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발생한 흑인폭동.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폭동 사태가 벌어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시내다. 28일 아침 밤새 커다란 전쟁이 벌어진 것처럼 불에 탄 자동차, 유리창이 깨진 상점 등 격렬한 폭동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폭동의 중심지인 노스애브뉴 선상. 일부 도로는 여전히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노스애브뉴와 펜실베이니아애브뉴가 만나는 부근 원더랜드 리커스토어를 찾았다. 가장 격렬하게 폭동이 있었던 지역이다.

20년째 한 자리에서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는 윤석원씨 가게다. 가게 앞에는 이미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봉투에 쌓여 있다. 지역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폭동의 흔적을 지워내고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텅 빈 진열대, 텅 빈 창고가 눈에 들어온다. 밤새 모두 털렸다. 금액으로만 10만 달러가 넘는다.
윤석원씨는 “볼티모어에서 34년, 이곳에서만 20년 장사하는데 이런 날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아침 6시에 나와보니 난장판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윤씨는 그러나 폭동이 일어난 27일 밤은 한 달에 두 번 쉬는 날 중의 하나였다며 마음은 아프지만 그나마 인명 피해가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폭동이 시작된 몬다민 몰에서 조금 떨어진 킴스 리커스토어. 작장 생활을 그만두고 2년 전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장만한 이한엽씨의 가게다. 가게 내부는 처참할 정도다. 자물쇠를 절단하고 들어간 시위대는 방탄 유리창을 뜯어내고, 이어 ATM으로 계산대 앞 방탄유리를 깬 뒤 조그마한 통로를 통해 안으로 진입했다.
폭도들은 CCTV 회로 등을 절단하고 약탈을 시작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집에서 매장 내부를 보는 줄은 몰랐다.

이씨는 삶의 전부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참을 수가 없어 밤 11시에 차를 몰고 군중 속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시위대를 말리고 집으로 돌아간 그는 야간통행금지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까지 이어지는 약탈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시위대는 어린아이까지 가족 단위로 들락거리며 물건을 실어 날랐다.

경찰에 연락해도 묵묵부답. 위험을 무릅쓰고 결국 다시 한 번 차를 몬 그는 새벽 4시30분 가게에 또 들렀다. 하지만 이미 다 털린 상태였다.
폭동으로 지금까지 피해를 본 한인 업소는 20여 곳으로 파악됐다. 메릴랜드 식품주류협회(회장 송기봉)는 리커스토어를 비롯해 그로서리 등 22곳의 피해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부분 무차별 약탈로 폐허처럼 변했다. 특히 노스애브뉴 선상의 김진석·최한복씨 가게는 방화로 불에 탔다. 23년 전 오늘(1992년 4월 29일) LA 폭동의 악몽이 살아나는 듯했다.

한편 폭동 현장에는 래리 호건 메릴랜드주지사가 전날 비상사태를 선포해 주방위군까지 합세한 가운데 더 이상의 약탈과 방화는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평화적 시위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나서 자발적으로 거리 청소 등을 전개하고 폭력 시위를 견제하면서 볼티모어는 안정을 되찾고 있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이날 폭력을 휘두른 시위대 가운데 10여 명이 체포됐다. 스테파니 롤링스 블레이크 볼티모어 시장은 이날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일부 경찰관의 잘못된 행동으로 흑인 커뮤니티와 수년간 갈등이 쌓여왔지만 이런 폭동으로는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며 “근본적인 갈등 해소를 위해선 사법 시스템을 개혁하고 교육 예산 늘리며 경찰의 문화적 발전을 위한 예산 확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