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득 /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1934년 10월 중국인민해방군 전신 홍군의 10만 군대는 장제스 국민당군의 포위와 추격을 뚫고 기나긴 행군을 시작했다. 중국 현대사를 바꾼 1만5000㎞ 대장정이다. 홍군은 18개 산맥을 넘고 17개 강을 건너면서도 치명적인 매복에 걸리지 않았고 포위망 중 가장 느슨한 곳을 골라 탈출했다. 비결은 바로 스파이였다. 마오쩌둥은 국민당 정보기관에 스파이 첸좡페이를 심어 놨다. 그가 빼낸 암호수첩으로 장제스의 지시와 작전을 미리 알았다. 중국을 장악한 후 저우언라이는 "첸좡페이가 없었으면 우린 벌써 몰살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41년 6월 독일은 돌연 소련을 침공했다. 북쪽으론 레닌그라드로 진격했고 남쪽으로 우크라이나 산맥을 넘었다. 중앙군은 모스크바로 돌진했다. 소련 방어막은 빠르게 붕괴됐지만 스탈린은 망설였다. 시베리아에 배치된 40개 사단이 있었으나 일본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는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왕 어전회의 결과를 빼냈다. 스탈린은 즉각 시베리아 사단을 모스크바 방어전에 투입했고 2차 세계대전 결과가 바뀌었다.

한국영화 사상 최다관객기록을 돌파한 `명량`에 탐망꾼 임준영과 이중스파이 항왜(降倭) 준사가 등장한다. 이순신은 목숨을 건 이들 첩보를 통해 일본 함대 일거수일투족을 손금 보듯 훤히 꿰뚫어 봤다. 준사는 적장 구루시마를 죽이는 데 큰 공을 세웠고 임준영은 화약을 실은 배가 대장선에 돌진하는 것을 죽음으로써 막아냈다.

미ㆍ일ㆍ중ㆍ러 4대 열강에 둘러싸여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신출귀몰한 탐망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신창이가 된 국가정보원이 정치권과 언론사 정보수집활동을 금지하고 방첩ㆍ대테러를 강화하는 조직개편을 어느결에 확정했다. 대선 개입 의혹을 샀던 심리전단은 대북전략국으로 옮겼다. 이병기 원장은 "정치개입 네 글자를 머릿속에서 지우겠다"고 말했다. 진정한 탐망꾼이 될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