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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시 통하현 조선족학교 김명선 교장선생님을 만나다발전하기 위해서는 바뀌어야 한다
고선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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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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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선 중국 헤이룽장성 통하현 조선족학교 교장선생님.
선생님의 꿈을 키운 하얼빈의 야무진 소녀

둥베이(東北)평원의 중앙, 헤이룽강(黑龍江) 최대의 지류인 쑹화강(松花江) 연변에 위치한 하얼빈은 중국에서 가장 추운 지역으로 꼽힌다. 겨울철 평균 기온이 영하 20℃에 달하며, 무려 영하 40℃까지 떨어지는 해도 허다하다. 하얼빈시 통하현 조선족학교 김명선 교장선생님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긴 겨울을 품은 하얼빈의 작은 시골마을 쌍흥촌에서 태어났다.

가난했지만 2남3녀 다복한 가정의 넷째로 태어난 이 사람은 주변의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착한 딸이었다. 커다란 눈방울이 예쁜 정열적이고 다부진 성격의 소유자였다. 언니 오빠를 따라 집에서 가까운 조선족학교에 다녔다. 키는 좀 작았지만 똑 부러진 사람인지라 무엇을 해도 뒤지는 법이 없었다. 노래도 그림도 공부도 참 잘 했다. 그녀는 항상 집안의 자랑이었다.

조선족 소학교 6년, 중학교 3년을 다니고 하얼빈 아청(阿城)구에 위치한 보통사범학교에 입학했다. 보통사범학교란 조선족을 위한 학교가 아닌 한족(漢族) 학교이다. 조선족학교에서는 조선어로만 공부를 했기 때문에 한족이 쓰는 언어인 한어(漢語)로 시험을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국에 산다고 모두가 다 한어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살면서 조선족학교에 다닌 사람에게 한어는 영어나 일본어와 같은 또 하나의 외국어와 같은 것이었다.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소녀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4년 후 꿈을 이루었다. 5남매 중 유일하게 공부를 마친 소녀는 1989년 한족 소학교의 선생님이 되었다. 이 지역에서 조선족이 한족학교의 교사가 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주로 음악을 가르쳤는데 항상 최선을 다하고 몸을 아끼지 않는 선생님은 모두의 신임과 사랑을 받았다. 가르치는 일만이 아니라 보직까지 맡아서 많은 일들을 담담하게 처리했다.

1991년 22살 어린나이에 중학교 동창이었던 사람과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지금은 건축업을 하고 있지만 당시 조선족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편은 중국 공안국(경찰)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듬해에는 예쁜 딸아이를 얻었다. 안정된 가정을 마련하고 더욱 일에 전념했다.

2005년 큰 변화가 있었다. 한족 소학교에서 지금의 통하현 조선족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조선족을 위한 소학교와 중학교로 구성된 이 학교는 김명선 선생님의 모교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한족 소학교나 조선족학교나 모두 다 공립이라 교사로서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민족의 학교에서 게다가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일은 하나의 커다란 사명감으로 다가왔다.
   
▲ 통하현 조선족학교 전경.

조선족학교에서는 한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3년 후, 2008년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통하현에서 임명한 것이다. 이 일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1956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여자 교장선생님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주변을 놀라게 했다. 평교사 중에는 일찍이 교장선생님을 직접 가르친 스승도 계셨다. 사실 말들도 많았다. 이래저래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작아질 사람이 아니다. 가슴을 펴고 팔을 걷어붙이고 전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 아닌가.

   
▲ 통하현 조선족학교 학생들이 체육대회 때 한복을 입고 행진을 하고 있다.

조선족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

2008년 당시,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첫 번째가 조선족학교의 학생수 감소다. 한족에 비해서 조선족은 이동을 참 많이 하는 민족이다.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대련이나 베이징 등 큰 도시로 진출했을 뿐 아니라 한국으로도 많은 인구가 진출했다. 이로 인하여 농촌 붕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비단 통하현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언제부터인가 조선족 부모들이 자녀를 조선족학교가 아닌 한족학교로 보내기 시작했다. 조선족학교에서는 조선어만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보통 학교 진학이 어렵다. 설사 소수 민족학교 졸업생에게 가산점이 주어진다고 해도 조선족학교 출신 학생이 한어로 보아야 하는 시험은 외국어로 시험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족 부모들이 자녀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면서 교육에 대한 생각 역시 바뀐 것이다.

게다가 70년대 말부터 시행된 중국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하여 약 4억 명의 인구가 감소했다고 하니, 중국 전반에 있어서 학생수가 줄어든 것은 말할 바도 없는 사실이고 조선족 학생수 역시 감소했다. 학생수의 감소는 폐교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한족학교와 더불어 조선족학교의 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2002년에는 시골학교의 합병이 시작되었다. 통하현 조선족학교는 하얼빈 동쪽 근린 6개현에 남은 유일한 조선족학교이다. 사실 통하현에만 해도 5개의 조선족학교가 있었는데 모두 다 문을 닫고 하나만 남은 것이다.

2008년 당시 통하현 조선족학교의 학생수는 48명이었다. 주변 조선족의 인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다. 특히 젊은이들의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어 결혼을 한다거나 출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힘들어졌다. 농촌 붕괴 현상은 결국 학교 문을 닫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수민족의 전통과 문화도 사라지게 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교장선생님의 결단, 발전을 위한 변화

김명선 교장선생님은 “발전하기 위해서는 바뀌어야 한다”고 외쳤다. 그리고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 특별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첫째 통하현 조선족학교 안에 유치원을 세웠다. 시골에 사는 조선족 아이들은 소학교에 입학하기 전 교육을 받을 곳이 없다. 한족 유치원에 가면 된다고 하겠지만, 유치원은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또한 조선어를 배울 수 없어서 조선족 소학교 입학시 어려움이 많다. 조선족 유치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교장선생님은 공공기관을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중국은 소학교 6년 중학교 3년 ‘9년 의무교육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른바 유치원은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공립학교인 통하현 조선족학교 안에 세울 수 없다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김명선 교장선생님이 밀어붙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되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것이 능력이다”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끝내 통하현으로부터 허가를 받아냈다. 학교는 공립이라 학비를 받을 수 없으며 설비도 선생님도 부족하다. 그래도 어렵지만 유치원 문을 열고 아이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둘째 한족 학생을 받아들이고 조선어만이 아니라 한어 수업도 병행하도록 했다. 조선족학교에서는 조선어로만 수업을 했다. 사실 선생님들 중에는 조선어밖에 할 줄 모르는 선생님도 계신다. 그래서 개혁을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중국땅에 사는 이상 아무리 조선족이라고 해도 한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선생님들부터 한어를 공부하게 했다. 한족 선생님도 받아드렸다. 한족 학생도 받아드렸다. 성공적이었다.

다행히 한류에 힘입어 조선족 학교를 찾는 한족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선생님들의 교육열에 대한 입소문이 돌면서 찾아오는 학생들이 생겼다. 2008년 48명이었던 학생수가 160여명으로 늘었다. 이 중에는 한족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몇 년 후에는 한족만 남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쓸쓸한 웃음을 짓는다.

   
▲ 통하현 조선족학교 선생님들로 구성된 악단.
중국에는 56개의 민족이 있는데 한족을 제외한 55개가 소수민족이다. 중국은 소수민족 유지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소수민족이 소수민족으로 남기 위한 방법은 ‘고립’이 아니다. 한족과 어울리면서 민족의 문자와 언어를 간직하고 전통과 문화를 지키는 일이다. 사실 55개의 소수민족 중에는 자신들의 문자와 언어를 잃어버린 민족도 있으며, 스스로 유실되어가는 민족도 적지 않다. 조선족도 농촌 붕괴 현상과 더불어 자멸할 수 있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한족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교장선생님의 생각이다.

통하현 조선족학교에서는 이제 더 이상 한어가 외국어가 아니다. 조선어와 한어 두 개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교육하고 있다. 조선족학교에서 공부한 한족이 한국을 배우고 한국으로 진출할 수도 있는 일이고, 조선족학교에서 공부한 조선족이 한족과 같은 정도의 한어 실력을 갖추어서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도 있다. 중국내에서 그들의 위상이 커지면 조선족 전반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며 한중 관계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조선어문 중심의 교과서가 아니라 표준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교재를 바꾸기 시작했다. 교장선생님은 외국인 및 재외동포들의 한국어 사용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마련된 ‘한국어능력시험 TOPIK’에 관심을 가지고, 학생들이 이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연변교육출판사에서 출판된 TOPIK 교재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 시험은 한국어 사용능력을 측정 평가하여 그 결과를 국내 대학 유학 및 취업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므로 학생들의 한국진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 중국공산당 창립 기념행사에서 김명선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조선족학교 선생님들이 전통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조선족학교는 지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인 사업인지라 무엇 하나 쉽지만은 않다. 교장선생님이 교포문제연구소를 찾은 것은 솔직히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이다. 유치원을 세웠다고는 하나 시설도 교구도 선생님도 부족하다. 표준한국어를 교육하고자 하지만 제대로 된 책도 교사도 부족하다. 한국에서 조선족학교를 위해서 교생선생님을 파견해준다거나 교구나 책을 지원해줄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

통하현 조선족학교는 하얼빈 시골의 작은 학교이지만 하얼빈에 남은 많지 않은 조선족학교 중 하나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언제 문을 닫을 지도 모른다. 열악한 이 학교를 한국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준다면 중국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학교로 인정하고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 줄 것이다. 학교를 지키는 일은 바로 조선족 전통과 문화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중국정부에서는 소수민족 학교만이 아니라 모든 학교에 대해서 ‘학교발전을 위해서 그 학교만의 특색을 가진 특수학교’로 탈바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통하현 조선족학교에서는 태권도, 무용, 사물놀이와 같은 것을 교육하는 특수학교를 지향할 생각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 육성에 도움이 될 것이며 동시에 중국 교육정책에도 부응하는 일이다. 지금 많은 것이 부족하다. 태권도 사범, 사물놀이의 의상이나 악기 등의 지원도 절실하다.

한국과 중국의 미래를 위한 일

춘추시대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관중(?~BC 645)이 지은 《관자》에 “1년에 대한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10년에 대한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것이 없으며, 평생에 대한 계획으로는 사람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다. 한 번 심어 한 번 거두는 것이 곡식이고, 한 번 심어 열 번 거두는 것이 나무이며, 한 번 심어 백 번 거둘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一樹一獲者穀也, 一樹十獲者木也, 一樹百獲者人也)”라는 글이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을 기르는 일은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일이니만큼 100년 앞을 내다보고 계획을 잘 세워 진행해야 한다. 지금 김명선 교장선생님이 하고 있는 일은 조선족 100년의 미래, 아닌 한국과 중국의 미래를 위한 일들이다.

“교육은 인재를 배양하기보다는 인간을 배양해야한다. 이른바 난사람이 아니라 된사람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통하현 조선족학교와 같은 의무교육의 장에서는 인성교육이 중요하다. 조선족이 조선족으로서의 인성교육을 받을 곳이 없어진다면 조선족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는 발전해야 한다. 조선족은 한족을 알아햐 하고, 한족도 조선족을 알아야 상호 발전하며 조선족의 민족문화를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교장선생님의 조선족학교 미래를 위한 생각이다. 나는 아직 젊은 40대의 당찬 교장선생님의 꿈을 그리고 정열을 응원하고 싶다.
 

대담자/고선윤 뉴시스헬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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