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 <칼럼> /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 ]

▲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수그러들만도 한데 중·일관계는 여전히 악화 중이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내 여론에 힘입어 ‘강한 일본’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있고 중국은 중국대로 ‘닦으면 닦을수록 검어진다’고 일본의 추악성을 폭로하고 있다. 이 싸움은 일본이 미·중 양국 구도를 삼각구도로 바꾸지 못하는 한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중국 지도자들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연일 강조하고 있고 이 부흥을 아시아에서 이루고자 하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을 중립화시키고 전후평화질서를 보통국가로 바꾸고자 하는 아베 내각을 주저앉히는 한편 주변국가를 다독거리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지난해 10월말 시진핑 주석이 주변외교공작좌담회에 참석하면서 이미 예고되었다. 시진핑 주석은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고, 좋은 이웃을 가진 것은 복’이라는 중국식 화법을 “주변국과 더욱 친하게 지내고, 성의를 다해 대하며, 중국 발전의 혜택을 나누면서, 더욱 포용해야 한다”고 명확히 했다. 실제로 우선 핵심 주변국인 러시아, 인도, 동남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첫 방문지로 러시아를 택했고 중국 지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인도와는 지난해 54년 만에 연내 총리 간 상호방문이 이루어졌고 금년을 중국·인도 우호교류의 해로 선포했다. 동남아 국가들과는 최근 조업권 분쟁에도 불구하고 21세기 해상실크로드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아베 내각이 공들여 온 동남아에 맞불을 놓고 있다.

중국의 주변외교에서 한국도 중요한 국가의 하나이다. 한·중관계는 최근 방공식별구역 설정과정의 일시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순항 중이고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도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하얼빈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건립하여 한·중관계를 과시하기도 했고, 한국의 중국 배려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중관계가 점차 중국의 대국외교, 주변외교, 다자외교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난도가 높아질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맞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에 관심을 가져왔다. RCEP는 동아시아 정상회의 참여국 중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대상이다. TPP가 새로운 무역규범의 창설을 목표로 하지만 RCEP는 통합시장을 구축하여 중첩된 자유무역지대로 인한 거래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점에서 그 출발점은 다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중국의 주변외교를 약화시키려는 미국의 질서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 TPP 참여의지를 적극적으로 밝힌 것은 중국의 전략적 구도와 상충되면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또 하나는 남북관계이다. 북한은 장성택 사건 이후 상호 적대행위 금지와 이산가족 상봉제의를 포함한 대화공세를 다시 시작했다. 이를 ‘위장’ 평화 공세로 일축하거나 한·미 연합훈련과 연계하는 전술적 조치로 간주해 버리기에는 지금의 국면이 간단치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북한의 변화가 중국이 주변외교의 맥락에서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에 대한 ‘권유’ 정책을 지속한 결과이고 북한의 대화공세에 호응해 중국이 즉각 6자회담 재개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북아 판에 지각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징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표적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이자 중국 외교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옌쉐퉁 교수는 향후 10년 내 비록 냉전은 아니지만 양극체제가 출현하고 이 무렵 중국은 주변외교의 차원에서 한·미동맹과 한·중동맹을 동시에 맺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주장이 현재 중국 외교정책의 방향은 아니지만, 동북아의 판이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돌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따라서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외교가 10년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는지 성찰하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외교는 윈드서핑과 같아서 사람이 중심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흔들리는 파도를 탈 줄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