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 김삼오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건국 이후 헌법을 무려 9차례나 뜯어 고쳤습니다. 조사를 못해보지만 아마도 세계적 기록일지 모릅니다.

국가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에 대한 골격을 정하는 기본법을 이렇게 자주 바꿨다는 건 절대 자랑이 아닙니다.

일부건 전면이건 개헌이 그렇게 자주 필요했던 이유는 헌법학자가 넘쳐나는 한국에서 지식과 경험이 없어서도 아니고, 사회가 급변하여 거기에 맞추어야 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실은 우리 초대 헌법은 여러 선진국의 좋은 조항을 참조한 결과 세계적으로 2등 가라면 서운해야 할 아주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그게 만신창이가 된 건 사사오입 개헌, 5.16헌법, 유신헌법 등의 오명이 붙은 대로 장기 집권이나 권력 찬탈을 꾀하는 불순 세력들 때문이었지요.

1987년 6월 항쟁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바 오래 참아온 국민이 목숨을 건 민주화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잘 못된 과거를 버리고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한 국민적 합의 아래 새 헌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그게 9번째입니다. 그런데 그 헌법이 어때서 심심하면 고쳐야 한다고들 합니까. 세비 두둑이 챙기는 정치인들의 한담도 이만 저만입니다. 방구가 잦으면 똥이 된다던가요. 내년에는 또 한번 국민투표로 개헌 잔치를 하자는 목소리가 일부 실세 정치인들 간에 득세하고 있습니다.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왜 모자란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않을까요? 개헌의 구체 안이 아직 발표된 바 없지만 너무 막강한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게 주요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건 크게는 대통령 중심제 대 내각책임제의 문제입니다.

저는 초대 헌법을 기초한 고 유진오 고려대학 총장의 강의를 코앞에서 직접 들어 잘 압니다. 그는 원래 내각책임제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 초안을 만들어 올렸습니다. 이게 공산주의와 대결하기 위해서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으로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 총장이 내각책임제를 제안한 근거는 이렇습니다.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대통령과 의회 간에 큰 국가적 이슈를 놓고 교착(deadlock)이 생길 때 해소할 길이 없어 군사 쿠데타를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남미에서 잦았던 쿠데타가 그런 사례였다는 것입니다.

이 헌법 학자의 이론과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우리 사회를 너무 순진하게 본 탓인 것 같습니다. 5.16 쿠데타는 사회 혼란과 군부를 다스리지 못한 내각책임제 장면 정권의 허약체에 힘 입어 성공한 게 아닌가요?

대통령제와 내각제, 어느 쪽이 더 좋으냐의 교과서적 논쟁은 탁상공론이 되기 쉽습니다. 세계 지도를 펴놓고 보세요. 대통령제로도 잘되는 미국과 프랑스가 있고 내각책임제로 잘 되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쪽을 해도 정치가 불안정하고 잘 안 되는 제3세계 나라들이 많습니다.

관건은 민도 입니다. 법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교훈입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면 계파 정치가 지금보다 심화되어 정치는 더 불안해집니다. 법 좋아 하는 한인들이여, 국내와 해외 한인사회에서 모두 단체와 기구 안에서 왜 법과 정관 시비가 그렇게 흔한지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