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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시인 김시종
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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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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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호 / 영산대학교 교수 ] 


   
▲ 최영호 교수
나라현 이코마시(生駒市)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金時鐘)의 시집 ‘잃어버린 계절’이 일본에서 매년 우수한 시인에게 수여하는 다카미 쥰(高見順) 상의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지난 1월 8일 다카미 쥰 문학진흥회 선정위원회는 제41회 2011년 수상자로 김시종 시인을 뽑았다고 발표했다. 부상으로 50만엔이 지급되며 오는 3월 11일에 시상식이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다. 시인이자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다카미 쥰 (본명 高間芳雄, 1907~1965)을 기념하여 제정된 이 문학상은 1971년부터 매년 1~2명씩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에게 수여되는 권위 있는 상이다. 재일동포로서는 김시종 시인이 처음으로 이 상을 받게 되었다.

2010년 봄에 출간된 시집 ‘잃어버린 계절’은 여름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을, 겨울, 봄으로 이어지는 4계절에 따라 각각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8편씩의 반(反) 서정적인 시(詩)를 담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서 계절이 여름부터 시작되는 것은 1945년 8월 한반도의 식민지 해방으로 모든 것이 바뀌고 새롭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시집 안의 모든 작품 밑바닥에는 작가의 계절 여름이 꿈실거리고 있다. 과연 해방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물음이 시집 전반에 걸쳐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이마후쿠 류타(今福龍太, 1955~)는 2010년 5월 3일자 요미우리 신문에 이 시집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4계절 그때그때의 미묘한 느낌이 이 시집의 소재이기는 하지만, 일본어 시문들이 전통적으로 양성해 온 서정을 담은 자연에 대한 찬미나 감정이입은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김시종 작가는 일본문학에서 자명하다고 할 서정적인 언어의 역사적 특성을, 자신의 모어가 될 수 없는 ‘일본어’로 내부로부터 도려내어 차별화 하려고 한다. 시집 전반에 걸쳐 이 시인 특유의 반(反) 직감적이고 굴절된 감정의 흔들림을 나타내는 함축성 깊은 동사들이 풍부하게 나온다.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잇는 고통스러운 역사를 관통하는 특이한 사계절의 흐름이 시인의 어렴풋한 기억과 투명한 현재를 맺어주고 있는 것이다...

김시종 시인은 1929년 북한 원산시 신풍동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자라났다. 1942년 전남 광주에 있는 사범 중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여름방학 때 제주도에서 해방을 맞았다. 그때 그는 한글을 모르는 황국신민 소년이었고 중학교 과정을 반년 남긴 시점에서 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그는 해방직후 격동기에 제주도 인민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1948년 4.3사건에 연루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대대적인 좌익 탄압을 피하여 1949년에 밀항선을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 고베(神?)에 상륙했다.

일본 도착 직후 그는 생활 방편으로 오사카의 양초공장에서 일하는 한편, 1950년 6.25 발발 직전에 일본공산당 당원이 되었고 좌익적 성향의 재일동포 조직에 참여하여 활동했다. 이와 함께 그는 그 해 간사이(?西)대학에서 ‘조선문화연구회’를 조직하기도 했고 문학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953년 2월에는 오사카의 재일동포 시인 모임인 ‘진달래’를 발족시켜 작품집 ‘진달래’를 발간하기도 했다. 1955년 총련 조직이 결성되자 그는 간사이 지구 청년문화부장 직책을 맡았다. 그러나 김일성 우상화 문제나 총련의 비민주적인 운영 등에 대해 조직 내부에서 공연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그는 총련 조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그는 1973년 고베의 미나토가와(湊川) 고등학교에서 한국어 교사가 되었다. 일본 교육사상 처음으로 공립 고등학교에서 한국어가 정식 교과로 채택되면서 그가 최초로 공립학교 한국어 교사가 된 것이다. 그는 거기서 1988년까지 재직했다. 이와 함께 고베대학에도 출강하여 1978년부터 11년간 가르치다가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사카 문학학교에서 문학을 지망하거나 선호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문학창작론을 가르치고 있다. 오사카 문학학교는 1973년에 설립되어 사단법인 오사카 문학협회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자주적인 교육기관이다.

1980년대부터 그의 독특한 언어와 작품 세계에 의한 문학성이 일본사회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1986년 그의 작품 ‘재일(在日)의 틈새기에서’가 마이니치(每日) 출판문화상을 수상했으며 1991년에는 시집 ‘들판의 시(原野の詩)’가 오구마 히데오(小熊秀雄) 상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의 일반 시인 단체에서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하는 시인이었였다. 5.7.5 운율을 기본으로 하는 하이쿠(俳句)로 대표되는 일본식 서정(敍情)에 대해 '정감과 분별이 없는 서정'이라고 비판하며 이에 저항하는 독창적인 언어를 구사하여 시문을 써나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김시종 시인은 1990년대 초반까지 남북한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김일성 우상화와 총련의 북한 편향을 비난했다고 해서 북한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고, 군사정권 시절 한국은 4.3사건에 연루된 그를 '빨갱이'로 취급하여 입국조차 거부했다. 그가 제주도에 돌아오게 된 것은 1998년으로 고향을 떠난 지 49년만의 일이다. 한국에서는 2000년 1월 제주 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취지의 특별법을 제정했다. 특별법에 의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만들어져고 4.3사건과 관련된 국내외 자료의 수집과 분석, 희생자와 유족의 심사와 명예회복, 사료관 조성, 위령묘역 조성과 위령탑 건립 작업에 착수했다.

   
▲ 2006년 한라산에 오른 김시종 시인 부부와 그의 시집 ‘잃어버린 계절’
김시종 시인은 1948년 4.3 사건에 직접 관여했으면서도 오랫동안 이 일에 관하여 침묵을 지켜왔다. 그가 이 사건에 대해 공식 석상에서 입을 연 것은 2000년 4월에 도쿄에서 개최된 ‘제주도 4.3 사건 52주년 기념강연회’에서였다. 이 자리에는 4.3 사건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화산도(火山島)’를 발표한 김석범(金石範)과, 제주도 출신 부모님을 둔 양석일(梁石日) 작가도 함께 강연자로 참가했다. 그는 “오사카에서 제주도에 원적을 둔 동포들이 4월부터 여름에 걸쳐 제사를 지내는데, 나 자신이 유족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아무 말로 못하고 살아왔다. 이제 한국에서 4.3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니 이웃끼리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하며 감격을 토로했다. [民團新聞, 2000년4월19일]

그는 One Korea Festival 10주년을 맞는 1994년에 재일동포의 사명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 바 있다. “일본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은 남북의 입장이 어떠하든 일본이라고 하는 같은 장소에서 살고 있다. ‘재일’의 실존은 존재와 더불어 동포 융화의 선험성(先?性)을 내포하고 있다. 본국의 남녘과 북녘에도 ‘재일’의 융화는 일정 이상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입장이나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등을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오히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마주 보아야 한다. 서로 다르더라도 연결될 수 있는 동포상(像)을 ‘재일’의 전망으로서 만들어 가야 하는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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