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연변대학 사범대 교수

▲ 최균선 연변대사범대 교수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평상시에도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숙제부터 먼저 시작할 생각도 없이 그냥 놀고 싶어 하는 손자가 “좀 놀아도 됨까?”라고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별로 도움도 안 될 싱거운 생각에 젖어든다. 손장난이라도 마냥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오죽하랴 싶지만 왠지 교육가가 된 듯하다.

루쉰(魯迅)의 유명한 말 “아이들을 구하라!”라는 말이 떠올라 “아이들을 놀게 하라!”는 구호를 만들어 본다. “아이들의 놀 권리”라는 말은 일가견이 아니라 UN아동권리 협약 31조에 기재되어있는 말이다. 한창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이기에 산으로, 강으로, 들로 나가 광활한 천지에서 생명의 환희를 만끽하고 골목길에서 또래들끼리 짝짜꿍을 치며 같은 또래의 매 페이지마다 알록달록하게 채워가야 하는데 그건 교과서에나 쓰여 있는 말이다.

지금 아이들은 풍요 속에서 “빈곤한 어린시절”을 살고 있다. 왜? 겨울 같은 때는 어두워 교문을 나서고도 곧장 이런저런 학원으로 종종걸음 쳐야 하는 아이들이 그처럼 상식적인 ‘놀이’를 잊어야 하니 그게 불쌍하지 않단 말인가? 자신들에게 당당히 놀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 본인은 물론 부모들조차 생소할 것이다. 놀 권리라는 말은 일찍이 1922년부터 사용하였으니 이미 100년도 넘었다.

1989년도에 UN아동권리협약에서는 이 협약을 비준한 여러 국가들이 아동들에게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즐기고 연령에 맞는 놀이와 오락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세계아동헌장’에서는 모든 학교에서 놀이터를 갖추고 아동이 학교를 마치고 난 다음에 놀이터에서 놀도록 명시하고 있다.

상술한 협약들에서는 놀이라는 것 자체는 교육받을 권리와 더불어 ‘돈’이라는 수준의 가치를 지닌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지나가는 말로 한 권고차원이 아니다. 그런데 현대의 젊은 학부모 자신들도 놀 권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었기에 아이들을 놀게 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주말에도 집안에서도 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파트단지 내에서도 왁자지껄하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없고 방과 후 야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아예 없는 실정이다.

대신 현대 문명의 혜택이라고 할까, 아니면 재난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고 늦은 시간까지 게임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것을 논다고 하고 있고 가장 재미있는 놀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여가놀이, 오락 이런 것들을 다 놀이의 범주로 포함시킬 수 있는데 실제로 아이들이 하고 있는 컴퓨터게임이라든가 모바일 게임들은 정해진 루트들을 따라가는 굉장히 구조화된 활동들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놀이의 본질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지성인들이 아이들의 일상생활에서 바깥놀이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본인들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되 밖에서 놀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공간을 많이 확보해주어야 한다는 이러한 문제를 가급적으로, 실효성 있게 해결할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없다.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시대가 그저 발전정도가 아니라 비약적이지만 아이들의 생리적, 심리적인 본성에서 본다면 아이들이 직접 만든 원시적이고 조잡한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바람직하고, 흙장난도 하고 바깥에서 뛰어놀며 때때로 나무에도 기어오르고 산으로, 강으로, 들로 나가서 놀기도 하는 것이 아이들의 원초적인 본성에 걸 맞는다는 사실은 결코 시대성을 띠지 않는다.

평생을 가르치려면 어릴 때 마음껏 놀게 하라는 유태인의 격언이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아이들의 삶 자체가 자꾸 실내, 공간 안으로 파고들게 되는 그런 생활구조를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연과 접촉해서 놀이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두절될 수밖에 없다. 열 명의 아이들 중 여서일곱 명의 아이들이 놀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아예 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 부모가 짜놓은 일정에 맞추어 방과 후에도 학원에 가느라고 쉼 쉴 틈조차도 없다.

주어진 여건도 여건이려니와 실내든 실외든 아이들이 놀 시간이 없게 만든 원흉은 학습부담 과중이다. 과거에 비할 바도 아니게 현명해진 현대 학부모들이지만 잘 놀고 또 놀 줄 아는 아이가 행복하고 또 공부도 잘한다는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애초에 믿으려고 하지 않으니 이건 문명개화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건 이해가 어려운 심오한 과학이 아니라 놀이가 아동의 현재 행복과 관계있는 것으로 확인된 상식이다. 어릴 때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일수록 창조력이 강하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있지만 사실 그렇다. 어려서 개구쟁이가 성장해서 뛰어난 인재가 된 사람들이 많다. 조선족의 유명학자, 과학자들을 이어갈 후계자가 몇몇이나 나오고 있는가?

아이들은 뭇 시선을 먹고 자란다. 한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사회 모두의 시선이 필요하다. 특히 또래들끼리 하는 여러 가지 놀이에서 자기 이미지를 형성시키는데 시선·평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들의 어울림, 그것은 미래사회인의 어울림의 척도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성적인 부모들은 이런 도리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른들은 별별 다 놀면서 자기 아이들이 노는 꼴은 절대 못 봐준다. 이건 확실히 개그가 아니라 자아풍자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가능한 것 살아있는 일체의 것 즉 동물이든 식물이든 대자연속에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관찰하고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심신상 건강하게 성장하는 영양소이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쩌다 송아지를 보아도 함성을 지르고 염소나 양떼를 보아도 신기해한다.

아이들이 익숙하지 않은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한 준비단계는 오로지 학문을 닦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노는 가운데서 자신의 허약함을 절감하고 새로운 적응력과 비전을 가져온다. 지금 아이들이 왜 보편적으로 신경질적인가?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내심의 스트레스 때문이다. 어른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내심에 화가 들이차면 나머지 공간이 좁아지는 법이다.

지금 아이들은 육체적으로 겉만 쑥쑥 잘 커가고 있지만 자기가 감당할 부분에 대한 적응력의 발달이 정비례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내적인 성숙이 바람직하게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놀이 속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자기가 꼭 해야 할 것을 찾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성 지식을 외우고 문제에 주어진 답을 쓰고 문제풀이를 하는 게 인간교육의 최종목적이 아니며 더구나 전부의 내용일수는 없다.

하지만 현대교육을 ‘점수 교육’, ‘줄 세우기 교육’이라고 일축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을 치열한 경쟁과 다그침으로 나타날 수 있는 타율적 교육환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력은 점수경쟁에서 수련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사회 경쟁력은 단순히 학위경쟁이 아니고 능력경쟁이며 EQ(감성지수)의 경쟁이다.

바람직한 교육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물론 이에 대하여 이론적으로는 멋지게 논할수 있다. 학교교육이 장차 살아가는데 필요한 각종 지식과 삶의 방식을 습득하는 과정이지만 순수한 교육에 대한 개인의 열정과 취미, 호기심을 실천적으로 무시하는 획일적 교육 행태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개인과의 학습능력을 자로 재듯이, 칼로 두부를 베듯이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교육초기에 능력이 나타나는가 하면 청소년기에 잠재력을 발휘하는 늦둥이들도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른바 조기교육이 능사인 것처럼 각인되었다. 물론 신동들이 없지는 않지만 아이들마다 신동일수 없으니 자칫하면 곡식고갱이를 잡아당겨 키를 늘였다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인간의 인지능력은 신체의 발육과 동보하기 마련인데 무작정 조기교육만 내세운다면 인식 규율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옛사람들의 고훈(古訓)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초기 획일적인 학습능력평가 결과로 학습부진아로 낙인찍는 문제와 개인의 소질과 특성을 살리지 못할 수 있는 수박 겉핥기식 평가가 경쟁력 있는 인재를 키울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을 혼자 놀게 하기도 하고 어울려 놀게도 하라. 노는 과정에서 협동심, 사회적응능력 그리고 창의적 발상을 할 수 있는 자유로움과 이상과 알록달록한 꿈이 키워진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라. 지금 무엇을 제일 하고 싶은가, 그들이 원하는 생활을, 희망을 교육에 접목시키는 방식이 교육을 살리고 아이들을 살리고 사회를 살리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지금의 교육은 아이들을 자유롭게 놀지 못하게 하는 점과 획일적 학력평가 방식에 의한 줄 세우기와 같은 교육으로서 미래 세대들의 얼굴에서 밝은 웃음을 보기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루쉰 선생이 “아이들을 구하라!”고 함성을 질렀다면 지금은 분명 “아이들을 놀게 하라!”고 호소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