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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선籍 동포> -①그들은 누구?일제통치.남북분단의 산물..남.북한 모두 선택 거부 / 6만여명으로 추산..무국적자로 간주돼 '난민' 수준 지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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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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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편집자주 =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방을 맞고 곧이어 조국이 분단되자 남.북한 어느 쪽 국적도 선택하기를 거부하며 살고 있는 일본 내 `조선적'(朝鮮籍) 동포가 아직도 6만여명이나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일본에서 사실상 무국적자로 분류돼 아무런 법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 채 `난민'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으며, 일부는 `친북적 성향' 또는 `북한에 이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한국으로의 입국도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10월 조선적 여성 리정애씨가 한국 청년과 결혼, 한국인과 결혼한 '조선적 신부 1호'를 기록하면서 이 문제가 다시 한번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연합뉴스는 질곡의 근대사 뒤에 가려져 있는 조선적 동포의 실상을 살펴보고 우리나라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를 취재해 3건의 기획기사로 송고한다.>

조선 왕조 패망과 일제 식민통치, 광복을 거쳐 한반도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었지만 남북 어느 쪽의 국적 취득이나 일본으로의 귀화를 거부하며 살고 있는 재일 동포들이 있다. 재일 `조선적(籍)' 동포들이 바로 그들.

조선적 동포들의 그간 삶은 일제의 한반도 강제병탄과 식민지배, 일제 패망, 남북 분단으로 이어진 암울하고 고통스런 우리 근대사와 궤를 나란히 한다.

일제 치하에서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거나 스스로 건너가 `황국신민' 즉, 일본 제국주의의 국민 취급을 받던 약 230만여 명의 조선인들은 일제가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 패하고 식민지 조선에 대한 관할권을 빼앗기자 `외국인'으로 분류되면서 `조선'이라는 국적 아닌 국적을 부여받는다.

1947년 5월,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이 이끄는 연합군사령부(GHQ)의 통제를 받던 일본 과도정부는 조선인들에게 일본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 `히로히토(裕仁) 천황'의 마지막 칙령으로 외국인등록령을 발포, 재일 조선인들의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적어넣었다. 이때 `조선적'으로 분류된 이들은 무려 53만여 명이었다.

당시는 남.북한의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었고 조선이란 나라는 이미 없어진 상태에서 `조선'은 국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기호'에 불과했다.

이어 1952년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태평양 전쟁을 종결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이후 일본은 외국인등록법을 시행하면서 일방적으로 조선적 동포들의 일본 국적 상실을 선언했다. 이때까지 조선적 동포들은 `외국인으로 간주되는 일본 국적자'였으나 이후 일본 국적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돼 한국 국적 취득의 길이 열렸지만, 이중 상당수는 이 협정을 부정하면서 그대로 조선적으로 남아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1970-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을 지나 1990년대 한국이 민주화되고 국제사회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이중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이들도 점차 늘기 시작했다. 물론 결혼이나 직업상 필요에 의해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이들도 많아졌다.

재일 조선적 동포들은 10년 전 약 10만 명이었지만 현재의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한국의 외교통상부는 현재 재일동포 59만2천여명 가운데 약 6만명이 아직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할 뿐이다.

조선적 동포들은 일본에서 해외여행이나 구직, 은행대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차별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니어서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정부도 이들을 `무국적 동포'로 분류해 정식 여권을 내주지 않고, 대신 여권을 분실했을 경우 임시로 여권 대용으로 내주는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줄 뿐이다.

지금까지 조선적을 유지하는 이들은 조국이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통일 전에는 절대로 국적을 취득하지 않겠다는 이들과,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핵심 구성원을 포함해 북한에 충성심을 갖고 있거나 북한을 마음의 조국이라고 여기는 이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두 부류의 수적 비율에 대해서는 보는 이들마다 달라 정확한 추산이 어렵다.

재일동포 1세대인 김석범(77) 씨는 첫 번째 유형 조선적의 전형적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제주 4.3사건을 다룬 <화산도>로 1998년 제39회 마이니치 예술상을 받는 등 동포 작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고국행>, <전향과 친일파>, 동화 <만덕이 이야기> 등 여러 작품을 발표해 한국에도 많이 알려졌다.

김 씨는 12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한국 국적을 갖고, 북한에 사는 주민들이 북한 국적을 갖고 있는 것처럼, 식민지 조선의 백성으로 일본에 와 살고 있는 이들은 조선적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국의 분단이라는 부당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남한이나 북한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통일된 조국만이 내게 국적을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처럼 `통일된 조국'의 국적을 취득하겠다는 열정은 아니더라도, 조선적을 고집하며 살다 세상을 떠난 부모들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2세들도 꽤 있다. 김 씨의 두 딸 역시 조선적을 그대로 갖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한국 청년과 결혼해 `조선적 신부 1호'란 별칭이 붙은 리정애(36) 씨는 동포 3세로서 젊은 나이지만, 어릴 적부터 총련계 조선학교에 다닌 탓에 `통일된 조국'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하다.

한국 정부는 김 씨나 리 씨처럼 한국 국적 취득을 거부하며 조선적을 고집하는 이들을 총련에 가깝거나 총련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입국을 불허해왔다.

그러나 1990년 남북교류협력법이 제정된 후, 이들은 일본 내 한국영사관의 일정한 심사를 거쳐 보통 3개월 또는 6개월 기한의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한국을 오갈 수 있게 됐고, 특히 남북관계가 급진전 된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절에는 이들의 왕래가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하면서 재일 조선적 동포들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 거절 건수가 크게 늘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일본 주재 한국 영사관에서 조선적 동포들에게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절한 사례는 2006년 8건, 2007년 0건, 2008년 7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279건으로 급증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2009년 4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에 따른 한반도 정세 급변을 고려해 정부가 여행증명서 발급 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2006년 2천957건, 2007년 2천229건, 2008년 2천37건이던 재일 조선적 동포들의 한국 방문 신청 건수도 지난해 1천497건으로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새 정부의 방침이나 남북관계 추이를 봐 가며 조선적 동포들이 한국 방문을 스스로 자제 또는 포기하는 예가 많았음을 의미한다.

올해 통계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3월 말 천안함 사태가 발생한 뒤 정부가 조선적 동포들의 한국 방문을 사실상 불허하고 있고, 조선적 동포들 역시 한국 방문을 삼가는 분위기여서 올해 이들의 여행증명서 신청 및 발급 건수는 각각 지난해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오사카총영사관 관계자는 "관혼상제나 순수한 학업 목적 등 인도주의적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조선적 동포에게 여행증명서를 내주지 않는다"면서 "조선적자들도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어 거의 신청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가 여행증명서 발급 기준을 까다롭게 하고 한국 국적 취득을 권유하면서 조선적 동포들의 국적 취득 건수는 2008년 2천82건에서 지난해 2천392건으로 15%가량 늘었다. 올해도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10년 사이 재일 조선적이었다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는 모두 4만7천여명에 달한다.

재일조선인과학기술자협회 황철홍 회장은 "2002년 한국 방문 이후 다시 들어가 본 적이 없다"면서 "이남(한국)에 투자해서 판을 벌리겠다 한 상공인들은 거의 한국 국적으로 바꾸었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 강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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