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호 / 영산대학교 교수 ]


올해 3월 말 일본정부가 전달한 공탁금 자료에 대해 관련 위원회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 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지원 등 위원회)가 그간 DB 작업과 분석을 마치고 최근 그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주 12월 8일 한국 언론에 일제히 보도된 바에 따르면 위원회가 자료 분석을 위한 전문가 팀을 구성하고 17만 5천 건에 달하는 공탁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강제동원 피해 노무자 6만 4천여 명의 공탁 금액 약 3,517만 엔을 확인한 것이다. 이 자료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소재 사업장이 ‘조선인’ 노무자에게 급여, 수당, 부조금 등을 지급하지 않다가 대체로 전후 맥아더사령부와 일본정부의 지시에 의해 해당 지역별로 공탁한 기록의 사본이다.

위원회는 자료 입수 직후 기존에 들어와 있거나 실체가 확인된 공탁 명부 자료와의 중복 여부를 점검한 후 검색이 가능하도록 엑셀 파일로 일일이 기입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군인 군속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시스템을 활용하여 중복 여부 점검과 DB 작업을 실시함으로써 빛바랜 인쇄물 사본이 한국의 자료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 DB 자료를 근거로 하여 이달부터 한국정부는 미수금 피해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게 되었고 노무자 강제동원 피해판정에서도 공식적인 자료로 활용하게 되었다. 현행 지원법에 의해 미수금은 공탁금액의 2천배로 산정하여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필자는 올해 1월 12일자 ‘한일시평’에서 공탁금 명부 자료를 막상 받아봐야 원 자료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피력한 바 있다. 일본정부가 나서서 강제동원 혐의를 갖고 있는 기업들을 공개하겠느냐 하는 의구심에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료의 효과에 대해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던 필자로서는 이제 DB 결과 그런대로 유용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하고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와 전망을 내리고 싶다. 한일 양국의 우호적 외교관계가 이렇듯 강제동원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고 본다. 가능하면 이러한 분위기가 확대되어 한일 양국 정부와 양국 기업이 참여하는 전후처리 관련 재단의 설립으로 순조롭게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이번에 정리된 공탁금 DB 자료의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의의를 갖고 있다. 첫째, 비록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강제동원 노무자 6만 4천여 명의 미수금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공탁 금액으로는 총 3,517만 엔에 달하여 1인당 평균 550 엔의 미수금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 35,088명의 명부는 위원회가 이제까지 소장하고 있지 않았거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자료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둘째, 노무 동원 사실이 여태껏 알려지지 않았던 사업장 696곳을 새로 발견하는 등 강제동원 사업장의 실태를 확인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도쿄麻?(아사이토)방적 누마즈(沼津)공장이나 후지코시(不二越) 강재(鋼材)공업 주식회사와 같이 현재 개인청구권 관련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사업장이 이번 자료로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관련 기업과 피해자 사이의 화해 가능성을 높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탁금 자료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일본정부의 전후처리 문제에 대한 무관심 혹은 무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앞으로 일본에 대해 보완을 요청해 가야 하는 과제를 한국정부에게 안겨주고 있다. 첫째, 기존 자료와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17만 5천여 명의 명부 가운데 10만 9천 명(63%) 정도가 지난 2007년에 전달받은 군인 군속 명부와 겹친다.

둘째, 노무자 미수금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조선인’ 피동원 노무자 추정치 60만 ~ 80만과 비교할 때 전체적인 수량에서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사업장의 공탁 사실도 누락된 부분이 많다. 위원회의 분석 결과, 일본 공문서관 쓰쿠바(筑波) 분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인노무자 미불금 공탁선 일람표’에 제시된 ‘공탁분’ 511개 목록 가운데 이번 자료에서는 217개만 확인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46년에 ‘조선인’ 미불금을 조사하기 위해 만든 ‘조선인 노무자에 관한 조사결과’와 비교해도 전반적으로 극히 일부만이 공탁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문서상태 불량으로 판독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자료가 많다는 점이다. 명부 원본을 성의 없이 복사하다보니 접힌 부분 일부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을 뿐 아니라 아예 엉망으로 복사하여 글자가 번지거나 뭉개진 것을 그대로 전달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 관하여 위원회는 지난 10월에 열린 유골협의 실무회의에서 일본 측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추가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