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최근에 가슴에 남아 있는 작품이라면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암굴 속의 성모(Virgin of the rocks)’화의 왼쪽에 그려진 천사의 얼굴이야 말로 참 정교히 그려진 이지적인 美를 갖춘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림도 음악도 모든 보는 것이 그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 가치도 달라

▲ 산마르코성과 광장

진다고 생각이 들고, 그렇게 생각하니 천차만별의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지구촌 사회의 66억이라는, 모두가 다른 DNA를 가진 사람들이 보편적 가치관과 사회적 제도 하에서 나름대로 공공성을 가진 법에 따르며 살아가는 개성적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나와 같지 않지만 삶을 영위하기 위해 뜻을 맞추고 상호 이해를 하며 살아가도록 시험을 당하는 운명적인 무대를 하루하루 엮어 가는 우리들의 인생을 어떻게 하면 모두 아파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약간은 교과서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생각을 하며 베네치아의 밤바다를 거닐다 산마르코 광장 옆의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를 몇 번이나 쳐다봤다. 이 아름다운 정경을 수인들은 저 좁은 다리 구멍 속으로 밖을 바라보는 심경은 어땠을까? 당시의 가치관으로 단죄되어 억울히(frame up) 처벌 받았던 사람은 얼마나 있었을까? 단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삶을 그렇게 천국과 지옥 같은 화려한 두칼레 궁전과 열악한 감옥을 잇는 조그마한 벽돌 다리를 건너다니며 얼마나 한탄스러워 했을까.

이미 지나버린 과거지만 그 과거 속에 힘들게 삶을 살다 간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좁은 운하 위의 탄식의 다리를 보고 있자니 중국인 관광객 단체들이 몰려 와서는 사진을 찍느라고 웅성거린다. 로마에서도 중국인 관광객을 보기는 했지만 이 베네치아에는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간혹 한국어나 일본어로 대화하는 사람들도 스쳐간다.
다음 날, 카푸치노를 내 주며 아침을 즐기라는 인정스런 이탈리아 아주머니의 인사를 받으며 간단히 식사를 즐긴 뒤, 필자는 베네치아를 돌아보기 위해 약속했던 수상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필자와 브라질에서 온 커플과 함께 모터보트를 타니 가이드가 안내를 하기 시작한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시작해서 좁은 운하 쪽으로 들어가니 과거의 위세를 보여주듯 궁전들이 즐비하게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가다보니 600년이나 사용되어 왔던 수산시장(페스케리아)이나 역사가 흐르는 성당,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미술관,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등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리얄토’라는 다리를 지나서 곤돌라나 다른 배들과 교차하며 운하를 빠져 나오니 탁 트인 바다가 우리를 맞는다. 바다 위에는 큰 통나무들이 꽂혀있는데, 그런 것들이 배들을 정박하는 정박장이라고 한다. 그러더니 가이드가 베네치아의 명산인 복숭아 와인을 즐기라며 한 잔 부어준다. 스피드 탓인지 의외로 뱃멀미가 없길래 그녀가 부어 준 와인을 마시니 향긋한 맛이 각별하다. 베네치아의 해상에서 초연히 와인을 마시며 과거 동방 무역을 개척하던 상인들의 흔적을 기리는 이런 필자의 여유를 소중히 기억하며 학교로 돌아가면 열심히 교육과 연구를 하며 좋은 교사 양성에 진력하리라 다짐한 시간들이었다.

▲ 두칼레 궁전

내일을 책임 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책임은 참으로 막중하다고 생각하며 보트에서 내려서는 가이드에게 물어서 마르코 폴로(1254-1324)의 집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리얄토 다리에서 좁은 골목길로 기념품점이 즐비한 곳으로 가다 보니 ‘CORTE PRIMA DEL MILION O DEL FORNO’라는 곳이 나왔다. 생가는 예전에 화재로 소실이 되었지만 그 곳의 좁은 골목길을 들어선 아파트로 둘러싸인 가운데 마당 어딘가가 마르코 폴로가 태어나고 자란 곳임을 가이드나 호텔 직원들, 현지 사람들이 말을 하기에 신뢰하면서 아파트 속의 작은 광장을 서성거렸다. 마르코 폴로 부자와 베네치아 상인들의 시장 개척에 대한 의기와 동방의 세계를 향한 포부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학계에서는 동방견문록에 대한 사실성의 희박 여부를 오래 전부터 이야기 하고 있지만 적어도 이 유럽 사회에 아시아를 알린 기록의 장본인임에는 틀림이 없기에 ‘기록하는 의미’를 재삼 생각하게 되었다. 기억이란 풍화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필자 역시 기억을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기록의 진위 여부는 논쟁이 되기도 하지만 역사를 볼 때 기록이 있기에 당시 상황을 추측하거나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기록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오다 보니 자그마한 고서점 입구에 마르코 폴로 생가 흔적과 설명이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안에 들어가서 주인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물었다. 마르코 폴로에 대한 이야기도 해박하다. 하지만 생가가 남아 있지 않은 이상, 그 곳의 확인만 할 수 밖에 없기에 아쉬움을 남기며 다시 산마르코 광장으로 걸어 나왔다. 거리가 꽤 있기는 하지만 집집마다 화려하고 개성적인 가면 장식과 유리 공예품, 다양한 기념품과 베네치아 수예품 등을 보며 걷노라면 시간 가는 것을 모르는 게 베네치아의 특징이다.

산마르코 대성당에 이르러 그 곳을 들어가니 거대한 돔은 물론 그것을 장식하는 아름답고 정교한 모자이크 작품들이 눈에 꽉 찼다. 성당 안의 거대한 발다키노(기둥)아래에는 성 마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다양한 모자이크 문양과 어마어마한 돔을 쳐다보면서 인류의 문화적 예술적 감각의 우수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예수 승천의 돔은 비잔티움의 미술 건축이 어우러진 13세기의 걸작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 성당의 최고 보물이자 10세기에 제작된 화려한 보석들로 치장된 팔라 도로(제단화)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나폴레옹이 몇 개의 보석을 훔쳐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진주나 루비 등의 보석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성당 내부를 돌아보고 나오면서 성 마가의 마상 ４마리가 복제된 것이고 오리지널이 대성당 박물관에 있다는 안내 책자의 기록을 보고선 건물 위의 박물관으로 올라갔다. 이 곳은 성당 입구 오른쪽의 좁은 문으로 올라가며 별도 요금이 필요하다. 가파른 계단을 겨우 올라가니 위에는 매점이 보이고 입장료를 지불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산마르코 대성당 실내의 천장화가 웅대한 실내 규모와 어우러져 보인다. 게다가 오리지널인 청동 마상 4마리가 역동감 있게 전시되어져 있고, 그 옆 전시공간에는 중세의 성당 벽화였던 모자이크 벽화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었다. 각양각색의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작품은 이탈리아 각지의 두오모 성당 등에서 볼 수 있다. 그림의 단순성으로 봐서 상당히 오래된 초기 모자이크 기법이었다. 우리의 중세 문화와 다른 그들의 모자이크 미술의 발달사를 머릿속에 그리며 중간의 좁은 문을 나오니 바로 산마르코 광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대성당의 테라스로 이어진다. 고층 공포증을 무릅쓰고 좁고 높은 테라스 밖에 나오니 복제 말들 아래에서 테라스가 연결되어 두칼레 궁전과 광장 앞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갈 수가 있었다. 높은 곳에서 보는 광장과 종탑, 수 많은 건물들과 상인들 속에서 파도처럼 몰려 다니는 각지에서 온 관광객 단체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베네치아의 풍경을 느낄 수 있었다. 혹 베네치아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산마르코 대성당의 테라스에 올라 가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단, 좁은 공간이라서 자칫 장난이라도 치면 위험한 것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필자는 좁은 테라스와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서 바로 옆의 두칼레 궁전에 들어갔다. 들어가면 바로 궁전 뜰과 회랑에 전시된 조각상들이 맞이한다.

9세기에 완성된 총독들의 주거지(the Doge`ｓPalace)이었던 이 두칼레 궁전은 입구 뜰을 지나 궁전 입구의 마르스와 넵튠의 동상이 내려다보이는 15세기에 제작된 소위 ‘거인들의 계단’ 계단을 통해서 궁전 안으로 올라간다. 2층으로 올라가면 넓은 복도와 금빛 가득한 천장화, 15세기 고딕양식의 궁전문 베네치아 시의회 회원들의 만남의 장소라는 살라 델 마조르콘실리오는 틴토레토가 그린 거대한 작품 ‘천국’이 그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중간 방과 방을 잇는 넓은 공간에 두 개의 거대한18세기 지구의가 놓여 있다. 근대사를 가르치는 필자로서는 독도 문제에도 민감하기에 당시의 한일 상태를 어떻게 그려 놓았는지 자세히 보았지만 세세하게 나와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기념이라서 사진을 찍으려니 각 방마다 몇 명의 직원들이 배치되어있고, 민감할 정도로 촬영 금지를 당부한다. 물론 그래도 대담하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였기에 그들도 자주 올 수 없는 곳이기에 집착하는 듯 하였다.

각 방마다 거대한 벽화나 천정화, 당시 사용되었던 가구들이 전시되어져 있고, 바티칸에서 보았던 유사한 종교적 콘셉트의 작품들이 많이 걸려 있었지만, 역시 궁전다운 위용 있는 건축 장식이 많이 사용되었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딘가 우피치 미술관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끼면서 필자는 17세기 초에 만들어진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와 이어진 방으로 들어갔다. 궁전방과 연결된 재판실과 가까운 감옥도 특이했지만, 화려한 궁중과 감옥의 열악함을 동시에 느꼈어야 했던 죄인들이 자신들의 심경을 한탄했다는 탄식의 다리를 건너며 당시의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런 마음이었을까를 상상해 봤다. 평의회의 재판관들의 심판을 기다리던 살라 델라 부솔라를 지나서 나무문을 열면 심문실과 좁은 계단을 이용하여 운하를 건너가는 감옥 다

▲ 밀라노역 플랫폼

리가 나온다. 그 다리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돌아 나오는 곳의 감방 벽에는 각종 이름이나 숫자 등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이름이나 그리운 사람의 이름 등을 새기며 감옥 생활을 보냈을지 모르겠다. 칙칙한 분위기의 감옥에서 다시 궁전 쪽으로 오면서 탄식의 다리 벽 사이에 뚫린 구멍 속으로 밖을 보니 천국과 지옥을 연상 시키듯 아름다운 별천지가 눈 안에 들어온다. 그 탄식의 다리의 구멍으로 보면 바다 건너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가 한층 더 아름답게 보인다. 바로크양식의 이 우아한 건물은 1630년의 건축물로 웅대한 제단과 여덟 개의 예배당, 제단화와 천장화가 어우러져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보인다. 그렇게 거대한 화폭처럼 보이는 바다 풍경을 뒤로하고 궁전의 재판소를 지나서 옆방으로 들어서니 창과 칼등의 병기고가 있고, 그 속에는 잔혹한 고문 도구들도 놓여져 있다. 각종 무기들을 본 뒤, 씁쓰레한 기분이 되어 궁전을 나왔다. 왠지 사람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고문이나 고문 도구개발을 통해 그 잔인성을 이어 온 것 같다는 기분도 들어서 두칼레 궁전의 아름다운 궁중 뜰과 하얀 지붕을 뒤로 하여 밖으로 나왔다.

저녁에는 기분을 달리하기 위하여 TEATRO SAN GALLO 에서 VENEZIA THE SHOW 연극을 봤다. 소규모 극장이지만 베네치아의 역사를 영상과 더불어서 장대하게 보여주는 서사극의 느낌이었다. 적은 인원수로 영상을 활용하여 무대 내부를 유효하게 활용하였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