다”고 단언한다. 일본인들이 민단과 조총련의 갈등을 같은 동족끼리 왜 싸우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는 것처럼, 조선족출신의 이 교수도 민단과 조총련이 큰 안목으로 앞을 보지 못하고 이념에 사로잡혀 서로 싸우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입장을 되뇌었다. 

임시정부 연구에 여생을 걸다

이 교수는 동아시아 신문사(新聞史) 연구를 통해 앞으로 자신만이 개척할 수 있는 분야 로 ‘상해임시정부’에 관한 것을 꺼내며, 한국의 근대사 특히 한국의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이 신문에 관계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시정부 관계 연구에 집중하려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한국에서는 많은 연구가 되고 있긴 하지만 일본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고, 일부 소수학자들만이 관여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한국의 자료에 대한 번역도 안 돼 있습니다. 둘째는 임시정부는 당시 동아시아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임시정부는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장개석) 정부, 일본정부, 이승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아시아역사 연구에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 부분을 역사연구에서 드라마틱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20년 정도 기간을 두고 이 분야에 연구를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근대사 흐름도 중요하지만 동아시아의 문제와 역사 흐름의 관점에서 임시정부의 위치와 역할도 학술적으로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했다. 임시정부를 통해 역사재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시정부 연구를 통해 역사가 무엇인지, 오늘날 역사가 왜 이렇게 굴절되어왔는지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의 매개체가 사과이든 다른 물건이든 상관없듯이 역사연구에 임시정부가 중요한 재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재일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   

특이한 배경의 삶을 살아온 이 교수에게 있어 정체성의 문제는 남다를 것이다. 일본국적자이지만 중국조선족 출신으로서 느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 이 교수는 정체성을 다층적 구조 측면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 ‘영국출신의 이태리계 유태인’ 등과 같이 글로벌화 된 사회에서는 복합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지리, 교양, 경제, 문화, 언어, 역사 등 다층적 구조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 스스로를 50%는 한국인, 20%는 일본인, 30%는 중국인으로 규정하는 이 교수의 말을 빌리면, 정체성은 고정 개념이 아니라 유동성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
“정체성이 자녀세대에서는 또 다르게 나타나지 않겠습니까?”라고 이 교수는 반문한다. 대부분 정체성은 민족 정체성(Ethnic Identity)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신앙에 바탕을 둔 형태로 오랜 세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유태인 사회를 이야기하며, 재외 한인동포들의 정체성 강화를 위해서는 ‘코리언(Korean)’ 특유의 언어와 역사, 문화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코리언으로서 전 세계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 창출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우리 자녀세대에서는 한국을 ‘조국’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민족(韓民族)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뭔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봅니다.” 유태인에 버금가는 한민족 정체성의 새로운 가치 창출을 제안하고 있다.

한·중·일을 섭렵한 입장에서 본 북한   
 
이 교수의 북한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부분도 새길만하다.
“동북아의 협력과 번영에 있어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과 일본이 러시아, 유럽, 중국, 미국으로의 진출을 확장시키고 경제권 형성을 강화하려면 북한을 경유해야하고 북한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북한과의 우호 협력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입장과는 달리 일본은 한국을 동아시아의 진정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이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사죄에 문제가 많지만 미래 지향에 있어 한국의 확고부동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중국보다는 훨씬 정서나 문화적으로도 가깝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아야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일본을 설득하고, 과거사 정리를 통해 미래로 나아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남북통일을 위해 한국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의 미디어 환경과 역할에 관하여

일본과 비교한 한국의 미디어 환경과 역할에 대해 신문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교수는 아사히신문에 ‘한국의 정치와 미디어의 건전한 긴장관계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한국의 신문과 방송들, 특히 신문들은 수박 겉핥기식 보도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핵심을 다루지 못하고 대충하는 식의 보도형태여서 저널리즘이 결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중요한 사건에 대해 의혹만 보도하는 행태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의혹 보도로 인한 당사자의 피해도 문제지만 저널리즘의 무게가 떨어진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라고 최근 한국 언론의 행태를 꼬집는다.
한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들이 온갖 의혹들만 무성하게 만들고, 진실에 대해 파고드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디어의 힘이 강해서 정치민주화가 일본보다 투명하기는 하지만 너무 많은 사회적 대가를 지불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 유학하는 중국유학생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중국유학생들은 동경에서만 30개신문과 3개 방송국을 운영한다고 전했다. 또 재일중국인은 집안에서 자녀들에게 꼭 중국말을 사용하게 하고 중국식 교육을 고집한다고 말했다.
재일한국인과 재일조선족 그리고 중국조선족이 한국과 동북아시아의 발전과 번영에 얼마나 기여할지 당장 가늠할 수는 없지만, 해외 한인동포들이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어떤 활동과 역할을 해야 하는지 역사적 맥락에서 한민족(韓民族)으로서의 삶의 형태를 되돌아보게 한다. 역사적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중일 3국에 관계되어 살아가는 이 교수와의 만남은 남북통일 및 동북아시아의 협력과 평화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우리 한인들의 몫을 확인하는 자리었다.
편안해 보이는 선한 인상과 달리 임시정부 역사연구를 통해 한국이 동북아시아 시대의 중심축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장면에서는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종로19(르메이에르 종로타운) B동 1118호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아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 | 편집인 : 이구홍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혜민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