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효삼 / 중국동포 작가, 자유 기고가 ]


최근 필자는 한 중국 조선족 촌을 갔다가 다른 조선족 촌에서는 실로 보기 드믄 광경을 목격하였다.

이 조선족 촌은 70년대 초에 각지에서 모여온 조선족들에 의해 새로 건립된 촌인데 마을 앞들에는 수백 헥타르가 되고도 남을 넓은 들판이 펼쳐져있었다. 이곳에 처음 발을 디뎌 개척한 한 농민의 말에 의하면 본래 그 들판은 버들과 갈대가 무성한 황무지어서 처음 개척할 때는 허리까지 빠지는 진펄에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생스레 개척한 보람으로 황무지가 논으로 바뀌었고 그 덕분에 조선족들이 조선족마을을 세우고 벼농사를 지으며 한때 향수를 누린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조선족이 얼마 남지 않아 이젠 조선족 촌도 아니거니와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이제 저 넓은 벌판조차 조선족들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농민의 말에 의하면 한국바람이 이곳 외지에 까지 불어오면서 논에서 나오는 수입이 하찮아 보여 토지소유권에 대한 관심이 해이해진 탓에 촌민들은 헐값으로 타민족에게 아예 토지를 한평생 넘겨주었는가하면 마을을 책임진 한 조선족간부가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촌민들의 동의도 없이 수많은 토지를 타민족에게 팔아넘기면서 한국에서 돌아온 조선족 농호들이 제 땅의 소유권을 찾아 농사를 짓자고 그렇게 애써도 지금은 전혀 찾을 가망이 없어 짓고 싶은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면서 조선족들이 수고스레 개척한 이 벌에서 농사짓는 조선족 농호가 단 한호도 없는 마을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비록 그 마을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현재 조선족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토지임대와 토지 소유권문제 그밖에 조선족 차지였던 촌의 공동재산이던 산, 황지, 임지 등이 이젠 남의 것이 된 안타까운 사정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곳의 실지 내막들을 잘 살펴보면 기실 이렇게 된 데는 바로 조선족 자신의 잘못으로 빚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한 조선족마을엔 ‘타민족이 토지를 임대하여 농사는 짓되 집은 사서 들어오지 못한다.’는 규정을 세웠건만 조선족 간부가 앞장서 이 규정을 위반하였고, 이 규정을 주도한 간부자신은 슬쩍 자기의 집과 토지를 이민족에게 팔고 이사를 가면서 이민족이 마음대로 입주하는 명분과 기회를 주어 이젠 너도 나도 들어와 집과 토지를 차지하면서 순수 조선족이던 마을이 아예 타민족마을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것인가.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촌의 미래나 민족의 장래 같은 중대사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그들의 잘못된 처사로 인해 이제 일부 마을의 조선족들은 결국 후손들이 자리 잡고 살아갈 터전마저 몽땅 잃게 되었으니, 이러한 잘못은 이제 현시점을 넘어 먼 역사의 훗날까지도 미치게 될 것이다.

하기에 필자는 말하고 싶다. - 이는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기에 ‘누구 때문에’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하지마라. 그리고 진정 ‘누구 때문에’의 원인을 똑바로 규명하고자 한다면 누구 아닌 바로 자신에게서 찾으라!

그렇다. 조선족들이 당면한 온갖 위기들을 곰곰이 분석해 볼 때 문제는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 빚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소질이 부족하고 생각이 짧아서 혹은 흉금이 좁아서 그리고 나약해서 생긴 일이다. 이를테면 민족의 존재와 농촌의 해체, 인구 급감, 학교의 폐교, 민족간부의 부도덕성과 이혼율의 증가 등 이 모든 문제는 그 누가 우리를 강박한 것도 아니요 우리를 유혹한 것도 아니며, 소위 문화수준이 높고 총명하고 지혜롭다고 소리 높이 자랑해온 우리 자신이 실은 모자라고 부족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 이런 경우를 두고 “자랑 끝에 쉬 쓴다.”고 하는 것 같다.

물론 우리 조선족이 개혁개방을 맞아 달성한 초유의 성과와 진보를 죄다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과와 더불어 존재한 문제가 결코 가볍지 않고 자칫 이런 것들을 잘못 대하고 고쳐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우리의 존재와 발전이 퇴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극단적인지는 몰라도 지금 왜 향간에서는 “중국 조선족은 망한다.”는 말까지도 나돌고 있다. 정녕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자신을 해부해보는 것도 과히 나쁜 일은 아닐 것 같다. 그처럼 지금 중국 조선족은 생과 사, 진보와 퇴보의 갈림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남을 탓하고 형세를 탓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는데 열중하여 잘못의 근원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인가를 곰곰이 따져보아야겠다. 누군가는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고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필자는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는 것을 ‘소를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최근 어느 글에서 나와 같은 견해를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이런 주장을 하고 싶었다. 지난날 우리는 흔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이미 지나쳐 쓸데없는 일을 하거나 일의 순서가 뒤바꿔진 것 등의 뜻으로 평소에 대비가 없었다가 실패한 후 뒤늦게야 깨달아 대비한다거나, 혹은 일을 그르친 뒤에 뉘우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등 아주 부정적인 의미로 써왔고 지금도 그렇게 쓰이고 있지만 나는 요즘 이 속담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고 싶다. 즉 습관적인 의미로는 그렇게 쓴다 해도 이 속담이 일으키는 사회적, 지적영향을 생각할 때 이것을 전부 소극적이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적극적인 의미로 받아들여 비록 부주의로 소는 잃었지만 소를 계속 키워야 할 것이라면 소 잃었다고 외양간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우리의 잘못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며 아예 후회만 하면서 맥을 놓아버리거나 자포자기 하는 것이다. 코리안 드림과 연해도시 진출을 거쳐 그리고 복잡다단한 현실을 살아오면서 중국 조선족도 지금은 많이 각성해 토지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예전과는 달리 토지소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날로 높아져 전에 잘못된 문제들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바로 잡아 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이 소를 더 크게 잘 키우기 위해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돌아보면 지금껏 인류가 거둔 많고 많은 성과와 진보 역시 부단한 실패 속에서도 지난날의 잘못된 경험교훈을 찾아내고, 계속 소를 키우기 위하여서는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쳐’온 부단한 도전과 실천의 결과였음을 중국 조선족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