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4.15 월 19:27
재외선거, 의료보험
> People/커뮤니티 > 교포인사인터뷰
원칙과 강단으로 한인회를 지켜온 유럽총연 김다현 회장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1.06.1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나는 독일 광부 출신이다

   
▲ 김다현 유럽한인총연합회 회장
지난 25일 입국한 김다현 유럽한인총연합회(이하 유럽총연) 회장을 만났다. 연륜에 비해 그의 강직한 풍모가 인상 깊게 다가온다. 한손에 서류가방을 들고 유럽에서 가져온 포도주 한 병을 꺼내면서 맛이 괜찮다고 하는 말이 매우 정감이 넘치게 들린다.
김 회장은 2001년 유럽총연 회장을 맡은 후 벌써 11년째 장기 재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의 장기 재임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말들이 있지만, 10년이 넘도록 유럽총연을 이끌어 오면서 이뤄냈던 활동과 그의 삶의 역정을 볼 때 결코 녹녹치 않은 삶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1965년 독일 파독 광부로 간 이후 오늘날까지 유럽에 정착하며 살고 있다. 처음 발을 디딘 독일 아켄지역에서 4년간을 근무하다가 네덜란드로 이주해 1976년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했다. 독일로 같이 갔던 친구들은 미국 쪽으로 이주해갔지만 김 회장은 미국행을 택하지 않았다. “어려서 겪은 6.25전쟁 상처와 전쟁 유발의 책임이 미국에도 상당히 있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미국에 갈 수가 없었다.”고 그의 심경을 토로했다.

1938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13살 당시 6.25를 맞았다. 1950년 9월 중순경, 비행기에서 뿌려지는 전단(일명 삐라)에는 광주시 30리 밖까지 피해있으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6형제 중 결혼한 큰 형님만 처갓집에 피난 가 있었는데, 국군이 진격한다는 소식에 아버님 심부름으로 큰 형님을 모시러 영산강을 건너다 인민군에 발각돼 어린나이에 사실대로 고한다는 것이 결국 형님과 같이 붙잡히게 된 꼴이 됐다고 한다. 반동분자로 몰려 처형 직전까지 갔으나 고모의 친 조카가 그 지역 인민군 장교로 있던 덕분으로 다행히 살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후에 국군이 들어와 인민군에 동조한 사람들을 색출해 처형하였는데, 둘째 형님 친구가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둘째 형이 붙잡혔고 면회하러 간 어린 김 회장 자신도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했다. 13살 난 어린나이에 당했던 김 회장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김 회장은 이 전쟁의 원인과 결과물들이 강대국 특히 미국에 의해 비롯됐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지역에 첫 발을 디딘 곳이 독일이지만 김 회장은 독일에 대한 이미지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독일은 외국에 대한 차별이 심하고 백인 우월주위가 강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런 인식 때문이지 김 회장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덜 한 네덜란드로 이주해 1969년 필립스사에 입사했다. 4년 정도 다니다 아시아식품 만을 취급하는 식품회사를 차렸다. 그 후로 김 회장은 하루 32시간동안 쉬지 않고 6.5톤 트럭에 물건을 싣고 유럽전역에 식품배달을 할 정도로 악착같이 일을 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에 편안 지게차도 쓰지 않고 온몸으로 물건을 나르는 등 억척스럽게 일했다고 한다. 그렇게 죽어라 일한 덕분으로 김 회장은 암스테르담에 식당겸 호텔을 겸업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김 회장은 사업가이면서도 원칙의 문제만큼은 양보함이 없다고 말한다. 원칙의 문제 때문에 암스테르담을 방문한 한국인들과 싸운 적도 허다했다고 한다. 지붕위에 걸어둔 태극기를 두고 “왜 비오는 날 태극기를 내리지 않느냐”고 시비하는 바람에 “한국에서나 그런 주장을 해라, 여기는 국기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 무식한 주장하지 말라”고 해 다투기도 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한국 사람들은 그들의 고정관념으로만 인식하는 것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과 사건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유럽총연 VS 유한총연

김 회장이 한인회에 전념하게 된 것은 2001년부터 이다. 그 이전 1987년부터 2년간 네덜란드한인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88서울올림픽이 끝난 후 89년 11개국 한인회장들과 서울에서 모여 유럽총연을 발족했다. 초대 회장은 독일 이영창 씨가 맡았다. 김 회장은 2001년 5대 회장으로 취임해 지금까지 재임하고 있다. 과거 일부 한인회장들이 김 회장의 장기 집권에 불만을 제기하며 새로운 유럽한인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유럽총연 회장 하고 싶어서 했지만 두 번째 부터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유럽총연 회장에 나오려면 정관에 공탁금(3만5천유로-한화 약 5천5백만 원)을 내도록 되어 있는데, (회장 후보자들이) 낼 수 없다며 자기들을 무조건 추대해 달라고만 하니 그렇게는 할 수 없었죠. 밖에서는 이를 두고 내가 공탁금을 개인적으로 쓰려고 요구한다고 소문이 났지만, 공탁금만으로는 유럽총연을 운영할 수도 없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에요. 4년 동안 내 개인적으로 18만 유로를 썼습니다.”

유럽총연 회장 선거 등록에 필요한 공탁금은 김다현 회장이 취임하고 난 이후에 회칙에 삽입한 조항이다.
“유럽총연이 발족한 이후 내가 취임할 때까지 총연 자체 행사는 별로 없었습니다. 유럽지역에는 한국인 입양청소년들이 많은데, 이들을 위해 행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입양청소년체육대회를 개최하고, 이들을 위한 한글학교를 운영하는 등 이런 일을 계기로 한인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총연회장까지 맡게 되었는데 사비로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겠다 싶어 정관에 공탁금제도를 넣게 된 것입니다. 누가 회장이 되더라도 필요한 사항이라 봅니다.”

그러나 2009년 일부 유럽한인회장들은 ‘총연의 운영이 비합리적이어서 더는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김다현 회장의 명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듬해 ‘유럽한인회총연합회(이하 유한총연)을 발족시켰다. 유럽에 2개의 한인회총연합회가 생긴 셈이다.

김 회장은 이에 대해 “표면상의 이유는 나의 장기 재임과 독단적 운영에 대한 반발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공탁금제도에 대한 반발과 감투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 회장은 오히려 느긋한 입장이다.

   
“회장직을 오래전부터 그만두려고 했지만 임원들과 회원들의 적극적인 만류로 어쩔 수 없이 연장해서 회장직을 수행해 왔습니다. 유럽총연을 탈퇴한 한인회장들도 이제는 내 진심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기에 언젠가는 오해를 풀고 돌아오리라 믿고 있습니다.”라고 유한총연에 대한 입장을 조심스레 내비췄다.
“사람은 인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르고 정직하게 살면서 베풀며 사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죠. 자가기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대방은 더 똑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만 잘났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죠.”라며 유럽총연의 건재함과 확고한 입장을 덧붙이기도 했다.

김 회장은 “그들이 유럽총연을 탈퇴할 때는 나에 대한 반발심도 있고 해서 떠났겠지만 나와 오랜 관계를 맺어온 분들이어서 다시 돌아올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익단체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한인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친목단체이기 때문에 화합이 가능하다”며 유럽한인회에 대한 지나친 오해를 경계했다.

현재 유한총연은 내분과 갈등으로 5개국 한인회가 탈퇴를 선언한 상황이고, 향후 더 많은 한인회가 탈퇴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다시 유럽총연으로 합류할 것이라는 것이 김 회장의 분석이다.


교포정책과 재외동포재단에 대한 생각

정부의 교포정책과 재외동포재단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김 회장은 노무현 정부시절 외교부장관을 지낸 송민순 장관에게 “정부는 재외동포를 지원하고 후원하는 대상으로 봐야지 관리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고 밝혔다. 그는 덧붙여 “재외동포재단 이사장도 교포들이 임명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추천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재단 이사장은 우선 교포사회를 이해해야 하는데, 학자출신들은 대체로 자기는 다 안다고 하지만 조직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라며 나름의 재단 이사장에 대한 평가를 드러내기도 했다.

유럽총연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두고 있다. 김 회장은 2006년부터 재외국민참정권에 관심을 가지고 뛰어들어 한국 국회 앞에서 참정권부여 촉구 시위를 벌리기도 했다.
“내가 참정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파독 광부로 같이 간 한 친구가 ‘한국 국적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한인회에서 하는 일이 뭐냐’고 따져 물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죽기 전 한국에서 투표하는 것이 소원이다’고 하더군요. ‘한국 가서 밥이나 얻어먹고 박수치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네덜란드 국적을 소유한 김 회장이 누구보다 열심히 재외국민참정권 운동에 뛰어든 이유를 알만한 대목이다.

   
김 회장은 유럽에 입양된 한인 입양청소년에 대한 관심도 높다. 김 회장은 2000년 7월 한국에서 한국해외입양인후원회 창립식을 갖고 회장을 맡았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도 한 몫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 유럽을 방문할 때면 김다현 회장 집에 며칠씩 머문 적이 있었는데, 당시 유럽지역 입양인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눴다고 했다. 그 후 해외입양인에 대한 후원회가 결실을 맺게 된 셈이다.

유럽지역에는 약 8만7천여 명의 한인입양인의 살고 있다. 유학생을 포함한 유럽지역 동포들의 수가 11만여 명인 것을 고려하면 순수 교포보다도 입양인 숫자가 많은 편이다. 김 회장이 유럽총연 조직의 재정비와 재외국민참정권 확보 못지않게 입양청소년에 큰 관심을 두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입양인 문제를 접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한다. 입양문제의 근본적인 원인도 따지고 보면 강대국들의 책임이 크지만, 해외입양인들 조차도 서로 이해관계 때문에 쪼개져 있는 모습을 볼 때는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한다.

김 회장은 한국정부의 재외동포관련 예산에 대해서도 불만을 쏟아냈다. “700만 해외동포가 자산이라고 하면서 400여억 원의 예산을 쓴다고 하는데, 교포 1인당 5,700원 꼴입니다. 일개 조그만 군(郡) 단위 예산보다 못한 수준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재외동포에 대한 정책을 운운하면 설득력 있겠습니까?”라고 한국정부의 교포정책에 대해 매섭게 꼬집기도 했다.
“정부 관료들은 교포들이 모인 자리에서 틈만 나면 ‘G20 정상회의 개최국가’, ‘세계11위 경제대국’을 운운하지만,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한 개 한글학교에 월평균 약250달러 정도 지원하는 것을 보면 할 말을 잃는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

김 회장은 재외동포재단의 역할과 세계한인회장대회 운영위원회의 역할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세계한인회장대회 운영위에서 유럽한인회가 2개로 쪼개진 것을 두고 누구를 한인회장대회에 참여시키느냐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각 지역한인회는 그 지역 한인들이 만든 것으로 타 지역 한인회장들이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인사회 화합의 길로

유럽한인회가 비록 2010년 두개로 쪼개지긴 했지만, 최근 유럽5개국 한인회가 유한총연 탈퇴를 선언했고 루마니아 한인회 등 일부 한인회 등도 탈퇴 의사를 밝히는 등 새로운 환경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 회장은 요즘 유럽지역 한인회장들로부터 화합에 나서달라는 말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유한총연 한호산 회장과도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이고 한인회 화합에 대한 긍정적인 마인드가 있기 때문에 이번 6월 세계한인회장대회를 계기로 유럽한인회의 화합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감을 가지고 잠시 반대편에 섰던 분들에 대해서도 원망은 없습니다. 서로의 진정성을 확인한다면 화합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유럽총연 회장 출마에 필요한 공탁금 없이도 출마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그동안 전 현직 임원들만 출마가 가능했던 부분도 회칙을 고쳐서 누구든 출마할 수 있도록 바꾸었습니다.”

김 회장은 근래 입양인을 포함한 유럽지역 동포들이 하나 될 수 있는 복안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한인회 조직과는 관계없는 입양인만을 위한 조직을 구상중이다. “유럽 각국에 난립하고 있는 입양인후원회를 정비할 계획입니다. 입양인을 관리할 책임자를 선정하고, 조직(모임) 활성화를 위한 법인화 작업도 시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기 재임 유럽총연 회장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당부의 말을 들어봤다. “한인회는 단합분위기를 만드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재외동포재단은 지원 또는 후원 역할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유럽지역 동포들은 한국 정치권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미주지역 일부 한인지도자들이 바람을 넣어 들떠 있긴 하지만 다 소용없는 것임을 알았으면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거주국에서의 정치력신장보다는 한국정치에 기웃거리며 한인회장 감투로 대접 받으려는 행태는 그만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자녀(교포2세)교육에 대한 입장도 확고하다. 철저히 현지화 교육을 우선시한다. ‘미국에 살면 미국식 교육에 맞추고, 독일에 살면 독일식 맞춰 교육시키되 한인의 정체성을 심어주며 스스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터득하도록 교육시킨다.’고 전했다.
또 “한국의 고위층들은 자기 자녀들은 외국 유학 보내면서, 교포들에게는 한글학교 만들어 자녀들에게 한글 가르치라고 하는데 교포들 입장에서는 그런 여건에서 안 된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조직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17세에 가출해 온갖 일들을 해 왔다고 한다. 조직싸움에서는 누구와 겨루어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연륜이 있어 보여도 그의 강단과 기개는 대단함을 느낄 수 있다.

끝으로 김 회장은 해외 교포2~3세 우수인재들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 성공한 교포2~3세 중 인재들을 선발해 활용한다면, 한국이나 본인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지역에도 박사급 인재들이 많습니다. FTA 협상과정이나 번역 등의 분야에 이들 인재들을 활용한다면 번역오류나 협상과정에서의 난제들을 쉽게 풀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나름의 견해를 밝혔다.

“내가 자신이 있으면 체면 차릴 필요 없이 자유스러운 법”이라고 말하는 김 회장에게서 70평생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본 경험자로서의 자신감이 깊게 배어 있는 듯 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종로19(르메이에르 종로타운) B동 1118호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아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 | 편집인 : 이구홍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혜민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