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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인여성회장협의회 이효정 총재, 그는 누구인가
홍산 편집위원  |  ok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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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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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한인여성회장협의회 이효정 총재.
어제 오후 5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는 200여명의 세계각국여성지도자들과 국내인사, 특히 20여명의 여야국회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한인여성회장협의회’ 주최로 세계한인여성대회를 개막했다.

발 들여놓을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이 찬 회의장에 이효정 총재가 등장하여 인사말을 시작했다.
그는 “오늘이 우리 세계한인여성회장단 대회가 첫돌을 맞는 날입니다.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그동안 전 세계의 한인여성회장단의 활약상이 눈에 띄게 돋보였던 한해였습니다. 일백년의 이민 역사 속에서 우리는 전 세계인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그들이 우리 모국을 바라보는 유리창의 역할, 그것도 전 세계가 놀란 기적의 나라, 한류를 타고 넘치는 모국의 위상 그에 걸 맞는 우리의 언행으로 그들이 모국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보다 더 자랑스러운 모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좀 더 힘차게 세계인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도록 그 바탕을 다져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효정 총재의 개회사 겸 인사말이 끝나고 안홍준 전 국회외통위원장이 대회장 자격으로 “세계 한인 여성 재외동포들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며 여성들의 가진 친화력과 세심함을 강조했다. 이어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성곤 의원은 “분단 조국의 화해와 협력 시대를 열어가는 한인 여성 지도자들의 큰 역할을 기대한다”며 축사를 했다. 그리고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 강은희 의원 등 여성 의원들도 축하를 했다.

   
▲세계한인여성회장협의회 주최로 10월 4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2014 세계한인여성회장단회의'가 개막했다. 이효정 총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두관 전 경상남도 도지사도 연단에 올라 “세계여성의 역할을 기대한다”며 아낌없는 격려와 찬사를 보냈다.

여기에서 잠시 이 협의회의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해온 이효정 총재의 발자취를 살펴보자.

필자와 이효정 총재와의 교우는 7~8년전쯤 된다. 이 총재는 항상 상대방을 편하게 대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자기 이야기보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더 많이 경청하며 편안한 자리가 되도록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깊이 배어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총재가 언제부터 대인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덕목이라 할 수 있는 ‘편안한 자리’를 이끄는데 훈련이 되어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이 회장은 1993년부터 독일 뮌헨에 살면서 지난 2000년에서 2002년까지 뮌헨한인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리고 그 후 ‘유럽한인회’결성에도 혼신을 다해 노력한 바 있다.

당시 유럽한인회는 여러 가지 잡음도 있었지만 그녀의 특유한 온화함과 ‘다독이는 특성’을 살려 전임회장이 무사히 후임자를 선임하고 물러갈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이 총재가 회장을 역임하면서 체험했던 것 중에는 친정을 찾아갈 수 없는,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는 노인들을 대하면서 아! 저분들을 누가 돌볼 수 있으며 누가 제자리에 서 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깊은 고뇌를 했다.

한인들이 독일로 이주하게 된 것은 잘 아시다시피 독일광부와 간호사들이 효시다. 당시 한국은 대학을 졸업해도, 간호사 자격증이 있어도 취직의 관문을 뚫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서독에 정착하여 그 어려운 광부생활, 그리고 밤새 시체를 닦아내는 역할을 했던 어린 ‘간호사’란 이름의 파독여성들은 한푼한푼 알뜰히 모아 모국으로 송금하여 한국의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파독광부, 간호사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64년 12월 10일 독일을 방문해 함보른 광산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에 파견된 광부는 7,936명, 간호사는 1만 1,057명이었다.

1963년 1인당 국민소득이 79달러로 필리핀의 170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던 시절, 정부는 이들을 파견하고 대신 3,000만 달러를 독일에서 차관했다.
당시 독일광부의 한 달 임금은 국내의 7~8배에 달했다. 이들이 송금한 돈은 연간 5,000만 달러로, 한때 국민총생산(GNP)의 2%에 이르기도 했다.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국경제와 기업들은 50년 만에 우뚝 섰다.

그때 그 사람들이 파독광부와 간호사들도 이제는 70대 중반의 노인이 되어 쓸쓸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친정집’이 없어 모국을 찾고 싶어도 못 찾는 신세가 된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 세계한인여성회장협의회 창립총회.

이효정 총재는 말한다.
“여성에게 친정집이란? 모국의 동포들은 잘 모를 것”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다.
그는 여성에게 친정집이란 인생 마지막 가는 길에 의지할 곳, 마음의 안식처라는 것이다. 그래서 친정을 현실이 힘들어도 마음의 고향이라고 그토록 찾는다고 역설한다.

그녀는 자신이 체험한 ‘이민과 한국여성’의 역할론은 이민사 연구에도 필수과목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효정 총재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한국이민의 역사에서 여성의 힘은 컸습니다. 낯선 타국에 가서도 악착같이 살아가면서 한국 문화와 정서를 지키기 위해 온 정성을 다 쏟았습니다. 강한 모성애와 높은 교육열은 훌륭한 2세들을 배출하는데 원동력이 되었지요. 파독 간호사는 어느 면에서 가족과 조국을 위하여 희생을 묵묵히 감수한 사람들인데 이분들이 더 늦기 전에 모국을 방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한국정부가 관심을 갖고 추진해야 합니다.”

한국 이민사의 뒤안길에는 필설로서는 다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이 많다.
오늘날 세계 속의 한인은 공칭 700만 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지난 60~70년대 이민을 떠났다. 그런데 이들이 이민갈 때는 단돈 1,000달러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우리는 이들을 ‘보따리 이민’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 세계한인여성회장단대회 준비위원회 결성.
그녀는 또 “한국전 이후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에서 생활하는 할머니들도 많았다”고 했다. 이 할머니들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미국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혼당하여 홀로된 할머니들도 부지기수로 많았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고향과 친정이 없다. 언젠가는 이들 할머니들도 조국이 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한인여성협의회를 조직한 것은 지난해 6월이다. 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모국을 찾은 한인회 여성회장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세계 각국에서 온 20여 명의 여성회장들이 주축이 되어 발기총회를 열고 공식출범하여 1주년을 맞이했다.

이 총재는 이 자리에서 ‘글로벌시대 동포여성회 참여를 통해 단합과 친목을 도모하여 한민족 여성의 힘을 결집해 모국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는 협의회의 발족 취지를 소개하며 앞으로 ‘세계한인여성회관’ 건립과 ‘세계한인여성회장대회’ 등을 추진하고 차세대를 위한 교육과 취업지원을 적극 펼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효정 총재의 추진력을 지켜보면서 귀 회의 창립을 주의 깊게 지켜본다.
 

   
▲ 새정치민주연합 김성곤 의원과 이효정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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