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협 / 문화일보 정치부 차장

▲ 김상협/문화일보 정치부 차장

일본의 과거사 왜곡 도발에 대해 최근 잇달아 쏟아진 국제사회의 질타는 외교 당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반성해야 할 바도 많고, 지금이라도 서둘러 해야 할 일도 많다는 측면에서다.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은커녕 진심어린 사죄를 거부하는 일본에 국제사회가 최고 수위로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이 같은 지원을 등에 업고도 한·일 간 과거사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는 외교 당국은 무능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행여나 청와대와 외교부가 일련의 국제사회 흐름을 외교전의 승리랍시고 안주하려 든다면 한국외교의 미래는 없다.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거나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외교 전략이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특히 당국 간 공식 외교활동이 아닌, 이른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에 대한 근시안적 인식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는 평가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미국 백악관·국무부의 마음을 움직인 건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이옥선(87)·강일출(86) 할머니의 눈물겨운 투쟁 결과다. 두 할머니는 처절한 실상을 알리기 위해 17일 간의 미국 대장정을 마치고 7일 귀국했다. 두 할머니의 방미중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일본군의 여성 인신매매 연루는 개탄스러운 일이자 엄청나고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공개 비판했다. 유엔 인권 문제 최고 수장인 나비 필레이 인권최고대표는 “일본은 전시 성노예(sex slave)문제 해결책 마련에 실패했고, 공인들은 피해자들을 더 모욕한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워싱턴 백악관·국무부 면담과 뉴저지주 유니언시티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 등 일정은 나눔의 집과 재미동포단체인 시민참여센터가 주도했다. 공공외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은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배에 나섰던 대부분 국가들조차 일본만큼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용납할 수 없기에 가능했다. 그나마 양심적인 일본 아사히신문조차 최근 특집기획을 통해 “자유박탈, 여성 존엄 유린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불행인 건 대부분 외교 현안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도덕적 우위가 확실한데다 각국 양심세력에 의존할 수 있는 위안부 문제와 달리 곳곳에서 국익 셈법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지한파 의원들이 위안부 문제는 강하게 비판해도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나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로 한국 편을 들 리 없다. 국제사회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에 대한 우려에 오히려 일본편이다.

독도·동해 문제는 일제의 강제침탈이라는 역사의 맥락에서 국제사회를 납득시켜야 하는데 지금처럼 외교 당국이 공공외교 전략을 무시하는 한 희망은 없다. 각국의 마음을 사고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을 충분히 이해시키는 공공외교를 하라고 만든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나 국제교류재단(KF)의 예산은 일본의 10분의 1에서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실정이다. 전 부처의 공공외교 관련 예산으로 확대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일본이 무려 100년 동안 막대한 돈을 들여 해괴한 논리와 감성외교로 국제사회를 최면 걸고 있는데 외교 당국이 대응전략에 손 놓고 있다면 번번이 깨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