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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인 민족정체성 변화에 주목한다박일 오사카시립대 대학원 교수-한인차세대들의 민족지향성, 모국과의 연결 네트워킹 강조
김도균 기자  |  admin@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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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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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9일 박일 일본 오사카시립대 대학원 교수가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제13회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2010 세계한인차세대대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이 대회에 참가한 100여 명의 차세대한인들을 대상으로 박일 교수(오사카대학 경제학부)의 강연이 있었다. ‘재일 한국인의 경제적 성공과 민족 정체성(ethnic identity)의 변화’란 주제의 강연이었다. 아마도 재일교포 3세로서 살아오면서 가장 고민되고 혼돈스러운 테마였기에 해외동포, 특히 한인 2~3세들에게 확 터놓고 싶은 이야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강연이 끝난 후 호텔라운지에서 박 교수를 만났다. 강연을 들으며 내내 궁금했던 그가 주목하고 있는 한인차세대들의 정체성 변화의 흐름과 그 과제를 그의 삶을 통해 비춰보고 싶어서였다. 겸손함이 몸에 밴 듯한 그의 자세에도 불구하고 작은 체구에서 품어내는 강인함이 엿보인다.

일본에서의 삶과 정체성의 혼란

박일(朴一) 교수의 일본식 이름은 ‘아라히 하지메’ 이다. 박 교수의 가족이 일본에 정착한지 벌써 92년의 세월이 흘렀다. 일제의 토지수탈정책으로 1918년 할아버지가 돈벌이를 위해 도일한 후 4대째를 이어서 살고 있다. 박 교수는 아버지를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분으로 기억한다. 조국이 광복된 후 일본에 설립된 건청(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 설립에도 참여하셨다고 한다. 건청(建靑)은 1946년 재일민단의 전신인 ‘재일본조선거류민단’으로 발전하게 된다.

“조총련과 대립하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자라며 자연적으로 반일감정도 생기고, 북한과의 거리도 두게 되었죠.” 통일된 조국을 갖지 못한 해외동포들의 태생적 삶의 철학이 배인 모습이다.
재일교포에 대한 민족적 차별이 심하던 50~60년대 시절, 재일교포들은 취업의 어려움 때문에 대부분이 자영업에 뛰어들게 된다. 당시 박 교수의 아버지는 ‘야미이찌바(개고기를 소고기로 위장해 파는 장사)’와 ‘코리안 클럽(술집)’ 운영을 하며 돈을 모았다. 나중에 야쿠자에게 속아 파산을 하게 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게 된다.

“모든 것이 차압당하고 살길이 막막할 때는 힘든 생활보다 ‘어떻게 하면 먹고 살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더 컸어요. 수학여행을 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 선생님께 배가 아파서 못 간다고 둘러대는 일도 있었죠.” 학자로서의 이미지를 지녔지만 그에게도 저런 아픔이 있었나 싶었다. 광복 후 당시 한국민의 삶의 어려움만큼이나 재일교포들의 애환 또한 깊은 곡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차별을 의식해 일본명 이름을 사용했다. 항상 친구들에게 들킬까봐 불안해하며 자랐다. 어느 날 귀가 길에 박 교수의 집 문패를 본 친구가 “무슨 이름이냐?”고 물었을 때 NHK방송국에 다니는 아버지의 예명이라고 둘러대 모면하긴 했지만 학교에서 다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차별적 의미로 물어보는 순간 “내 정체를 안 이상 그 친구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별렀다. 그러나 일본인이라고 우길 수도 없었고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없어서 “난 ‘캬베진(위장약 일종)이다”라는 위트 섞인 말로 위기를 모면했다면서 당시를 회상한다. ‘조센진=한국인, 니혼진=일본인’처럼 ‘캬베진-캬베사람’으로 빗댄 것이다. 그 당시 좀 더 솔직하게 한국인임을 떳떳이 밝히지 못한 것이 마음속에 두고두고 남아있다고 술회한다.

한국인임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재일동포들의 아픈 사연의 이면에는 항상 일본인들의 차별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일깨워준 고등학교 담임선생님  
    
박 교수는 일본의 피차별 천민들의 해방운동인 ‘부락해방운동’에 참여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담임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영어 담당 선생님이었지만 늘 ‘부락해방운동’에 대한 의식을 학생들에게 심어주신 분이다. 재일한국인으로서의 신분을 감추고 있던 당시는 차별이 심한 일본에서 대학진학과 취업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에 관심을 둘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이 한국인임을 알고 있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한국인임을 밝히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늘 피해 다녔다.

그런 자신에게 담임선생님은 집에까지 찾아와 아버지에게 박일의 본명을 쓰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한국인이면 당당하게 한국이름을 사용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이 강요할수록 박일 자신은 반발심만 커져갔다. 한번은 선생님이 영화 보러 가자는 제의를 했다. ‘브르스 리’의 팬으로 영화를 좋아했던 그가 기대를 안고 찾아간 곳은 ‘부락해방운동’ 지역의 한 영화관이었는데, 이곳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당시 유명한 락 스타(Rock Star)였던 재일교포가 주연한 영화였습니다. 주인공이 “난 일본인이 아니다”라고 울부짖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선생님은 나에게 그 사람처럼 되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라며 영화 관람 후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 올리는 박 교수의 눈가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혀 있었다. 

박 교수는 자신이 청소년 시절 처절하게 고민했던 ‘정체성’의 문제를 예화로 들며 말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일본인 여학생과 사귄 적이 있었는데, 여자 친구가 싫어할까봐 한국인임을 내색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준비됐냐!”고 물으시며 체육관으로 부르시더군요. ‘본명선언’이란 현수막을 크게 걸어놓고 기다렸던 겁니다. 다짜고짜 학생들 앞에 세우더니 “아라히 하지메가 오늘 여러분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자 들어보자” 그러시는 겁니다. 하는 수 없이 내 본명이 ‘박일’이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데 가슴이 저리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본명을 커밍아웃 했음에도 친구들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듯 별 반응이 없었고, 여자 친구가 “난 네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상관없다. 난 너라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을 해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한다. 선생님과 본인은 큰 의미를 부여한 일이었고, 내장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고백한 것인데 의미가 없다고 한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란 말이냐’고 토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전한다.

박 교수는 고3때부터 한국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재일한국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직업, 방법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1976년 대학입학 후 재일한국인 친구들이 취업한 경우는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대학 내에 설치된 취업과에 상담한 결과, 국제화시대 재일한국인도 취업이 가능하다며 700명중 3위 안에만 들면 취업과에서 회사 소개를 해 주겠다고 했다. 금융관련 20개 회사에 입사지원을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19개 회사에서는 서류심사로 탈락했고 외국계 한 회사로부터 연락이 와 최종면접에 임했으나 이름을 일본식으로 쓰라는 조건을 붙여서 결국 입사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박 교수가 갈 곳이라고는 일본 천지에 대학원에 진학하는 길밖에 없었다. 박 교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본사회의 차별의 산물이었다.

새로운 민족적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신세대 재일한국인의 의식변화에 주목

학자로서 재일동포들의 성공과 민족정체성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온
   
제13회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참가한 윤경복 미 한인커뮤니티재단 사무총장과 함께.
박 교수는 한인차세대들의 민족정체성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정체성의 문제를 단순히 애국심을 고취 시키는 정도로 다뤄서는 신세대 한인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기 힘들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이들이 관심을 갖는 부분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연구하여 실리를 제공해 주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재일교포 3세 학자로서 보아온 재일한국인의 민족정체성에 대해 덧붙여 언급한다. 
“지금은 과거와 많이 다릅니다. 재일한국인도 실력만 있으면 일본기업에 취업이 가능하고, 오히려 우수인재들이 일본 기업에 흡수됨으로써 재일교포 기업과 재일교포 중산층 감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족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재일한국인 신세대의 특징을 설명하는 말이다.

재일교포들의 일본 동화현상이 증가하고 있지 않느냐는 다소 우려 섞인 기자의 질문에 박 교수는 크게 개의치 않은 듯 요즘 재일한국인 신세대들의 동향을 전해준다.
“재일한국인이 일본에 동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신세대 재일한국인 중에는 본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완화와 한류 붐, 재일한국인임을 밝혀도 될 환경변화(한국의 국가 위상 증대, 일본과 국제사회의 환경 변화 등) 등으로 본명을 밝혀도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며, 10여 년 전부터 신세대 재일한국인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변화들 중의 하나라고 덧 붙였다. 

박 교수는 ‘2010 세계한인차세대대회’ 강연에서도 “한일병합 100년을 맞이하는 지금 재일교포사회의 사회적 지위와 생활은 크게 변화했다. 재일교포사회는 차별과 배제를 당했던 교포1~2세와는 달리 일본사회에 통합되면서도 새로운 민족적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교포3~4세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긴 설명을 이어갔다.  

박 교수가 이 날 발표한 강연 자료를 보면, 재일한국인의 경제상황 변화는 국적의식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일본 국적 취득자가 매년 증가추세에 있긴 하지만 재일한국인 젊은 세대는 30대의 경우 52.8%, 20대는 42%, 15~22세 청소년층은 불과 9%가 일본국적 취득을 희망(1999년 이타마시의 조사)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신세대의 경우 일본사회에 적응하면서도 동화하지 않고 국적, 이름, 언어 모든 면에서 민족 지향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재일교포들의 미래상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민족지향성을 추구하고 있어도 ‘모국(한국) 사람들에게 다가간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박 교수는 못 박았다. 이들의 대부분이 ‘모국인과 다른 한국인’이라는 점이 흥미롭다고 말한다. 60%이상이 한국 조선 국적을 가지고 일본인으로 살아가겠다고 한다는 점이다. 일본 국적 취득과 상관없이 재일한국인으로서의 민족적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재일한국인 신세대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박일 교수는 재일한국인들에게 있어 민족정체성은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국적을 가지고 있어도 한국명 이름을 쓰는 사람이 있고, 개인적으로 느끼는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에 국적변경 여부로만 단순하게 민족정체성을 판단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수천 년의 디아스포라 생활, 미국시민권자이면서도 민족 교육을 통해 철저히 유태인으로 살아가는 재미유태인사회를 떠 올리게 된다.

박 교수는 재일한국인의 삶의 방식을 재일민단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쓴 소리도 잊지 않았다. 2000년 이후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이 불거지고, 미사일 발사와 핵개발 문제가 제기되면서 젊은 재일한국인에게 영향이 미치고, 재일조선인들이 조총련을 탈퇴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민단이 매력을 주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꼬집는다. 재일민단 주류세력들은 고령화되고 있고, 신세대 재일한국인을 활성화 하는데도 역부족이며 조총련과의 대결 양상도 보기 좋지 않다고 말한다. 또 뉴커머들과도 갈등이 있을 뿐, 이들과 조화를 이루는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 교수는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한인들과의 협력문제에 대해서는 먼저 재일교포사회 내부 통합이 먼저 아니겠냐고 되묻는다.

일본의 지방참정권에 대해서…

일본의 영주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 문제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다소 쉽지 않아 보인다고 언급한다. 그 이유로, 일본은 1995년 최고재판소의 ‘영주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 합헌판결 때와는 지금의 상황을 달리보고 있다는 것이다. “1995년 판결은 한국인을 염두에 둔 정치적 배려의 판결 있었다.”고 말한 당시 재판에 관여했던 소노베(園部逸夫) 판사의 고백처럼, 1995년 판결 당시와는 달리 재일중국인 수가 재일한국인보다 많아진 지금의 상황에서 영주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는 일본사회의 우려를 전했다.  

재일중국인 뉴커머들은 일본영주권 취득에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70만 명에 달하는 재일중국인들의 정치개입 의도가 증대되는 상황이고, 이들에게 지방참정권이 주어질 경우 중국과의 대결양상을 보이고 있는 오늘의 일본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교포정책은 재미동포를 위한 정책 같다는 느낌

민족지향성을 가진 신세대 재일한국인의 정체성과 관련해 재일교포 3세로 자라온 입장에서 한국정부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한국정부는 신세대 재일한국인들의 민족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 내 있는 민족학교에 한국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박 교수는 “한국의 교포정책은 재미동포만을 염두에 둔 교포정책 같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로 재미동포들은 한국어를 잘 하는데 반해 재일동포들은 한국말이 서툴고 부족해 한국정부와의 소통이 안 되고 있다는 나름의 분석을 내 놓았다.

그는 “한국 정부가 재외동포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것은 재일교포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것임에도 재일교포사회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재일교포의 급속한 일본 동화 현상은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

교포 3~4세까지 이르고 있는 재일교포사회에서 일본 동화 현상은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음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재일교포들의 일본화 경향이 민족자산이라는 측면에서 손실’이라는 입장에 대해 박 교수는 관점의 차이로 설명한다. 현실적 판단으로는 손실로 가는 부분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재일교포 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모국에 투자하겠다는 대답한 것은 2.8%에 불과합니다. 재일교포의 주류는 다른 지역과 달리 2~3세들인데 이들은 민족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일본사회로 급격히 동화되지 않도록 하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네트워크를 이룰 수 있는 행사들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지요.”  

한인들의 네트워킹과 민족자산화를 위한 일련의 행사인 ‘2010 세계한인차세대대회’ 에 참석해 강연을 한 박 교수는 이 행사에 대한 바람도 잊지 않았다. 한인차세대들이 민족과 모국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지만, 이들에게 뚜렷한 비전과 실익을 챙겨주는 관심대상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형식적인 행사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민족교육 강화를 위해 모국과 연계되는 교육 시스템 개발 필요

박 교수는 현재 재일민단 중앙민족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코리아국제학원 설립에도 참여하는 등 재일동포 사회의 민족교육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교수는 민족교육의 어려움으로 물리적, 경제적 부분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재일동포사회 민족교육의 긴급과제로 ‘조선학교’를 언급했다. 북한의 지원을 받고 있는 조선학교는 2000년 이후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 핵개발, 미사일 발사로 기부금도 줄었고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지메 현상도 증가한 상태라고 전한다. 이런 문제로 학생 수도 줄고 교사들로 줄었다고 한다. 만일 북한정권이 흔들린다면 조선학교의 운명도 불투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 교수는 “북한의 체제 변화에 따른 조선학교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일 한국학교나 조선학교 학생들이 한국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교류·협력하는 사업의 추진을 통해 민족교육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일교포 학생들에게 매력을 줄 수 있는 교육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금부터는 신세대 재일한국인의 민족지향성을 모국으로 연결시키는 장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교수가 인터뷰 말미에 던진 한마디가 형식과 보여주기에 급급한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게 만든다.      
민족지향의 정체성 변화를 겪고 있는 재일교포 신세대와 한인차세대에 주목하고 있는 박일 교수와의 인터뷰는 한국정부와 국민이 교포사회를 어떻게 조망해야 할 것인가를 일깨워준 소중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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