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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뿌리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되살리는 사람조선족 뿌리 조각가 朴恩萬 선생의 이야기
강효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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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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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효삼 중국동포 작가, 자유 기고가 ]


   
▲ 강효삼 작가

중국 흑룡강성 상지시에는 나무뿌리로 희귀한 예술작품을 조각해내는 재간 있는 한 조선족 조각가 있다. 그가 바로 금년 58세의 박은만 씨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대한 꿈을 지닌 그는 소학교 4학년 때부터 남다르게 그림그리기에 흥취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무엇이든 자꾸 그리고만 싶어 그림그리기만 하다가 부모와 선생님으로부터 ‘공부는 안하고 엉뚱한 곳에 정신을 판다’며 핀잔을 듣고 자랐다. 하지만 그 취미만은 버릴 수 없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절로 그림그리기에 열중하였는데 때론 마을의 풍경, 사람, 짐승 등 보이는 족족 흥미를 가진 것에 소묘를 하였는데 한번은 마을 사람 넷이서 화투하는 것을 보고 그 즉석에서 소묘하여 보여주었는데 어린 학생이 그린 그림치고는 너무나도 근사하다고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소학교를 거쳐 중학교를 졸업한 후 생산업 노동에 종사하면서도 화가가 될 꿈을 버리지 않고 그림그리기에 열중하였다. 1978년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되면서 그는 미술대학을 지망하여 시험을 치러 합격은 했으나 당시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규정에 쫓아 갈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비록 학교에서 배우지는 못해도 삶의 현장에서 배우기 위해 소문을 듣고 당시 상지시에 있는 미술작품 제조사를 찾아갔는데 당시 책임자는 조선족화가 김창렬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림에 흥미가 있는 박은만을 보고 시험 삼아 그에게 화판을 하나 주면서 어떤 주제에 대한 내용의 그림을 4일안에 그려오라고 했는데, 박은만은 불과 한 나절만에 김창렬 화가가 요구하는 그림을 그려 미술품제작사를 찾아갔다. 박은만이 금새 찾아오자 김 화가는 그가 그림을 그릴 자신이 없어 왔는가하여 의아해했는데 그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내놓자 김 화가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내심 감복한 그였지만 다시 한 번 더 실험하기위해 그에게 30개가 넘은 화판을 주며 한 달 내에 다 그려오되 그림이 잘되면 대신 팔아주겠다고 까지 하였다.

제안을 받은 박은만은 집에 돌아와 낮에는 일하고 밤에 그림을 그렸다. 그가 마지막 그림을 그릴 때는 밤을 지새운 바람에 닭 우는 소리와 함께 너무도 졸린 그의 손에서 붓이 절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림을 다 완성한 그는 김 화가에게 차를 가지고 와서 실어가라고 했다. 그때도 그의 재능을 믿지 못한 김 화가는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없어 빈 화판들을 실어가라는 것인가 하여 매우 언짢은 표정을 가지고 그의 집에 찾아갔다. 그런데 완성된 그림을 보는 순간 김 화가는 박은만의 어깨를 치면서 ‘당신의 그림재간이 나보다 낫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를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미술품제작사에 와서 일하게 하였는데 그가 그린 그림은 당시로 말하면 좋은 값에 모두 팔려 제작사에서도 짭짤한 수입을 올리게 되었다. 

   
▲ '나래 펼친 독수리' (2008년 하얼빈시 민간민속뿌리조각전시회 우수작)

그때부터 그는 미술작품제작공장에서 유화를 그리면서 그의 미술 생애를 시작하였는데 미술과 더불어 조각에 대한 조예도 함께 키워갔다. 그것이 기초가 되여 1995년 한국에 와서 한 도화서에 들어가 유화를 그리면서 동시에 조각도 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를 조각가로 만들어준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조각의 기예가 더욱 늘어난 그는 1998년 고향에 돌아온 후 정식 조각업에 종사하게 되었는데 당시는 주로 자신의 예술작품보다는 도시의 신축아파트 단지들과 학교, 스키장 등 주문요구에 맞추어 학, 사자, 곰 등 동물들의 형상을 시멘트와 철근을 이용한 조각품을 만들어 정원에 세우는 일을 했다.

그러던 그가 나무뿌리 조각에 호감을 가지고 정식 뿌리조각에 몰두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 부터 7년 전이다. 어느 하루 호수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문득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나무뿌리 하나를 발견하게 되였는데 그의 눈에는 그것이 신통하게도 한 마리의 용이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나무뿌리에 사람이나 기타 동물의 형상을 조각하면 그것이 더 없이 좋은 미술작품이 되겠다 싶어 즉시 그 나무뿌리를 건져다가 용의 형상을 조각하여 그저 둥둥 물위에 떠다니던 나무뿌리가 예술적 생명을 가진 하나의 뛰어난 작품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하나하나 나무뿌리에 사람과 동물의 형상을 조각하면서 그의 눈은 그 뿌리의 생김새에 걸 맞는 동물의 형상을 발견할 줄 아는 예리한 판단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염집에 땔감으로 아무렇게 쌓여있는 나무뿌리든 산을 개간하면서 파 던진 나무뿌리든 그것이 어떤 동물의 형상에 걸 맞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것들을 가져다 거기에 사람이나 짐승의 형상을 조각하였는데 한 나무뿌리를 얻기 위해 때론 넓은 산판을 다 휘저어 돌면서 죽은 나무을 찾아 그 뿌리를 가져오는 데, 때론 너무 부피가 큰 뿌리들은 혼자서 감당할 수 없어서 사람을 데리고 가서 그것을 파서는 어깨에 메고 산을 내려오는데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나무뿌리를 얻기 위해 고생을 마다않고 노력한 결과 쓸모없이 버려져 흙에 묻혀 썩거나 물위에 떠 있지 않으면 죽어서 그냥 그 자리에서 부패해가던 많은 나무뿌리들이 그의 정교한 손을 거쳐 생생한 자연으로 가치 있는 예술품으로 재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년간 나무뿌리에 예술품을 조각하면서 체험한 것은 ‘나무뿌리는 비록 칼을 가지고 진행하는 작업이지만 나무에 칼을 너무 많이 대면 상품으론 될지언정 예술품으로는 그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무뿌리 조각을 함에 있어서 그 만의 원칙이 있다. 그는 뿌리의 원모양을 변형시키는 비중을 30%를 넘지 않게 한다. 뿌리가 사람 말을 듣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뿌리 말을 듣는 것으로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

 

   

는 될수록 자연미를 파괴하지 말고 나무뿌리에 대한 조각을 통해 자연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면서도 예술적인 가공을 통해 보다 자연을 아름답게 하자는 자연존중사상에서 출발한 그 나름의 예술적 추구이다. 하기에 그가 지금껏 사용한 나무뿌리는 모두가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버려진 나무뿌리가 아니면 오랜 세월 강물 속에서 썩어가고 있던 것들이나 혹은 모래나 진흙 속에 파묻혀 쓸모없이 버려졌던 나무뿌리들인데 그런 나무뿌리 가운데는 최고 1천 500년까지 된 나무뿌리도 있다고 한다. 개중에는 뿌리가 생긴 모양이 마치 하늘을 나래를 쫙 펼치고 오만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형상 같은 ‘나래 펼친 독수리’란 조각품이 있다. 이 작품은 2008년 하얼빈시 제9회 민간민속예술박람회뿌리조각 전시회에 출품하여 전시회에서 제정한 “열개 정품”가운데 하나로 선정돼 큰 인기를 모았다.

이렇듯 죽거나 버림받은 나무뿌리에서 새롭게 자연의 미를 발견하고 정적인 것에 동적인 생명을 주어 자연을 재생시키는 그의 친자연적인 발상은 또한 현실보다는 미래를 더 겨낭한 것이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지금 현대인들이 산을 자꾸 훼손시켜 자연적인 마무가 줄어들고 있는데, 그 뿌리들을 조각해 놓는 것은 미래의 후손들에게 자연의 가치를 인식시켜 더욱 수림에 대한 사람들의 보호의식을 키우게 하려는 의도도 들어있는 것이다.

나무뿌리에 각가지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을 조각하는 작업은 아주 정력이 많이 소모되는 섬세하고 힘든 작업이기에 보통 하나의 조각품을 만드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보통 한 달 가량 된다고 한다. 단순 조각이 아니라 인간의 풍부한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때론 ‘그것이면서도 또한 그것 보다 더 훌륭하고 다채로운’ 예술적 형상을 창조하였는데 이를테면 그가 공을 들여 조각한 ‘곰과 두꺼비’ 형상은 자연의 신비를 보여주면서 또한 동물의 공생을 통한 생태평형의 이미를 보여주어 더욱 의미가 깊다.

 

   
▲ 1500년 묵은 나무뿌리로 조각한 '하늘을 나는 용'

 

지금까지 그가 나무뿌리에 공을 들여 조각한 인간과 동물의 형상, 이를테면 ‘나래 펼친 독수리’, ‘용이 날다’, ‘암사자와 새끼들’, ‘성성이’, ‘악어’, ‘내 달리는 코끼리’, ‘곰’, ‘원숭이’, ‘거북이’, ‘금개구리’, ‘공룡과 호랑이’, ‘오래된 전설’, ‘묘녀의 소리’, ‘모자의 정’ 등 무려50여 종이나 되는데 참으로 이러한 형상을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노라면 그의 예술적 재능과 발상에 감탄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나무뿌리가 조각해놓은 동물의 형상들과 신통하게도 닮았는데 그러한 나무뿌리에서 그에 걸 맞는 동물이나 인간의 형상을 뽑아내는 그의 예술적 안광이 놀랍기만 하다. 마치 뿌리조각품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 같은 그의 집에 가면 각가지 신선한 예술적 향수를 느끼게 하는 동물들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박은만 씨는 비록 상지라는 한 작은 성시에서 묵묵히 자신의 예술적 추구에 열중하고 있지만 이미 그의 명성은 대외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일찍이 흑룡강텔레비죤방송에서 그와 그의 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리고 소문을 듣고 중앙텔레비죤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우리 마을에 이런 문화인이 있다’는 특집프로그램에서 그를 취재하려 했으나 바쁜 관계로 미처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해 무산된 적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이 폐지돼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대신 2005년 흑룡강성 선전부와 성문화예술연합회 그리고 하얼빈시 선전부와 하얼빈시문화예술연합회 공동으로 조직한 전성 조각작품전시회에 출석하여 그가 내놓은 조각품 ‘나래 펼친 독수리’가 우수상을 획득하였는데, 당시 참가한 500여명 가운에 조선족은 유독 그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조각한 작품과 겨를 만한 작품이 없어 자연 그의 작품은 전시회참가자들의 중시와 각광을 받았다.

지금 그는 중국미술가협회 회원으로 그리고 그의 이름은 흑룡강성조선족명인록에 기재되어 있다. 비록 상지라는 한 작은 성시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예술적 세계인 나무뿌리 조각에 집념하고 있지만 박은만은 자신의 부단한 추구와 창조로 보다 성숙되고 완벽한 뿌리조각품을 만들어 전국은 물론 세계의 뿌리 조각가들과도 겨뤄볼 꿈과 포부를 가지고 있다.

한편 나무뿌리를 가지고 조각하는 조선족조각가가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은 상황이지만 박은만은 이제 자신이 추구하는 남다른 예술적 성과들을 종합하여 ‘뿌리조각전람관’을 꾸릴 계획이다. 물론 그의 특이한 예술품이 상품으로 판매될 것도 바라고 있다. 소문을 듣고 가끔 상지에 오는 한국 손님이나 미국, 프랑스 손님들이 그의 집에 들려 그가 조각해놓은 나무뿌리조각들을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면서 그의 나무뿌리조각품을 사고자하나 가격이 맞지 않아 판매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박은만은 서두르지 않는다. 다만 그의 조각품이 한 작은 성(城)의 화실에서만 묻혀있지 않고 널리 홍보되어 더 좋고 더 많은 조각 작품을 창출해 내는 동력이 되도록 판매에도 치중할 계획이다. 박은만 조각가의 예술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어 예술적 향수를 줄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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