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채 / 논설위원

옹(翁)을 만난 것은 8년 전 방문한 일본 홋카이도에서였다. 1921년생으로 당시 86세. 1939년 부관연락선에 태워져 일본으로 끌려왔다고 했다. 최종 도착지는 미쓰비시가 운영한 홋카이도 비바이 탄광. 김동오(金東吾)란 이름은 가네모토 도고(金本東吾)로 바뀌어 있었다. 3년 뒤 최북단 와카나이 탄광으로 끌려갔다. 영하 20~30도의 강추위, 혹독한 노동, 낙반 사고 등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다시 아시베쓰 탄광으로 옮겨진 뒤 광복을 맞았다. 하지만 빈손이어서 돌아갈 수 없었다. 분단, 전쟁 소식이 들리자 귀국을 접었다. 북한계 여성과 결혼했으나 북송사업으로 가족이 모두 북한에 건너가면서 홀로 살고 있었다. 홋카이도는 일본 남부 규슈와 더불어 강제징용의 유배지다. 기록에 따르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징용된 조선인 72만여명 중 14만5000여명이 홋카이도에 끌려와 탄광, 항만, 비행장, 댐 건설 노역에 동원됐다. 이 중 상당수는 혹사당해 목숨을 잃거나 집단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희생된 조선인 중 115명의 유골이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어제 경기 파주 용미리 서울시립 추모공원에 안치됐다. 이번 유골 봉환작업은 온전히 양국의 민간단체에 의해 이뤄졌다. 냉전시절 징용자 유골봉환 작업은 일본의 비협조, 남북간 체제 공방으로 헛바퀴만 돌았다. 그나마 2004년 양국 정상의 유골 반환 합의를 바탕으로 2008~2010년 도쿄 유천지에 있던 유골 423위가 건너온 게 전부였다. 이번에 봉환작업을 주도한 시민단체는 1997년부터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유골 발굴에 몰두했다. 이번 유골 봉환은 이들이 18년간 기울인 노력의 결실이다. 김동오옹과 만났을 때의 취재노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시대나 역사는 잘 모른다. 한도 없다. 그저 나 같은 사람이 다시 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일본 전역에는 아직도 신원 파악이 되지 않은 징용자들이 수없이 묻혀 있지만 양국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유골 봉환은 피해·가해 차원이 아니라, 강제노동이라는 인류에 대한 보편적 범죄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양국에 이런 건강한 시민단체가 있다는 게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