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호 / 영산대학교 교수 ]


어제 필자는 한일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 직후 KBS 월드 라디오의 '시사충전' 프로그램에 전화 인터뷰를 했다. 아래 내용은 정상회담의 내용과 의미에 관하여 진술한 것을 문장으로 정리한 것이다.
양국 정상은 지난달 하순에 유엔총회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상견례를 나눈 바 있다. 이번에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취임 이후 양자 간 정상회담을 위한 첫 해외 방문지로 서울을 선택했다. 그는 5권의 도서를 들고 방한함으로써 도서협정의 이행 의지와 함께 한국에 대한 우호협력 자세를 내보였다. 이러한 외교적 퍼포먼스는 한일관계를 중시해 온 민주당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노다 정권 초기의 외교적 행보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통화스왑과 FTA와 같은 경제 교류 문제를 주된 의제로 하여 논의가 이루어졌다. 우선 한일 간 통화스왑 규모를 현재의 13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것은 종래 치앙마이 이니시어티브(CMI) 통화스왑에 의한 100억 달러 이외에, 이번에 신규로 한국은행과 일본재무성 사이에 300억 달러 규모의 달러-원/엔 통화스왑을 설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은행과 일본은행 사이에 원-엔 통화스왑을 300억 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로써 한국이 만약의 외환위기 사태를 직면하게 될 경우, 400억 달러의 미화와 300억 달러 어치의 엔화를 인출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다가 이미 중국과 맺은 26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을 더하면 한국은 1000억 달러에 가까운 외화자금 유동성을 확보한 셈이다.

또한 이번에 양국 정상은 FTA교섭을 위한 실무협의를 가능한 빨리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지난 2004년 관세 절하 문제와 관련하여 진행해 오던 경제파트너협정(EPA) 교섭을 중단했고 그 이후 2008년과 2009년에 실무자 협의를 재개했지만 양국의 입장 차이만을 확인한 채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은 기술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부품 산업을 앞세워 전자기기, 자동차, 조선, 철강 등의 업종에서 비교적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여 한국과의 FTA에 적극적이다. 여기에다가 한국이 먼저 시작한 EU나 미국과의 FTA가 일본 제품의 판매를 위한 시장 확대에 지렛대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전반적으로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때까지 일본과의 FTA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오늘날에도 일본과의 무역에서 연간 300억 달러 안팎의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FTA는 무역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FTA를 통해 기술경쟁력 신장을 앞당기고 단기적으로도 농수산업계 등에서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조기 타결을 주장하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이번에 양국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대해서도 공통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원칙적으로 조속한 북한의 핵 폐기가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에 긴요하다는 것과 양국이 앞으로도 긴밀하게 공조해 가겠다고 하는 것을 천명했다. 특히 일본정부는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지지와 협력을 요청했고 이에 대해 한국 측은 공조 의사를 분명히 했다. 노다 총리는 푸른색 핀 모양의 배지를 착용하고 회담에 임함으로써 '납치'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 모습을 일본 국민들에게 어필했다. 이 배지를 만든 '구출하는 모임'은 일본사회의 대표적인 보수단체로 북한에 대한 강경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고, 특히 '납치' 피해자 전원을 즉시 일본으로 되돌려 보내라고 하는 대북 강경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납치' 문제를 둘러싸고 북한과 직접적인 외교적 교섭을 소홀히 한 채 국제사회에 인권문제로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사실상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간의 과거사 문제가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의제에 들어가기에 앞서 발언을 통해 한일 간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안에 대해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태도를 요구하는 멘트를 했고, 이에 대해 일본 측은 '대국적인 견지'에서 논의하자고 하며 이 문제를 회피해 갔다. FTA를 비롯하여 한일 양국이 새로운 협력 모델을 구축해 가기 위해서는, 양 국민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에 대해서도 상호 해결을 향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965년의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일본이 더 이상 개인피해자에 대한 보상의 의무가 없다고 하며 법률적 해석만을 주장하는 데에는 인도적인 차원의 문제를 도외시한다고 하는 한계가 있다. 한일양국은 과거 한일회담에서 제외되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사할린 거주 피해자 문제, 원폭 피해자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인도적인 차원의 전후처리 방안을 함께 모색해 가야 하는 외교적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