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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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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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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18. 뉴스코리아 <데스크칼럼> / 최윤주 편집국장 ]


   
▲ 최윤주 편집국장
12일(토)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의 한 리조트.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21개국 지도자들이 참석한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제(APEC) 정상회의 만찬이 한창이었다. 이 날의 만찬은 여느 때의 만찬과 다를 바 없었다. 적어도 그가 그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는.

하와이의 인기가수 마카나의 노래시위가 화제다. APEC 정상회의 만찬에 라이브 가수로 초청된 마카나는 이 자리에서 금융자본의 탐욕과 정치권의 결탁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우리는 다수(We are the many)’를 불러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50번 정도를 다른 버전으로 바꿔가며 “우리는 거리를 점령할꺼야, 우리는 법원을 점령할꺼야, 우리는 당신들의 사무실을 점령할꺼야, 당신들이 다수의 명령대로 움직일때까지”라는 노랫말을 반복했다.

대부분의 정상들은 대화를 나누느라 만찬장소에 울리는 노래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들었는지, 듣지 않았는지가 아니다.
‘알로하를 점령하라(Occupy with Aloha)’는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현지 가수가 조심스럽게 노래에 담아 외친 “점령하라”는 구호는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 전체의 외침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점령(Occupy)’은 군사용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다. 전쟁상태인 군대가 적국의 영토에 들어가 그 지역을 자신들의 휘하에 두는 것을 점령이라고 말한다. 결코 일상의 대화에서 쉽게 나오기 힘든 점령이라는 단어가 마치 유행어처럼 미국사회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환경문제를 다루는 세미나에 “환경을 점령하라”는 주제가 붙여지고, 대학 스포츠 챔피언십 시리즈 기사에 “점령하라”는 제목이 달린다. 장난감 회사와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조차 “레고랜드를 점령하라” “세서미 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문구가 쓰이기도 한다.

‘점령(Occupy)’은 2011년 한 해동안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9일 글로벌 랭귀지 모니터는 전 세계에서 영어로 발간되고 있는 7만 5,000개의 인쇄매체와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의 언어를 취합한 결과 2011년 세계 각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언어는 ‘점령(Occupy)’이었다고 발표했다.

‘점령’이라는 단어가 미국을 점령한 데는 금융위기가 큰 몫을 담당한다. 경제의 붕괴로 생존 자체가 흔들리자, 오늘에 대한 불안과 내일에 대한 공포가 서민들을 시위대의 대열에 서게 만든 것이다.

경제 불평등과 생존 위기에 따른 사회저항운동은 올 한 해 지구촌 전체를 흔들었다. 지난 1월 튀니지에서 시위가 시작된 이래 국경을 넘어 지구촌 전체로 확산된 사회 저항시위의 공통분모는 ‘1%를 향한 99%의 분노’다.

1% 사회 극소수에 편중된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월가를, 런던을, 튀니지를, 중동을 점령하라는 외침이 되어 불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있는 자가 세상을 주무르고 강한 자가 호통을 치는 건, 잔혹하지만 자명한 정글의 법칙이다. 식지 않는 월가시위의 열기를 관심있게 바라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99%의 뜨거운 심장이 과연 잔혹한 정글의 법칙을 얼만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더불어 함께 고민하게 되는 정글은 ‘내 안’이다. 1%의 차가운 심장이 내 안을 점령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 안에 처참하게 무너져야 하는 잔혹한 정글의 법칙이 있는 건 아닌지, 내 자신의 ‘창조적인 파괴’를 위해 분노해야 할 것이 있는 건 아닌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문턱에서 한번쯤 고민해야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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