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커뮤니케이션 박사]

요즘 제가 쓰는 글의 1차 관심과 대상은 우리 민족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면 여기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할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호주 한인들의 가치와 행태와 정서는 호주가 아니라 우리 민족과 고국이라는 눈에 안 보이는 거대한 자석(磁石)에 끌려가고 있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도 현지에서 당장 해결해야 할 생계를 빼놓고 말입니다. 거대해진 고국의 경제 규모, 고국지향적 대(對)재외동포정책, 이민이 계속되는 영미권 안 한인사회가 1세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실 등 많은 영향력이 결합되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국이 바뀌지 않고는 여기 한인들과 한인사회도 바뀔 수가 없습니다. 오늘 글의 과제는 그런 영향을 미치는 여러 과정의 하나인 매체 이용(Media uses)을 따져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느 나라에서나 대중의 의식구조와 행태와 생활양식을 가장 크게 결정해나가는 게 대중매체입니다.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가 마사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말 중 후에 Message를 익살스럽게 Massage로 바꿔 ‘매체가 몸을 주무른다’-맛사지 하듯)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매체가 인간의 의식구조를 바꿔나가는데 그렇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고국의 관할권 밖에 멀리 떨어져 있는 해외 한인사회에 대한 고국의 영향력을 말하면서 먼저 매체를 거론하는 건가요? 해외 한인들의 현재의 매체 이용(Media uses)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연구와 지식이 우리에게 없어 보입니다. 하나 짐작은 갑니다.

서방국가의 경우 한인들이 현지가 고국에서 날아오는 한국어 매체와 메시지를 읽어보면서 지낸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채널을 여기에서 받아볼 수 있는 널리 퍼진 텔레비전 세트와 한국에서 출발하는 온라인 매체, 그리고 교포매체의 많은 콘텐츠 또한 한국 매체의 재판이고, 거기다가 읽히는 책 대부분이 한국에서 출판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현지에서 한국어로 나오는 이른바 교포매체와 현지의 영어매체가 이용되는 데 그건 일부입니다.

특기할 일은 어느 경우에나 자체 커뮤니티의 핵심 이슈를 파고드는 내용은 아주 없거나 미미하다는 사실입니다. 자체 인구와 매체 규모가 큰 미국 한인사회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과문인지 모르나 저는 아직 그런 심층 연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나 결과를 보도하는 기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밖에 나와 살면서도 한인 구성원들의 매체 이용이 고국지향적인 이유로서는 일반적인 언어장벽, 귀소 (歸巢)본능, 대부분의 경우 생계형 지식과 기술만 가지면 거주 국 사회와 자기 커뮤니티 모두에 대하여 몰라도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을 들겠습니다. 역시 해외 한인사회가 지적, 정신적 문화의 영역에서는 거주국보다 고국으로부터 더 영향을 더 받는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신문과 텔레비전

대중매체는 활자매체와 영상매체로 크게 나눠볼 수 있습니다. 활자 매체는 아직도 신문, 잡지와 책이고, 영상매체는 텔레비전입니다. 지금은 SNS (웹사이트, 페이스 북, 트위터, 이메일 등 온라인 매체,) 시대인데 왜 구닥다리 매체냐고 물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들 온라인 매체들도 메시지는 글씨 아니면 동영상, 그 합성으로 꾸리게 되므로 모두를 활자매체와 영상매체에 넣어서 논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해외 한인사회에서의 매체의 영향력을 논하자면 당연히 이 두 모드의 매체의 기능상 특징을 알아봐야 합니다. 영상매체는 우선 활자보다 보기가 쉽고 화면이 매혹적이어서 수용자가 많으나 시간의 지배(Time-organized)를 받는다는 게 취약점입니다. 화면이 전달하는 말과 글과 이미지는 시청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빨리 지나갑니다. 라디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매체로는 원인으로서 많은 변수의 분석을 필요로 하는 복잡다단한 사회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텔레비전은 보여주는 데 탁월한 매체입니다. 거기다가 화려한 화면의 마력으로 사람과 사물을 실제보다 돋보이게 만듭니다. 그건 외관인데 진실을 가리는 역기능을 잘 합니다. 아는 건 없어도 외모가 번지르르하고 달변인 사람의 말이 스크린에서는 더 호소력을 갖는 이유입니다.

한국에서 너무도 뻔하게 잘 못 된 큰 국가적 이슈 앞에서 시청자는 똑똑하고 말 잘하는 방송인과 정치인과 언변가들의 말재주에 밀려 쟁점의 본질을 모두 놓쳐버리고 마는 사례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역동적인 외관을 보이는 수월성 때문에 텔레비전은 드라마, 음악 행사 등 연예, 스포츠 경기, 여행, 게임 프로그램과 현장감이 필요한 사건, 사고를 보도하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때문에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 수용자는 생각하기 위하여 그 상자 앞에 앉아 있는 건 아닙니다. 엔터테인먼트(오락)이지요.

오락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필요합니다. 과로사(過勞死)로 죽어서는 안되니까요. 문제는 균형입니다.

생각하는 민족

전파 매체의 중요성을 폄하하려는 건 결코 아닙니다. 이 글에서 매체의 기능과 관련 저의 관심은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한 그 문제와 해법의 깊은 이해입니다. 이해해주세요. 뉴스 보도의 속보성에 있어서는 온라인매체도 텔레비전에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또 거기에는 활자 기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문제 해결을 찾아 그 공간을 검색하는 수용자는 드뭅니다.

폭로와 묘사와 지적에서 한 걸음 더 나가 해결을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내놓아야 할 때는 앞서 말한 대로 많은 원인 변수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하는데 생각할 여유를 안 주는 영상매체가 아니라, 주는 활자매체여야 합니다. 그 매체의 이점은 지면이라는 공간을 중심(Space-organized)으로 메시지를 구성, 전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용자(독자)는 활자화된 그 메시지를 언제든 원하는 때와 원하는 속도로 읽고, 또 필요하면 한 번 읽은 것을 뒤로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읽을 수 있으므로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사회문제 해결에 필요하면 잘 적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때까지 말한 것을 종합해보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하여는 활자매체, 그 중에서도 속보성이나 흥미성과 관계없이 많은 분량의 분석적 메시지를 한자리에 모여 전달할 수 있는 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전혀 반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다른 매체에 대한 텔레비전의 압도적 우위는 세계적이지만 이에 더하여 한국은 그 콘텐츠마저 문제입니다. 황금시간에는 시청률이 높은 일회용 행사(이벤트) 보도와 연예와 오락프로가 절대적으로 많아졌습니다.

동네 책방은 대부분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음식점이나 카페가 생겨났습니다. 지적 활동이 활발 할수 없는 해외 한인시회의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몇 개 없는 취약한 책방에는 대중적인 잡지와 기독교 서적과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올라 있어 그런 대로 팔리는 몇 가지 책 만 와 있는 게 보통입니다. 우리 대로의 도서관 시설도 아주 빈약합니다.

결론은 고국, 해외 모두 한인들의 매체 이용은 경성(硬性, Hard)보다 연성(軟性, Soft)쪽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연성은 골치 아픈 생각을 피하게 하는 부드러운 오락성 내용입니다. 고(故)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민족이어야 나라가 산다”고 했습니다. 온 민족이 생각이 아니라 생각에서 도망치고자 찾는 놀이문화에만 푹 빠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버려진 커뮤니티
 

상황이 이렇다면 영미 선진국에 산다는 우리 구성원들은 이대로 지낸다면 고국이나 거주 국 어느 쪽에 비하여도 뒤떨어지는 반쪽 시민이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게 저의 우려이고 결론입니다. 특히 구성원들은 언제나 민족과 커뮤니티의 장래와 발전을 말하지만 그 커뮤니티의 본질과 실태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몇 푼 안 되는 공금은 행사에 쓰이고 나면 다른 일은 못합니다.

영미 나라 이민사회학자들이 쓴 학술지에 따르면 이민자 집단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버려진(낙후된) 커뮤니티(The most neglected community in the world)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이런 걱정을 하는 해외 한인, 재외동포정책에 관련을 갖는 공무원과 학자 가운데 단 몇 분이라도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