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


아침에 학교를 갔더니 이 달 7월부터 ‘월급 7.77% 삭감’이라는 내용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작년 3.11 대지진 이후 동북 지방의 쓰나미 피해 복구로 약 23조엔 예산이 투여되기에 ‘일본정부는 최대한 재정절약을 해야 한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직접 받아보니 실감이 났다. 이로써 3년 연속 월급이 삭감이 된 셈이다.

일본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35년 융자를 받아서 주택을 구입하고, 부부가 맞벌이를 하여 아이 한 둘을 교육시키기에 이번 삭감은 큰 타격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집을 소유하면 고정자산세 등의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등 보통 사람들에게는 정신없는 게 선진국의 공통점인 것 같다. 어느 노 교수는 “월급이 감봉 된 만큼 세금 종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니 큰일이다”라고 한 숨을 내 쉰다.

일본 지방공무원들은 각 지자체의 경영에 연관돼 있지만 국가공무원은 지난 6월 말 통과된 특례 법안의 저촉을 받아 2014년 3월까지는 모두 인내하고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다.
물론 일부 반대의 움직임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직도 가설 주택에 살고 있는 동북 지방 사람들의 고충이나 쓰나미로 희생된 사람들 혹은 그들 유족을 생각하며 감내해야 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필자도 이런 시기엔 차분히 서고나 사료에 파묻혀 연구나 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마닐라 포럼 이후 냉방병으로 골골하는 필자를 위해 때마침 친구가 얼큰하게 먹을 수 있는 김치찌개용 각종 김치와 양념을 보내왔다. 일본에선 귀하디귀한(특히 필자에겐) 참외도 챙겨준 한국 친구들 덕분에 필자는 오랜만에 밝고 행복한 순간을 보냈다.
각종 김치를 박스 가득히 항공편으로 받은 직원들의 연락을 받고 사무실로 갔더니 직원들이 나를 열렬하게 환영한다. 발효식품인 김치 팩이 무더위에 풍선처럼 부풀어서 사무실에 냄새가 퍼지던 터라 내가 안 오면 어쩌나 모두 걱정을 했다고 한다. 평소엔 수업도 많고 학생들 교육실습 담당도 하는 터라 사무실 우편물 가지러 갈 여유가 없다. 혹 이 무더위에 주말을 넘겼다면 김치 팩이 고무풍선처럼 부풀다가 터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마운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을 가슴 뿌듯이 안고 연구실로 와서는 창문을 열어 놓으니 한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 온 4학년생들이 와서는 김치냄새가 난다며 배가 고프다고 한마디씩 한다. 내 친구는 얼큰한 찌개로 기운차리라고 내게 보내줬겠지만 혼자 끓여 먹느니 공수과정에서 적당히 새콤해진 김치 몇 가지를 넣고 비벼서 학생들과 같이 먹는 것도 뜻있고 훈훈한 기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흰 밥과 큰 양푼이 같은 그릇 조달은 어떻게 하지?’했더니 세계일주 여행으로 서바이벌을 경험한 한 남학생이 금세 학교식당에서 흰 밥 몇 인분과 스테인리스 양푼을 가져왔다.
지인교수와 학생들이 합세해 재잘거리며 가장 부풀어 오른 배추김치와 깻잎김치 등을 넣고 김치 비빔밥을 비비는 동안 오랜만에 정겨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물론 이 여름철 우리 연구동에 김치냄새가 얼마나 진동했을까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그래도 동료 교수들은 다문화 체험으로 인식해 주었고, 다른 학생들도 연말이나 학기말에 음식을 만들어 파티를 하기에 이해를 해줬다.
비빔밥에 고추장과 참기름이 없어 허전했지만 모두들 김치로 만족하는 눈치다. 그 비빔밥에 콩나물국이 있었더라면 금상첨화였으련만...

영양도 있고 간편하게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콩나물국은 속 쓰릴 때나 새콤하고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속 풀이용으로는 최고의 음식이다. 일본에서는 콩나물(모야시) 한 봉지가 65엔 전후다. 무더위에는 시원하게 식힌 콩나물국을 마시거나 콩나물국에 빚은 무와 마늘 간 것을 좀 넣어서 먹으면 정말 훌륭한 힐링푸드가 된다.
유학생들이나 일본의 자취생들과 모이면 우리는 ‘모야시 사마’의 소중함과 가치를 논의하기도 한다. 평소에 잊고 사는 작은 존재가 실은 가장 소박하면서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절대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해 준 시간이 되었다.

친구의 배려로 김치 음식을 즐긴 뒤 귀가를 하니 별 것 아닌 충동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들의 뉴스가 나왔다.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의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다는 심각성을 느꼈다.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하자면 ‘1엔짜리 동전 66개 털다가 쇠고랑 찬 두 남자’ 이야기이다. 최근 도쿄 경시청 범죄대책과와 이케부쿠로 경찰서는 도쿄의 한 러브호텔에서 여성 종업원(56세)을 협박하여 현금 66엔(약 960원)을 강탈한 강도와 건조물 침입협의로 직업 불명의 두 용의자를 체포했다고 한다.
경찰서에 따르면 두 사람은 도쿄 이케부쿠로의 러브호텔에 침입하여 프론트의 여성 종업원을 협박. 프론트 안을 물색해 비닐 봉투에 들어있던 현금 66엔을 강탈해서 달아났다고 한다. 그들은 도주 후 1엔짜리 동전을 호텔 앞 길바닥에 뿌리고 도망쳤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남의 것을 간단히 빼앗으려는 사욕 때문에 두 사람은 천원도 못 되는 돈을 털다가 강도범이 된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돈이 없거나 힘든 경우에 처해질 때가 적지 않다. 그럴 때는 가능하다면 비록 임금은 적으나 아르바이트나 노동을 하면서 기본생활이라도 유지하며 힘든 시기를 넘기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고, 절약을 하며 사람들과의 교제비를 줄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또한 비축한 것도 가진 것도 없을 때는, 자신이 시험받는 시기로 여기며 다음 도약을 위한 자신을 연마하고 수련하는 기간으로 생각한다면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가 없을수록 남과 비교하며 남의 것을 탐하는 어리석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결코 남과 비교하여 버거워지는 삶으로 무리하게 살지 말고, ‘나는 나답게 나의 삶을 걷는다.’는 자신의 본분을 깨닫는 것이 초라해지지 않고 당당히 살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될 것이다.
남을 위협하여 쉽게 뺏은 돈이 내 재산으로 남겨질 리도 없거니와 30~40대의 젊은 나이에 범죄자로 전락하여 사회적 신용을 잃으면 정작 사회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해도 그 전력이 걸림돌이 되어 후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이치이다.

어차피 일장춘몽의 삶.
한번 살다 가는 것, 범죄자로 치부 받아 삶 전체를 모욕적이고 수치스럽게 살아야 하고, 순간적인 욕심으로 평생 씻지 못할 오명을 남기느니, 힘든 때 나를 다스리며 욕심을 버리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삶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일본 기상청은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듯한(これまでに経験したことのないような) 집중 물 폭탄이 구마모토(熊本)와 온천으로 유명한 오오이타(大分)를 덮쳐서 많은 이들의 희생이 생겼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고,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도쿄엔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지구 전체의 이상 기온과 불안정한 경제상황 때문에 모두들 어두워지기 쉬운 힘든 시기이다. 이런 때일수록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앉을 자리를 튼튼히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앞을 가늠하기 힘든 때 일수록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희망으로 인생 설계를 꾸미며 앞날에 대한 대처를 강구하는 사람이 빨리 현실 타개를 할 수 있다.

혹시 마음이 힘들거나 우울한 시간에는 오랜 만에 콩나물과 무를 사다가 콩나물국과 콩나물 비빔밥을 만들어서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무리한 외식보다 자그마한 만족이지만, 이런 만족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그 삶은 따스하고 풍요로운 삶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