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조 / 논설고문

조선시대에는 시중에 떠도는 소문만으로 관리를 탄핵하는 풍문탄핵(風聞彈劾)이 있었다. 지금의 기준으론 납득이 어렵지만 염치를 중히 여기는 시대였기에 가능했다. 고위관료일수록 풍문탄핵이 많았다. 당사자로선 억울할 수도 있지만, 탄핵을 당하면 일단 사직하고 시비(是非)를 가리는 절차를 밟는 게 일반적이었다. 최종 결정은 국왕의 몫이지만 갑론을박이 잇따르기 마련이었다.

고려시대 용인됐던 풍문탄핵은 조선 개국과 더불어 사라졌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들이 소문을 근거로 개국공신을 탄핵하자 태조가 이를 금지시켰다. 풍문탄핵은 사림파가 등장한 성종대에 활기를 띠었다. 성종 치세기간 탄핵된 고위관료는 모두 2천702명, 당대 실력자인 한명회는 107번이나 탄핵을 당했다. 한명회를 비롯한 훈구대신이 일시에 몰락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크게 위축됐다.

1477년(성종 8년) 양성지(梁誠之)가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에 임명됐다. 그러자 사헌부 하급관리 장령이 양성지의 이조판서 재임 시절 뇌물 수수를 문제 삼아 탄핵했다. 성종이 사실 여부를 묻자 장령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소문만으로도 그는 대사헌이 될 수 없다”고 답했다. 양성지는 장령과의 대질을 요구해 시비를 가려달라고 했지만, 성종은 임명 이틀 만에 양성지를 교체했다.

풍문탄핵은 실무능력보다 당사자들의 사람됨을 문제 삼는다. 인사권자인 국왕과 탄핵 당사자들이 침묵할 리 없다. 하지만 대간의 답은 으레 “모든 사람이 다 안다” “사림이 다 알고 있다”는 식이다. 특히 사림의 여론, 즉 공론(公論)을 근거로 하니 구차하게 증거를 댈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성종 23년 임사홍 탄핵 때는 “임사홍이 소인(小人)임은 다 아는 사실이며, 임금도 그러한 공론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풍문탄핵의 핵심은 바로 사대부의 공론이고, 대간은 사대부 공론의 대변자였던 셈이다. 풍문탄핵은 악용의 소지가 있었지만, 적어도 당쟁 격화 이전까지는 부정부패를 막는 유용한 도구로 작동했다.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이 관리가 돼야 한다는 대간들의 확신은, 오늘날 기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