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호 / 재미교포·자유기고가

미국에 살면서도 자동차나 가전제품은 주로 한국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한인들이 많다. 또한 모국을 방문할 때도 외국 항공사보다 항공료가 다소 비싸더라도 기왕이면 한국의 국적 항공사를 이용하고 싶은 것이 대다수 한인들의 심정이다.

한국산 자동차로 출퇴근하고 한국 마켓에서 한국 식품을 사다 먹으며 한국산 스마트폰에 토종 앱을 깔아 카톡을 하고 인터넷 서핑도 한국 포털사이트인 네이버나 다음에서 한다. 종교 생활은 한국 교회나 성당 또는 절에 가서 하고 속내 털어놓는 친구도 물론 한인이다. 한국산 TV로 한국 방송을 시청하며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은 한국 신문이다. 한국에서 사 온 옷을 한국산 세탁기로 빨아 입으며 전기밥솥이나 냉장고 김치냉장고도 모두 한국산이다. 한국에 갈 때에는 한국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안다.

이러니 몸은 비록 미국 땅에 있지만 생활은 거의 한국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이 사는 것이다. 미국에 이민 온 이상 한인사회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드넓은 미국 주류사회에 동화되어 사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나이 들어 미국에 온 이민 1세들이야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고국을 떠나 이국 땅에 살고 있으니 모국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지고 모국 기업에 대한 애착도 모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강해지게 마련이다. 어느 나라 사람 어느 인종이 한국 기업에 그토록 호의적이고 충성스러울 수 있겠는가.

한인 동포들의 한국 기업 사랑에 비하면 모국의 대기업들은 한인 동포사회에 대한 배려가 미미하거나 섭섭할 정도로 소홀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 한국 기업들은 200만 미주 한인들의 모국기업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지 미국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영업활동에는 공을 들이지만 한인사회는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때로는 한인들이 멋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한국 기업을 짝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미국에는 여러 한인 단체들이 있다. 각 지역별 한인회를 비롯해서 세탁.청과.네일 등 각종 직능단체와 여러 봉사단체 그리고 고향이나 군대 학교에 따른 향우회.전우회.동문회 등 한인 단체는 수도 많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개중에는 이름만 걸어 놓은 유명무실한 단체들도 있지만 사무실과 직원을 두고 조직적으로 수많은 회원들에게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단체들은 골프대회나 송년의 밤 등 큰 연례 행사에 미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의 대기업들에게 상품 협찬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이 한인단체 행사에 비행기표 한 장 TV나 세탁기 한 대 등 자사 제품을 내놓을 경우 이민생활을 하는 한인들에게는 여간 큰 힘과 격려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대기업은 행사 협찬을 통해 한인사회에 보다 친근하게 다가감으로써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긍정적인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한인 소비자들에게서 벌어들인 수익금의 일부를 한인사회에 다시 환원해 준다는 의미도 있다.

한인 단체들도 모국 기업의 후원에 대한 보답으로 협회에서 발행하는 간행물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들에게 모국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해 준다. 모국의 기업과 한인단체가 상부상조하는 아름다운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한인단체의 협조요청에 회신조차 하지 않고 무시해 버리는 기업이 많으며 그나마 회신을 하더라도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인 단체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요청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다 지원해 줄 수 없는 기업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기업은 한인단체의 협찬요청이 있을 때 최소한 성의 있게 검토하고 답변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의 대기업들은 그들에 대한 한인들의 성원과 사랑에 걸맞게 한인사회에 대한 배려와 협조를 아끼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