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효삼 / 중국동포 작가, 자유 기고가 ]


중국인의 생활에서 폭죽소리는 대부분 경사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명절날은 물론 결혼잔치나 기타 좋은 일엔 꼭 폭죽을 요란스럽게 터트리는 것으로 경축을 한다. 우리 조선족들도 장기간 한족들과 섞여 살면서 한족들의 이런 습관을 따라 배워 이제 결혼식이나 환갑잔치 때 폭죽을 터트리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점점 이 폭죽소리에 비애를 느끼고 있는데, 결혼식 날 더욱 그러하다. 왜냐면 폭죽을 터트리며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 또는 신부의 이름에 조선족이 아닌 타민족의 이름을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타민족과의 결혼이 간혹 있는 정도였지만 근래에는 부쩍 많아져 조선족끼리의 결혼이 어쩌다 한번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뉘 집 사위는 한족이요 뉘 집 며느리도 한족이요’하는 말이 보통이 되었고, 어쩌다 청첩을 받고 결혼식에 가보면 손님대부분이 한족들이어서 결혼식의 모든 순서마저 중국어로 진행하며 축가마저 한족노래를 해야 할 판이 되었다. 밀리고 밀리다 못해 이제는 우리의 우아한 잔치문화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나는 새삼스럽게 잔치 날의 폭죽소리를 들으며 얻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우리민족의 처녀총각들이 타민족 총각이나 처녀를 신랑 신부로 맞아들이니 한 가정이나 한 민족구성원으로 놓고 보면 얻는 것이 분명하지만 훗날을 생각하면 결국은 잃는 것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남편이 타민족일 때 태어나는 자식은 남편민족을 따라 그 민족이 되는 것은 자명한 것이고, 설사 남편이 조선족이고 아내가 타민족이어서 자식의 성이 비록 조선족이라 해도 한족이 대다수인 중국에서 아이를 직접적으로 양육하고 생활을 지배하는 현실적 능력이 남편보다 아내에게 있기 때문에 자식은 껍질만 남은 조선족으로 될 가능성이 많다. 하물며 조선족이 극히 적은 연해지구나 남방의 도시들에 사는 사람들은 설사 부부가 다 같은 조선족이라 해도 학교가 없어 타민족으로 동화되고 있으니...

지금 연해도시로 진출하여 자식을 타민족으로 만드는 조선족의 숫자가 그 얼마인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안타까움을 놓고 이를 받아들이는 조선족들의 태도는 각각 다르다. 어떤 이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반면 어떤 이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긍정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중국에 살 바에 하루빨리 동화되어 살아가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한다. ‘그까지 것 민족이 밥 먹여 주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잘살면 그만 아닌가. 민족 민족 하는데 모국을 찾아간다 해도 외국인 대우하며 오히려 천대받을 바엔 차라리 민족을 버리고 이방인이 되더라도 잘 사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이다.

한편, 어쩔 수 없다는 쪽은 외국으로 조선족 처녀들이 많이 빠져나가는데다가 근래 조선족처녀들의 눈이 높아져 비슷한 수준으로서는 조선족 처녀들을 취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혼인이 점차 정감을 배제하고 실리적이 되면서 출세와 부를 위해 인맥관계가 좋은 한족을 주도적으로 택한다는 것이다.
하여 여기서 밀려난 사람들은 할 수 없이 타민족 총각이나 처녀들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때 타민족과의 혼인을 극력 반대하던 부모들도 이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렇듯 민족심이 강하다고 하던 중국 조선족들도 이제는 타민족과의 혼인이 보편화되어 가고 있는데, 순발력이 강한 조선족들이 주류사회에 뛰어들려는 욕망과 기개가 누구보다 강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타민족과 쉽게 조화하는 적응력과 가변성을 가지려는 것으로 보는 측면도 있다.

소수민족으로서 중국에서 출세한 대부분은 같은 민족끼리 보다는 타민족과 친하거나 인맥이 두터운 사람들이다. 또 약자인 소수민족들은 대부분의 권력을 한족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기가 고달프고 힘들고 소외당하게 되자 생존과 자기보호를 위해 점점 한족과의 혼인으로 혈연관계를 맺음으로써 튼튼한 보호막을 결성하려 한다. 이런 환경에서 굳이 같은 민족과의 혼인을 고집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가난과 소외를 자처하는 어리석고 부질없는 행동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이제 타민족과 결혼에 있어서도 서로간의 문화적 충돌이나 갈등은 거의 없이 조화되고 공존할 수 있는 분위기 이다. 이처럼 내 속에 남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나의 흉금이 넓어졌다는 것을 표명하면서도 한편 그만큼 내 것이 비어있다는 것 즉, 다시 말해 나를 내려놓았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민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을 때 그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지금껏 지나온 역사를 고찰해볼 때 타민족에 동화되는 것은 그 무엇보다 다른 민족과의 피와 살을 섞는 결혼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물론 타민족과의 결혼은 중국조선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국인 한국에도 외국인 신부 백만 명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제 머지않아 순수한 대한민국 국민이 사라지고 잡종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마 안의 팥이 아무리 물러져도 그 안에 남아 있듯이 모국 한국은 남의 타민족을 데려다가 자기민족 자기 사람들로 만들기에 중국조선족처럼 심각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중국 조선족에게서 가장 큰 위기는 조선족인구의 급감이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현실을 정시하는 사람이면 누구 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민족은 중국 땅에 와 살면서 파란만장한 세월을 주름잡아 오는 동안 뼈를 깎는 각고와 끈질긴 인내로 갖은 풍파와 모진 곤혹을 이겨가면서 타민족에게 동화되지 않고 민족의 체질을 굳혔고, 민족적 삶의 현장과 문화적인 풍토를 유지해 왔다. 그것은 치열한 민족정신과 생명의식에 기대어 ‘백의 겨레’의 말과 풍속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의 결과였다.

그 중에서도 타 소수민족과 다르게 중국 대다수의 한족과 힘써 조화롭게 살면서도 결혼만큼은 꼭 조선족끼리 함으로써(심지어 보수적, 폐쇄적이다는 말까지 들으며) 어려운 풍토 속에서도 조선족사회를 지켜왔다. 그런데 이제 타민족과의 혼인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의식마저 변화되어 한 때는 그토록 거부감을 가지고 바라보던 타민족과의 결혼이 이젠 너무나 보편화되어 있고, 자존심 강한 조선족들의 눈에 익어가고 있으니... 이토록 현실적인 삶과 현실에의 적응이 두렵다는 말인가.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때론 박수갈채를 보낼만한 사연도 있다. 우리 주위엔 이러한 민족적 사명을 자각적으로 완성하기위해 자식만은 같은 민족끼리 시키는 것을 철칙으로 이행하는 부모들이 있는데, 이제 그들의 이런 노력이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러한 노력과 소망이 하나의 민족을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을 들었다 놓을 듯 굉장하게 터트리는 잔치 날의 폭죽소리가 비애로 때론 환희로 들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