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의 정체성과 다문화사회에서의 재외한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재외한인학회는 해외교포 한인 디아스포라의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23일 고려대 인촌기념관 회의실에서 개최된 이번 학술회의는 재외한인들을 한국학적 입장에서 규정할 수 있는지, 글로벌사회와 다문화사회로 진입해가는 시점에서 디아스포라의 정확한 개념이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지에 관한 두 기관 간 학문적 연계와 통합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한국학진흥사업단장)는 “‘디아스포라’와 ‘다문화’라는 용어는 사용된 역사적 배경과 개념을 배제한 채 너무나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문화를 공유한다는 측면에서만 이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디아스포라들은)다문화라기보다 동화주의에 해당된다.”고 밝히고, “다문화를 너무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또 디아스포라에 대해서 “디아스포라는 중심이 비어있어야 한다.”며, “한인 디아스포라의 경우에도 ‘한국’이라는 것에 중심을 두면 모든 한인 디아스포라를 묶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남대 임채완 교수의 “중심이 없어야 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비어 있을 수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 권 교수는 “중심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비워야 한다는 개념이며, 중심을 놓고 이야기 하면 그것에 맞춰 따르라는 강요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을 중심해서 줄을 서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심을 비어놓고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해야 해외에 있는 한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어 권 교수는 “한인 디아스포라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혹은 길을 잘못 들었는지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며 사고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영순 한국학중앙연구원 부교수는 민족정체성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구축해 나가는 것이라 전제하고, “남한 주도의 통일을 생각할 때 통일 한국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한인 디아스포라 문제는 북한동포를 어떻게 포용하여 함께 살아가야 할 한민족공동체 구성원으로 만드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재기 교수(전남대)의 한국학과 디아스포라는 별도의 영역에서 연구되어야 할 분야라는 주장에 대해 “한국학이 남북한의 문제와 재외한인까지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고 밝혔다.

임영상 한국외대 교수는 해외에 흩어져 있는 한인들의 유적지와 문화를 IT기술을 활용하여 영상으로 남기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재외한인기록관 설립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 “재외한인들에게 한국문화만을 강요하거나 따르라 할 수 없으며, 재외한인들의 문화를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행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민족의 정체성 내용을 포함한 총체적인 모국의 문화 내용이 녹아 형성된 한국적인 브랜드 가치가 700만 재외동포들에게 생활화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민족공동체 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이민의 역사가 가장 오랜 된 지역부터 발굴 조사해 영상기록을 제작하는 등 ‘지역단위 공동체’를 만들어 모국과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인진 재외한인학회 회장은 “재외한인연구와 한국학이 연계 통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는데, 이 학술대회를 통해서 새로운 질문과 과제를 얻게 되었다”고 밝히고, “현실은 보다 복잡하고 중층적이기 때문에 디아스포라에 대한 답을 당장 얻기보다 인내심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연구에 매진해 나갈 생각”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이날 열린 재외한인학회 정기총회에서는 임영상 한국외대 교수가 차기회장으로 선출되었고, 올해 재외한인학회 우수 학술논문상은 최금해 교수(중국 천진사범대학)가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