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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이 CIA를 부활시켰다
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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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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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석 / 한인유권자센터(KAVC) 상임이사 ]


   
2010년 8월로 접어들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의료보험개혁의 후유증을 수습하느라 연일 특별일정으로 대통령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중간선거전에 이길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의석을 지키기 위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대통령은 CIA국장의 일일 단독 보고는 절대로 건너뛰질 않았다. 선거꾼들인 측근 참모들은 CIA국장을 짜증스럽게 대했지만 대통령과 파네타 CIA국장은 둘만의 은밀한 특별 임무가 있었다.

CIA의 빈 라덴 추적이었다. 8월 첫 정례 보고에서 파네타 국장은 대통령에게 빈 라덴의 은신처에 대한 첩보가 있음을 알렸다. 9.11 테러직후부터 백악관은 거의 10년 동안 빈 라덴의 위치를 잡았을 때마다 순식간에 놓치고 마는 것을 반복해 왔다. 대통령은 파네타 국장의 단독 보고는 우선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밀유지’라는 것을 고려했다. 때문에 대통령과 파네타 국장과의 단독면담이 정례적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 최근에야 알려졌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만 10년 이상을 ‘빈 라덴’ 때문에 헤매고 있는 이유가 정보력 부재가 아니고 바로 정보 유출이 원인임을 대통령이 간파했던 것이다.

기밀유지는 대통령의 책임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빈 라덴 잡는 일을 포기했는가?’라는 언론의 공격을 오히려 기밀유지에 유리하게 활용했고 심지어는 시민사회의 꼴 보수계들로 부터 모슬렘대통령이란 공격도 감수해야 했다. 첩보가 확실한 정보로 될 때까지 CIA의 활동을 보장하는 일은 ‘기밀유지’였다. 빈 라덴의 은신처에 대한 최초의 첩보가 있고서 4개월이 지났다.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 국경지역 계곡의 야영지가 아니고 도회지의 군사기지에 숨어있을 확률이 점점 더 높아갔다. 은신처로 추정된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에 CIA는 공작을 시작했다.

빈 라덴이 그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위성사진과 도청 등의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고 은신처로 지목한 곳의 부근에 CIA안가를 설치했다. CIA는 9.11테러로 생긴 치욕을 털어내기라도 하듯 빈 라덴 제거작전을 주도했다. CIA의 파네타 국장은 빈 라덴 제거 작전을 ‘제로니모’라 명명했고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4월28일 목요일, 오바마 대통령은 파네타 국장이 갖고 온 ‘제로니모작전’의 명령서에 서명을 했다. 파네타 국장은 빈 라덴 사살작전에 침투하는 특수부대 요원들의 헬멧에 카메라를 부착토록 했으며 동시에 5월1일 백악관 상황실에 대통령을 비롯한 안보팀을 불러 모았다. 특수부대 요원의 총구 앞에 서성이는 ‘오사마 빈 라덴’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CIA가 막강하게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오사마 빈 라덴’으로 인해서 추락했다가 다시 그로 인해서 부활했다. CIA는 2001년 9.11 테러로 인해서 ‘없어져야 할, 무능한 공룡’이란 오명을 얻었다. 알카에다가 주도한 9.11테러는 CIA의 정보력에 대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CIA를 누르고 새로운 정보기관인 국가정보국(DNI: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을 만들었다. 외견상 국가정보국(DNI)은 CIA를 포함한 연방수사국(FBI), 국가안전보장국(NSA) 등 15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최고 정보기관의 임무를 맡았다. 9.11 테러로 인하여 CIA는 새로 조직된 DNI의 하부 조직 정도로 전락했다.

일본에게 진주만을 기습당한 뒤 종합적인 정보 수집 및 분석의 필요성에 따라 야심차게 창설되었던 CIA가 한때 화려한 영광을 누리긴 했지만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1947년 트루먼 대통령이 처음 설립한 후 냉전 시대에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과의 치열한 첩보전을 벌이며 확대되고 성장했다. 1953년 이란의 모사테크 총리를 축출하고 1954년 과테말라의 좌익 정부 전복이 바로 CIA의 작품이었다.

정보를 수집. 분석하며 필요할 경우에 비밀공작을 하는 일의 전반적인 과정에는 기본적으로 속임수와 술책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국가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정부의 행정 계통에서 이러한 업무를 해서는 안 되고 권력 직속의 민간 조직이 담당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CIA가 출발했다. CIA는 은밀한 뒷방이 필요했고 은밀한 뒷방에서 CIA는 살이 쪘다. CIA는 늘 음지를 고집했다.

그래서 CIA는 바깥에는 공산주의란 적이 있었고 안으론 국방부란 적이 늘 상존해 있었다. 바깥의 적에게 실패를 거듭하는 동안 이것이 빌미가 되어서 국방부로부터 결정타를 맞고 허물어지게 되었다. 국방부장관으로 CIA에게 결정타를 날린 사람은 바로 럼스펠드였다. 결국에 그는 조지 부시 대통령을 설득해서 CIA를 휘하에 두는 국가정보국(DNI)을 창설했다.

그러나 9.11 이후 ‘빈 라덴’을 추적하는 과정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CIA의 정보조직망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CIA를 무장해제 시키고 그 일이 실패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CIA의 ‘마이클 헤이든’국장이 2008년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 된 후에 시카고로 찾아왔다. CIA 국장으로부터 브리핑을 받은 (당시)오바마 후보는 백악관 아마추어들의 ‘정보유출’이 문제임을 간파했다.

2009년 1월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은 오히려 CIA를 강화시킬 방안을 강구했다. 월스트릿 쓰나미의 여파로 극심한 경기불황에 시달리는 국가의 현실을 놓고 볼 때에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산업을 보호해야 하는 일이 급선무로 여겨졌다. ‘안보’관련해서도 미국의 정보관련 허약함은 불안 했다. 취임 후 한 달 만에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 때에 백악관 비서실장을 역임한 연방하원 출신의 ‘레온 파네타’를 CIA국장에 임명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CIA를 신임했다. 전쟁을 수행중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관련한 CIA를 강화시켜 나갔다. 신임 CIA국장은 대테러 전에 집중했다. 그리고 첫 번째 성과에 대박이 났다. 빈 라덴을 사살했다. 대통령의 의지로 CIA가 부활한 것이다. 지난달에 오바마 대통령은 리언 파네타 CIA국장을 현 로버트 게이츠 장관(로버트 게이츠도 CIA국장 출신이다)에 이어서 국방장관에 내정했다. CIA 국장엔 중동에서 잔뼈가 굵은 야전군 출신의 데이빗 퍼트레이어스 장군을 임명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전통적인 군사작전 보다는 비밀공작에 가까운 작전을 벌이고 특수부대와 민간 보안업체를 활용해 군의 역할을 CIA와 같은 정보영역까지 깊숙이 넓힌 인물이다.

9.11 테러 이후에 소위 네오콘들이 짜 맞추어 놓은 안보시스템을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과거로 돌려놓고 있는 중이다 ‘CIA 부활하다’란 제목의 기사가 유력한 언론매체의 헤드에 낯설지 않게 오르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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