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대법원의 무죄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2일, 1977년 북한 지령을 받은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소속 공작원에게 국가기밀을 전달(국가보안법 위반, 간첩활동)하고, 유신헌법을 비방(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김정사(58) 씨와 유성삼(59) 씨에 대해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에 대해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에 비춰 보더라도 위헌·무효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이 있었다.”며 “원심 판결 당시 법령이 폐지됐더라도 이 법령은 당초부터 위헌이어서 효력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는 무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고문과 위협으로 이뤄진 피고인들의 진술은 임의성이 없는 자백에 해당해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 판단은 법리를 오해하지 않았다.”며 간첩활동의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일동포 출신인 김 씨와 유 씨는 1970년대에 각각 서울대 사회계열과 한양대 의대에서 유학을 하던 중 전방 견학을 하면서 탐지한 국가기밀을 한민통 소속 공작원에게 전달한 혐의 등으로 1977년 4월 보안사에 체포돼 20여 일간 불법구금 됐다. 1977년 6월 이들은 국가보안법상 간첩 혐의 등으로 기소된 후 1978년 6월 19일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10년과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돼 1979년 8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날 때까지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당시 법원은 이들의 판결을 바탕으로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했다. 또 이 사건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당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민통 결성을 준비하고 의장활동을 했다.”는 근거로 이용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

2009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 결정을 내리고 조사에 착수해 2010년 3월 24일 김 씨와 유 씨가 ‘불법구금 상태에서 보안사 수사관들에게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해 허위진술한 점이 인정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서울고법 형사8부는 2011년 9월 23일, 이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김정사와 유성삼이 청구한 국가보안법 위반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심 재판부는 이들의 간첩혐의에 대해 “영장 없는 구속과 고문, 계속된 위협으로 이뤄진 자백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며 “김 씨가 일본에서 한민통 대표를 만났을 때 그가 대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