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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해 꿈을 키워온 미킴 ‘CEO SUITE’ 대표, 그는 누구인가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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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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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e Kim 'CEO SUITE' 대표

청와대와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오고, 광화문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서울교보빌딩 15층. 이곳에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오픈을 앞두고 있는 서비스 오피스업을 운영하는 ‘CEO SUITE' 서울점이다.

호화롭지는 않지만 깔끔하고 세련된 가구와 사무집기 그리고 첨단 사무기기들이 갖춰져 있는 이곳에 오면 누구나 이런 곳에서 사업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단아한 정장차림의 직원들이 한결같이 밝은 미소로 맞이한다.
작년 세계한상대회 이후 몇 개월 만에 다시 만난 미킴(Mee Kim) ‘CEO SUITE' 대표는 여느 때처럼 부드러운 미소에 활기가 넘쳐 보인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생기가 돌게 만들 정도로 그녀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미킴 대표의 열정에 감염되면 자신의 안주함을 한번쯤은 돌이켜 보게 된다.
김은미(Mee Kim)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CEO SUITE'는 현재 인도네시아와 홍콩 등 동남아 7개 도시에 11개 지점을 두고 해외출장에 필요한 ‘즉석 사무실’ 제공과 온 스톱(One-Stop) 서비스 등 최고경영자(CEO)나 전문인을 위한 사무공관 및 사무 서비스를 돕는 동남아 시장의 비즈니스 아웃소싱 업계를 평정한 기업이다. 한해 매출액만 약 3천만 달러(340억 원)에 이른다.

구체적으로는 한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업 신고, 사무실 마련, 당장 필요한 인력채용, 사무인프라 서비스, 해외 파트너나 지사가 없는 기업들의 시장조사 대행, 투자유치활성화와 안정적 사업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 ‘비즈니스 아웃소싱’ 사업으로 다국적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과 지원을 해주는 일이다.


학창시절

4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 재능 많고 능력 있는 동생들에 치어 사는 열등감 많은 소녀였다. 어머니의 치맛바람에 오히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야 했던 그녀에게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 유명한 위인전집, 백과사전을 비롯해 외국관련 서적을 수십 번 읽고 또 읽으며 외국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갔다. 그때부터 들인 책 읽는 습관은 지금도 한 달에 10권의 각종 서적을 소화해 낼 정도로 독서는 그녀의 든든한 자산이 되고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서인지 그녀는 늘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였고, 피해의식에 젖어 있었지만 어머니에 이끌려 활동한 영어연극반 활동과 영어웅변대회 출전 등은 더욱 외국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한때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형편이 어려워진 그녀는 대학(연세대 사회복지학과)시절 장학금을 받아 학업에 전념하며 카드회원모집, 과외, 백화점 판매직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어려운 환경은 오히려 그녀에게 헝그리(hungry) 정신으로 무장하게 해 주었다.
대학졸업 후 공짜로 먹여주고 채워주고 월급도 많이 준다고 해서 여군지원도 생각해 보았으나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포기했다. 또 국가VIP 전용승무원직에 지원했으나 최종면접을 앞두고 완고하신 부모님 반대로 이를 접기도 했다.
당시 군필자 위주의 인재를 선발하는 한국의 취업환경은 취업한다 해도 여자로서는 전망이 아득해 보였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그녀는 외국기업에 눈을 돌렸다. 그렇게 찾은 곳이 시티은행(CITYBANK)이었다. 영어면접, 영어타이핑 테스트를 위해 부랴부랴 학원에 등록해 익혀야만 했다. 면접 때는 파격적인 머리 스타일과 미니스커트, 하이힐로 촌티를 벗고 면접에 응해 우여곡절 끝에 시티은행에 입사했다. 그러나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입사로 인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회사 내에서는 문제아로 찍혀 ‘시집보내 퇴사시키자’는 홀대를 받았다.
미킴 대표는 자신에게 맞지 않은 일에 매달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기로 한다. “길을 잘못 들었으면 핸들을 빨리 꺾는 것도 지혜입니다”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꿈을 찾기 위한 방황

시티은행을 나와 대한적십자사 국제부에 임시직으로 입사했으나 시티은행의 자유로운 분위기와는 달리 경직되고 관료적 조직에 더 이상 적응하지 못하고 이곳에서도 나왔다. 그 후 몇 차례 직장을 옮기며 멘토없이 혼자 진로를 찾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갈등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시티은행은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변화하는 새로움과 창의적인 것에 대한 나의 갈망을 채워주지는 못했습니다. 내가 꿈꾸는,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야 했어요.” 꿈을 향한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에서 채울 수 없다면, 아니 찾지 못한다면 내 꿈을 위해 낯선 이국땅으로의 과감한 모험을 감행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현명한 바보가 되기로 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녀로 하여금 고액의 연봉을 거부하고 훌쩍 유학을 떠나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얀 종이 위에 자신이 처한 사실들을 나열한 다음,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방식의 그녀만의 ‘백지요법’방식으로 꿈을 충족해 줄 나라를 찾은 결과 광활한 호주가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불안이 그녀의 젊음을 안주하게 만들고 먼저 나서지 않으면 그만큼 내 몫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을 이미 터득했던 것이다.

“막상 호주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지만 완고하셨던 아버님은 저 혼자 몸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에 반대가 심했어요. 당시 부모님의 사업은 부도가 나서 내가 동생들 학비를 벌어야 했는데,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간다는 것을 용납할 리 없었던 거죠. 더군다나 백호주의가 악명 높은 호주로 간다니 더욱 난리셨어요”

그녀는 1987년 추운 겨울, 아버지 몰래 야반도주하듯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손에 쥔 자산이라고는 할인 왕복항공권과 한 학기 등록금, 임시 기거할 기숙사비와 약간의 용돈이 전부였다. 국내에서 수학여행 다녀본 것이 전부였던 그녀에게 낯선 이국땅으로의 유학의 길은 한마디로 두려움의 길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무모한 행동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이 블루오션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꿈을 향한 열정은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호주행 비행기 안에서 오기의 눈물을 닦아냈다.

호주에서의 첫 출발은 녹녹치 않았다. 돈이 모자라 기숙사행을 포기하고 곰팡이가 끼어있는 월 80달러짜리 허름한 아파트를 세냈다. 구세군회관에서 무료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온갖 생활용품들을 가져다 고치고 리폼해서 꾸며놓으니 그럴듯한 게스트 하우로 변했다. 마침 방을 구하는 태국 유학생 여자 친구에게 방 하나를 70달러에 세를 주고 자신은 거실을 이용했다. 어쩌면 태국친구가 생애 첫 사업의 고객이 된 셈이었다.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걸맞은 장소를 제공하고 서비스하는 지금의 오피스 비즈니스 사업을 그런 환경에서 터득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지낸 2년간의 짠돌이 유학생활은 그녀의 인생을 바꿔준 전환점이자 사업의 밑거름이 됐다. 또 호주에서의 유학생활은 언어문제로 인해 저절로 남의 말을 경청하는 입장이 됐고,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것을 내려놓을 때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비결을 몸소 터득하는 산 경험의 장이 됐던 것이다.

호주에서의 유학과 언어장벽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망은 없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미킴 대표는 일을 도모하는데 있어 “할 수 있다는 대답이 먼저이고 노력은 그 다음”이라고 말한다. 일단 부딪쳐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녀에게는 늘 이렇듯 열정과 도전의식 자리 잡고 있었다.


창업과 수성

유학시절 세든 집을 재 수리해 친구에게 재임대하여 학비를 벌 정도로 서비스 임대사업 쪽에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을 지녔던 미킴 대표. 그러나 창업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공부보다는 사회경험과 국제적 스킬(skill)을 얻으려고 S전자 시드니지사에 잠깐 근무도 해보고,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이민 통역관 역할을 하며 이민자들의 아픔과 애환을 접하며 단순한 통역을 넘어 이민자를 대변하는 통역을 하게 되자 부족한 언어실력에도 불구하고 이민자들로부터 가장 선호하는 통역관이 되기도 했다. 
 

   
▲ 직원들과 함께

호주의 New South Wales대학(마케팅 전공)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기업에 입사를 지원했지만 남자의 보조역할만을 원하는 ‘여자의 벽’이 견고해 한국기업 취업을 포기해야 했다. ‘한국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면 호주의 문을 두드린다‘는 각오로 이력서 100장을 준비해 100개의 기업체에 보냈다. 그중 8개 기업에서 연락이 왔지만 면접 보러 오라고 한 곳은 다국적 대기업 H텔레콤과 서비스 오피업을 하는 중소기업 두 곳 밖에 없었다.
그녀가 선택한 곳은 경직되고 복잡한 조직구조로 된 대기업이 아닌 보다 자유롭고 능력발휘를 할 수 있는 중소기업체였다. 그녀만의 블루오션인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를 택한 것이다. 그녀가 들어간 곳은 서비스 오피스업의 선두주자인 호주에 있는 상장기업 ‘Servcorp' 회사였다. 그녀는 그곳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에 태국지사 지사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회사를 설득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폐쇄를 검토 중인 태국지사에 자원을 한 것이다. 백호주의가 판치는 호주문화에 비해 태국은 지사장의 직함을 걸고 다른 사람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고, 도전해볼만한 블루오션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맞닥뜨린 태국지사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솔선수범하는 모습 밖에 없었다. 지사장으로 군림하기보다 직원들에게 긍정적 마인드, 열정적인 태도, 배려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직원들의 사기를 돋우어 무장시키니 폐쇄위기까지 이르렀던 태국지사는 1년 후 영업실적 1위의 지점으로 올라섰다.

   

여세를 몰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점을 성공적으로 오픈 한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잘 나가던 노정도 뜻밖의 일로 위기를 맞았다. 일본지사를 오픈하면서 심혈을 기울이며 정성을 쏟아 회사를 키워놓았지만 회사는 경험도 없는 백인여자를 일본지사장으로 발령 냈다. 일본지사장을 꿈꾸던 그녀는 배신감과 절망감을 맛보아야 했다. 연봉 많은 자신을 내쫓기 위한 회사의 작전이었던 것이다. 결국 8년 만에 그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회사를 그만 둔 그녀는 “세상이 나를 고용하지 않으면 내가 나를 고용하겠다”는 각오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바로 지금의 ‘CEO SUITE'이다.

그러나 1997년 사업시작 두 달 만에 IMF가 터져 1호점이 있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폭동으로 무법천지나 다름없었다. 남편과 친정아버지의 돈을 빌려 투자한 회사인데 모두 길거리로 나 안게 될 판이었다.
위기는 기회라 했던가. IMF 위기로 외국기업들의 동남아에서 철수한다 해도 기업들이 리스크가 큰 완전철수를 감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기업들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사무공간 아웃소싱과 서비스 아웃소싱 사업을 전개하기로 했다.
“아마 내 성공만을 생각했다면 IMF 위기로 부도를 맞았을 겁니다. 그러나 내 사업을 필요로 하는 고객들의 원하는 바를 채워주고 제공해주는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마음이 성공으로 이끈 셈이죠”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지킨 결과였다.

1호점에 이어 말레이시아에 낸 2호점은 근무태도가 엉망인 직원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목표와 일에만 전념했던 나에게 직원들과의 팀워크와 공동체의식을 가르쳐준 사람은 남동생이었다. 한국에서 야생화를 연구하며 자연을 벗 삼아 사는 남동생은 내 도움요청을 받고 잠시 건너와 경영은 잘 모르지만 직원들의 일터를 행복한 곳으로 만들게 해 준 사람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에너지와 인내는 열정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열정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때 계속 타오르죠. 한계와 어려움을 하나씩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정신의 키가 조금씩 자라고, 그러는 동안 정상에 도달하는 자신만의 로드맵을 그릴 수 있다고 봅니다.”
안정된 직장을 거부하고 호주유학을 떠났듯이, 안정된 일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실패가 두려워 남들이 피했던 동남아지역으로 진출을 꿈꿨던 그녀는 ‘개척정신에서 자신이 가장 자신의 열렬한 팬’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든든한 우군인 가족 그리고 나눔의 장 'CEO SUITE'

약간 늦은 나이에 결혼한 그녀는 화교인 남편사이에 아들 한명을 두었다. IMF 위기 때 낳은 아이라 남편의 중국 성(性)인 ‘유’에 5월 인도네시아 폭동을 다스려 역사를 바꾼 혁명의 의미인 ‘진’으로 이름을 지었다.
미킴 대표에게 남편과 아들은 영원한 우군이다. 가족들을 통해 긍정적 마인드와 용서를 배우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는다. 또 ‘이 일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일에 대한 절박한 열정이 역경과 고난 속에 오늘의 그녀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됐다고 말한다.

'CEO SUITE'는 조만간 서울광화문에 서울점을 오픈한다. 꿈을 향한 열정으로 달려온 지 창업 13년 만에 서울점을 오픈하게 된 것이다. 미킴 대표는 “세계적인 추세는 이미 인력과 사무실을 아웃소싱해 저렴한 비용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만은 이 분야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한국의 독특한 사업 환경 때문에 이 분야 시장이 늦게 열리긴 했지만 IT환경이 발달해 있어 사업성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한국 사람들이 우리 것만 고집하는 것, 지나친 보완유지, 정보 공유에 대해 배타적인 것 같다”며, 오픈 마인드를 주문했다. 미킴 대표는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비즈니스를 추구하고는 있지만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이 분야의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중소기업의 인식은 극히 낮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서울점 오픈준비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한다. 중소기업에 여자 CEO라며 관심조차 안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한국시장의 전망에 대한 기대는 크다. 예상과는 달리 오픈 전부터 예약문의가 많다고 귀띔했다.

서울광화문 부근은 정부기관이 밀집해있고, 대기업 본사들도 많다. 공무원들의 인식도 기업가 마인드로 바뀌어 벌써부터 서비스를 받으려는 인사들도 많다고 한다.
해외진출은 대기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데 중소기업들의 경우 언어문제나 문화적 차이 등에 대한 사전지식이나 정보가 없어 해외진출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고객을 대상으로 'CEO SUITE' 아시아 진출의 베이스캠프(Base Camp)가 되는 셈이다. 'CEO SUITE'는 아시아 전문가 기업임을 자처한다.

CEO SUITE가 온갖 어려움과 경쟁사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이어온 것은 서비스 오피스사업을 단순한 사무실 임대업이 아닌 고객에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는 회사로 키워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킴 대표는 고객 만족을 위해 최고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때문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에 끊임없이 집착하며 서비스를 제공한다.
업무특성상 어느 기업보다는 첨단 IT기술과 네트워크 시스템이 갖춰진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것은 미킴 대표가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 성공적인 글로벌을 위한 필수 요소임과 동시에 최고 가치를 지향하는 경영이념과 닿아있는 것이다.

그녀의 사업 확장 비결중 하나는 아시아시장이라는 블루오션과 서비스 오피스사업이란 틈새시장이다. 김 대표는 동아시아는 새로운 블루오션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그녀가 사업을 하면서 경계하는 것 중의 하나가 허영심이다. 회사가 잘 된다고 안정궤도에 올랐다고 할 때가 위험하다는 것을 항상 새기고 있다.

CEO SUITE 직원의 99%가 여성이다. 미킴 대표는 직원들을 실력과 당당함을 갖춘 커리어우먼으로 키웠다. 도도함과 당당함에 여성특유의 부드러움을 첨가해 핑크스타일 모드로 바꾸었다. 이것이 타 경쟁회사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차별화된 강점이기도 하다. 또 CEO SUITE는 광고를 하지 않는 회사로 유명하다. 대신 기존고객에 대한 고객감동을 최우선으로 한다. 고객과의 신뢰는 소문으로 이어져 고객창출이 되고 있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한 동행

미킴 대표에게는 늘 변화를 볼 수 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머물러 있는 것 자체가 도태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가 한국에서 안주하며 낯선 땅으로 발을 내 딛지 않았다면 꿈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의 재주와 재능과 끼를 보면 절로 혀가 내둘러집니다. 그러나 한국에만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어요.” 이제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그녀는 나름의 노하우를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 ‘미지로 뛰어드는 용기와 열린 사고로 모험을 감행하는 열정으로 넓은 세상을 항해해 보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롤 모델이 필요하다.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CEO SUITE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둘도 없는 멘토임이 분명하다.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꿈과 용기가 되고, 베푸는 삶으로 이어지는 모습들을 그리며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밝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삶과 교차된다.

   
▲ 최근 출간된 미킴 대표의 자전적 에세이

진정한 성공이란 ‘다른 사람들과의 동행’ 이라고 말하는 미킴 대표는 나눔의 실천을 통해 삶의 큰 기쁨을 얻는 비결을 보여주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미킴 대표는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배움의 농장(Learning Farm)'을 운영 중이다. 가난한 환경 때문에 수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농장이다. 배움의 농장 소년들을 보며 숱한 역경과 고난, 고집스레 한 길을 헤쳐온 그녀의 삶의 노정이 값진 선물로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또 다시 뿌린 씨앗이 거목이 돼 가는 꿈을 키우며...

요즘 미킴 대표는 바빠졌다. 방송출연과 대학 강의 등의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돈 벌어야 하는데 봉사만 하게 생겼다”고 환하게 웃는다. 그녀는 얼마 전 자신의 삶을 쉽게 풀어쓴 책 ‘대한민국이 대답하지 않거든, 세상이 답하게 하라’을 출간했다.

세계한상기업들과의 연계도 고려하고 있다. 회원제 형태로 저렴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에도 서울(광화문)점에 이어 2호점은 여의도, 3호점은 부산에 오픈할 계획이다.

‘설한풍의 생화송’이라고 했던가. 많은 고객들의 성공을 이끌어내는 미다스(Midas) 손이 되고 있는 미킴 대표에게서 열정에 사로 집힌 한 사람의 인생여정을 들여다보는 책 한권을 읽고 있는 듯하다. 자신에게 매력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그녀, 꿈을 현실로 키워가고 있는 그녀에게서 열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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