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커뮤니케이션 박사]

최근 보도에 따르면 ‘재외동포청(이하 동포청)’ 설립 논의가 한국에서 부활된 것 같습니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오래 전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미국 한인사회의 건의가 있어 한동안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입니다. 다만 이번 여야 정치권이 각각 따로 내놓은 관련 법안은 그때 버전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또 듣건대 이번에는 미국을 방문한 양당의 정치지도자들이 그곳 한인들에게 약속은 했지만 곧 실천될 지는 불확실해 보입니다. 법안은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각 당의 정치적 계산에 의하여 처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허나 방구가 잦으면 똥이 된다던가요. 자꾸 이야기가 나오다 보면 언젠가 성사가 될 터인데 막상 현지 한인사회는 밥이든 죽이든 깜깜 소식이거나 ‘I don’t care’는 곤란합니다. 기구만 설립하거나 늘리면 잘 되는 게 아니므로 설립 자체보다 운용에 대한 사전 넓은 토론과 공감대 형성이 필요합니다.

대양주한인회총연합회

동포청을 만들어 더 못하게 만들자는 건 아니겠지만 이번에는 과연 뭐가 실질적으로 달라질 것인지, 공금 한 푼이 아쉬운 해외 한인사회의 경우 고국이 할애하는 예산은 금쪽 같이 쓰여져야 하는 데 그간 어땠는지 실제 사례를 놓고 클라이언트(고객)인 현지 사회의 의견 수렴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 시드니 교포매체 (Top지 9월 18일자 참조)에 전재된 연합뉴스 보도는 대양주한인회총연합회를 포함한 해외 몇 개 지역 한인회연합회장들이 고국 정부를 향하여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대표 통신사라면 그런 단순 보도를 넘어 7백여만의 해외 한인들의 운명이 걸린 새로운 기구가 어떤 실익을 가져올 지 등을 개관하는 심층보도가 한번쯤 있었으면 합니다만 그런 게 언제 있었나요? 한국의 다른 메이저 언론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동포청의 설립은 이 분야 예산과 인원을 대폭 늘림으로써 기존의 동포 정책의 확충, 재정비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고국 정부로 봐서는 해외 교포에 대한 더 큰 배려, 교포들의 입장에서는 자기들 커뮤니티의 위상 제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거기다가 커뮤니티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 없는 공짜이므로 마다할 이유는 없겠습니다. 당연히 필자도 찬성하고 지지합니다. 그러나 역시 돈은 요긴하게 써야 합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국민의 혈세 아닙니까.

아래는 재외동포청 설립 논의에 앞서 생각해 볼만한 사항들을 적어본 것입니다. 관련 정치인, 공무원, 해외 한인들에 참고 되었으면 합니다. 오래 필자가 지켜본 호주 교포 대부분이 사는 시드니의 현장 경험과 관찰에 따른 것이며 탁상공론이 아닙니다.

(1) 현재 고국 정부의 재외동포정책의 1차 창구는 1997년 설립된 외교부 산하의 재외동포재단(이하 재단)입니다. 재단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 미국 동포사회가 건의해온 두 가지 주요 현안 중 하나인 동포청 설립(다른 하나는 신고만 하면 해외 시민권자, 영주권자 관계없이 한인들이 고국에서 내국인과 거의 동등한 조건으로 활동하게 만든 재외동포법 제정)의 대안으로 설립된 것입니다.

그 당시 간접적으로 들은 소식에 따르면 청(廳)이 아니고 그보다 규모가 작고 조직 또한 다른 재단으로 한 것은 중국 등 비교적 친한적이 아닌 일부 국가들의 눈치를 봐야 해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알다시피 중국은 자국 내에 적지 않은 규모의 조선족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의 입장은 어떤지 필자는 밖에 앉아서 잘 모르며 궁금할 따름입니다.

다만 자국 내 사는 소수민족에 대하여 모국 정부가 도움을 주는 게 내정 간섭이 되는 건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기로 말한다면 한국 정부가 외국 시민이 된 해외 한인들을 헌법 기관이라는 민주평통자문협의회 임원으로 임명하는 것은 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2) 필자는 2004년 재단의 제3대 이사장 취임 후 쓴 “이광규 이사장님에게 드리는 글”(‘호주동아일보’와 해외교포문제연구소에서 발행 ‘월간해외동포’에 실림)에서 재단이라는 이름이 붙는 한 이 기구는 현지 한인사회의 발전을 효과적으로 돕는 구체적 프로젝트 지원 사업(그랜트, grants)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그 후 호주 한인사회에도 공개적인 그랜트 신청 안내가 왔고 그 후 매년 그 사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사업은 재단이 청으로 승격하든 독립적으로 새로 설립되든 기본 업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외동포정책의 존재 이유는 해외  현지 한인사회의 건전한 발전과 육성일 것인데 그 구체적 사업은 어느 것이든 맨 입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점에서 사업과 예산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입니다.

이 때 재원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쓰느냐가 관건입니다. 말하자면 각 커뮤니티의 필요의 경중(輕重)과 완급(緩急)에 따라 우선권을 잘 정하는 일, 즉 우선순위 결정(priority listing)인데 따지고 보면 그게 바로 정책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현존의 재단도 그렇고 총리 직속으로 있게 된다는 동포청의 역할과 사업의 성패도 여기에 달려 있게 될 것이므로 우리가 걱정하고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것은 바로 이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