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 교수

일본 캠퍼스 속에 살아있는 ‘스승의 날’

매주 금요일은 아침부터 90분짜리 수업 연강에, 저녁 대학원 수업을 8시경에 마치면 때로는 의식이 날아갈듯 한 상황이 된다. 특히 주임까지 겸한데다 학과 개편 신과목을 맡다보니 ‘다문화 공생론’ ‘이문화 커뮤니케이션’ ‘다문화사회와 평화학’ 등 비슷한 과목 땜에 별도 수업 준비를 해야 하고, 교육실습 진로관계 등, 학생들 면담이 행렬을 잇기에 밥은커녕 차 한잔 마실 기회조차 확보할 수 없다. 인간이기에 고장난 몸의 치료도 중간 중간에 받아야 한다.
‘참 지독하게 바쁘다!!’

그런 소리조차 사치일 수밖에 없는 내게 5월15일은 단순히 발등에 떨어진 산적한 업무에 허덕이는 날에 불과하다. 물론 일본에는 '스승의 날'이 없으니 바쁜 와중에 기억할리도 만무하다. 그렇기에 경황없이 수업을 끝내고 다음 강의준비를 서둘러 하고 있는데 한국인 유학생들이 ‘서프라이즈!!’라며 카네이션 꽃다발과 편지를 패널에 적어서 들어온다. 예상도 못 했던 제자들의 밝은 목소리는 지쳤던 심신의 힐링이 되어줬고, 다양한 카드와 개개인의 편지내용은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되었다.

▲ '스승의 날' 한국인 유학생들이 ‘서프라이즈!!’라며 카네이션 꽃다발과 편지를 패널에 적어서 찾아왔다. ⓒ 이수경

책과 자료로 넘쳐나던 연구실에 화사한 꽃이 장식되니 심각한 상담으로 찾아오는 학생들과의 분위기도 좋아졌다. 제자들의 힘, 꽃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 제자 가와노 다카히로 군.

제자들에게 감사하고 다음 수업을 끝내니 이번엔 한국 유학을 다녀온 학생이 전화를 줬다.
“연구실 앞에 있으니 빨리 오세요.” 하기에 서둘러 갔더니 “오늘은 스승의 날이에요. 이것 좀 드시고 숨 좀 돌리세요”라며 꽤 먼 곳의 제과점에서 흐트림 없이 가져 온 예쁜 케이크상자를 내민다. 그 정성이 얼마나 갸륵한가. 이 사막같은 원리·원칙만 따지는 사회에서 업무에 지쳐가던 나를 배려해준 제자의 따스한 마음이 고마워서 그 케이크를 마음으로 가득히 먹었다. 과일이 듬뿍 얹혀진 케이크는 빙하기라 불리는 한·일 관계 때문에 노심초사하던 내게 싱그러운 신록의 향과 희망의 맛을 전해줬다.
뜻밖의 감동 뒤, 몇 학생들 논문 면담과 제출 서류 작성 후, 부리나케 저녁 대학원 강의실로 향하니 이번엔 갑자기 수강생 전원이 일어나서 박수갈채를 보내며 ‘스승의 은혜’란 노래를 한국어로 부르기 시작한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멘붕!’이란 말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감동, 감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저녁 수업에는 '스승의 날'을 기억하는 한국인 유학생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유학 예정자나 한국어 학습 경험의 중국학생들, 혹은 일본의 현역 교사의 수업이다. 부끄럽게도 나도 채 외우지 못하는 ‘스승의 은혜’를 능숙한 한국어로 불러주던 제자들. 도대체 어디서 얼마나 연습했단 말인가? 모두들 공부와 아르바이트, 직장 등으로 정신이 없을 터인데…

가슴이 벅차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정작 나는 내 일밖에 머리에 없었건만… 제자들의 성의가 내 인간성의 회복의 순간이기도 했다.

노래가 끝나자 한국 유학을 다녀온 제자가 다양한 김밥을 만들어왔다고 먹어보라고 내민다. 맛은 정말 별미였다. 앞으로 사랑받을 최고의 남편감이라며 여학생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언제 그렇게 준비했는지 음식과 전원의 편지가 들어있는 편지첩 등이 내 앞에 놓여졌고, 수업 내내 모두가 다양한 화제로 화두를 이어갔다. 그 시간만큼은 수강생들이 준비한 수업내용을 즐겁게 들으며 의견만 얘기하면 되는 행복에 젖었다.

아아!!
밤낮으로 수업 준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사는 내 생활을 응원해주는 이 제자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구나 하는 고마움으로 가득 찼다.

교사가 교단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들에 대한 애정을 쏟으며 나의 본분을 다할 때, 제자들은 그런 교사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함께 교단을 지켜나가는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평소엔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으로 교단을 지켜주는 수많은 교사들이 이 ‘스승의 날’을 통해 뿌듯한 교사의 자긍심을 느꼈을 것이고, 순간이나마 평소의 노력이 위로받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서로 신뢰하는 사회라야 교육의 효과가 커지고 나라도 건전히 발전한다.

교육이란 한 나라의 백년대계를 가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숙한 자에게 지식만 제공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다. 잘못된 행동에는 애정과 책임으로 그릇됨을 지적해야 하고, 사회를 헤쳐 나갈 지혜와 방법조차 다양하게 모색하여 인도하는 전인적 가르침이 수반된다. 그런 중책을 맡은 교사들은 프라이드를 지키며 책무에 임해야 하고, 다대한 노력과 정성을 쏟는 교사를 사회전체가 신뢰를 하며, 학부형 및 학생들과 믿음 속에서 함께 교단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저출산과 핵가족화, 금전 및 물질우선주의 경쟁사회에서 풍요롭게 자란 아이들을 맡고 키우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학부형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다양한 미디어와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자신들의 잣대로 자기 방식의 이론을 주입해 오는 요즘 아이들, 학부형을 비롯해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가운데 현대적 첨단 기계문명 사회에 익숙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을 맡아야 하는 교사들. 그들이 비록 교육훈련을 받고 자신들의 고생을 보람으로 삼고는 있다지만 ‘직업’이라는 용어만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가혹한 사각지대에 처해져 있음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일본의 사례지만 2011년도 병으로 휴직한 공립학교 교사들만 8544명이고, 그 중에서 5274명이 정신질환(우울증 등)으로 휴직을 하였다. 그만큼 완벽한 사회지도층을 요구받고, 모범적 삶이 강요되는 만큼 인간적 고뇌와 갈등, 다망한 학무 속에서 강한 책임감 때문에 고독하게 앓고 고통받는 교사가 증가하여 교육현장의 인권문제도 심각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일본 교육계는 교사들의 mental health의 치유도 큰 과제가 되고 있고, 정부차원에서 교사들을 지켜야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참고로 필자도 교수생활 16년간 과로사나 병, 자살을 포함해 동료 교수들 9명이나 잃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동료 교수들 중에는 병원 생활과 학교생활로 버티는 교수도 적지 않다.
그만큼 정신적 육체적 소모와 책임감으로 전 심신을 교육에 몰입하는 게 교사들이다.

한가지 더 사례를 들자면 초등학교 가정방문이 있다.
아이들의 다양한 환경 파악도 교사에게 필요한 만큼 초등학교 교사들은 가정방문을 실시하는데, 휴대전화에 1가구당 3분 내지 5분 간격으로 시계를 울리게 하여, 시간 내에 현관 앞에서 학부형과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의 상황을 묻고는 가정방문을 마친다. 교사들도 결코 학부형의 접대를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교사의 프라이드와 직결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교사들 스스로가 당당히 학부형과 마주하여 아이들 교육을 함께 의논하는 상생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내 직업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분수껏 사는 시민의식이 강한 나라가 일본이라지만, 이 점은 반드시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나 교육적 양심을 가진 교사들이 가진 공통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책임감과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 열심히 공부하여 서는 곳이 교단인 것이다.

비록 일부의 요령있는 사람들이 권력과 이권을 차지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그 요령을 뿌리치고 우직하게 사는 교사들이 많기에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학교에 맡겨지고 있다. 사회가 흉흉하여 물질과 권력에 눈이 먼 극소수의 불미스런 문제 때문에 전체 교사들이 매도를 당하거나 의심을 받는다면 교사들은 어디서 힘을 얻고 교단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단순한 직장 개념으로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의 삭막한 업무 체계만 행한다면 교사들은 매우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신 사회는 인간성이 결여되고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경쟁지상주의 사막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편안한 업무의 요령을 거부하고,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채 교단을 통한 지성, 인성 교육에 노력과 정성을 쏟아온 교사들과 교육의 힘이 존재했기에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발전 성장할 수 있었고, 지구촌 각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도 존재하게 된 것이고, 선진 사회 한국을 찾아서 이주하는 다문화권 출신 주민들도 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아직도 대한민국은 ‘민족주의 의식’과 ‘이념/지역/종교/남녀/격차 갈등’, ‘다문화 상생 사회 추구’란 현실 속의 갈등 해소를 모색하는 과도기에 있고, 인권의식도 신장되어야 한다. 또한 스승의 날을 씁쓰레하게 만든 극소수의 문제있는 교사들이 존재하게 된 배경과 그 환경 저변에 깔린 사회의 모순성, 그들이 교사로서의 프라이드를 버리게 된 동기를 정부는 물론 사회 구성원 전체가 자성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글로벌인재 육성이 능사인 것처럼 경쟁주의 사회를 부추키며 엘리트 지상주의 양산에 몰입해 온 결과가 일부 지식특권층의 사리사욕적 부정부패를 자아내고 국민들이 교권은 물론, 사회 전체를 불신하는 불행스런 나라로 만든 것임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말은 틀리지 않는다.
사회적 모순을 없애고 신뢰회복이 가능한 사회 풍토를 만들어야 건전한 국가 운영이 가능하게 되고, 매력적인 사회 복지환경으로 거듭나야 떠나간 국민조차 내 나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다치면 사회가 상처 나게 된다.
그런 소중한 내 아이들을 맡겼기에 존경으로 교사를 대하는 분위기, 그런 학부형의 신뢰를 얻기에 애정 어린 책임으로 아이들을 육성시키는 교단이 되도록 정부나 언론은 물론, 학부형 전체가 성숙한 교육 풍토를 지켜주며 서로 협력해나가야 한다.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 체크가 아침 일과인 필자는 최근에 쏟아져 나오는 우리 사회의 참담할 정도의 뉴스 속에서도, 교사 폭행 혹은 아동 폭행의 뉴스를 읽을 때는 특히 가슴이 미어졌었다.

지나친 사욕과 이기성이 만연하는 사회 속에서 대다수의 교사들이 정부가 지침으로 내 놓은 스승의 날 컨트롤로 인해 의심을 받는다는 불쾌감을 표명하였다. 자긍심을 지키며 곧게 살고 있는 대다수의 교사들의 사기 의욕을 떨어트리는 정책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노력해도 평가보다 사기저하를 초래한다면 과연 노력할 의미가 있을까?
모두가 무사 안일의 이기성을 추구하게 된다면 과연 이 사회는 어떤 형태의 부메랑 현상을 맞이하게 될까???

“모기 몇 마리 잡겠다고 창문을 닫아거는 것” 은 결코 현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내일의 나라 모습은 교육에 달려있다. 교육이란 모두의 책임어린 협력과 존중과 신뢰로 이뤄져야 제대로 기능으로 발휘하여 사회 전체를 발전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강의실에 들렀던 선배 교수가 제자들이 스승의 은혜를 재창하는 광경을 보면서 김밥을 입에 넣은 뒤, 한국의 스승의 날을 부러워하며 나를 선망의 대상처럼 얘기할 때 솔직히 나는 매우 뿌듯했고 행복했었다. 그리고 이 일본 속의 대학 캠퍼스 내에서 피어난 스승의 날로 인하여 그동안의 고생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느낌조차 들었다. 성장한 나라가 다 다른 제자들 또한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이런 준비를 했다며 되려 내게 감사를 할 때, 우린 서로가 훈훈한 스승의 날을 향유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내가 오늘의 이 교단에 설 수 있도록 지도해 주셨던 내 인생의 모든 스승님들께 고개 숙여 깊이깊이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