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오 정 / 전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일본・류코쿠대학 명예교수]

한국에서 또 교육 문제에 대한 정치적 횡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길이 없다. 나라 밖에 사는 나로서는 이 횡포가 실로 청천벽력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우선, 이 갑작스런 정치적 횡포가 왜 이 시점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묻고 싶다. “어떤 시간적 경계”를 그어놓고 거기에 맞추어 일을 서두르지는 않았는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새로운 국정 교과서를 현장에 투입하겠다고 하는데, 그 시점이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이유로서, 좌편향・종북성향이 강한 현행 교과서를 바로잡아 객관적 사실에 충실하고 올바른 역사관에 입각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커다란 의문을 불식할 수가 없다.

첫째, 교과서의 발행에서 채택까지 국가가 철저히 관여, 감독하는 현행 시스템 아래에서 어떻게 반국가적인 종북 성향의 교과서가 나올 수 있을까? 한국에서 집필자가 마음대로 쓰고 출판사가 제멋대로 출판할 수 있는 교과서란 상상도 할 수 없다. 교과서란 기본적으로 국가가 고시하는 교육과정에 따라야 하고, 국가(교육부)가 시달하는 교과서 제작(집필 포함) 기준에 맞추어 제작이 시작되며, 제작 후 국가의 검정(수차에 걸친 수정 과정 포함)에 합격해야 비로소 출판할 수 있다. 채택 과정에서도 국가 기관이 깊이 관여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교과서가 어떻게 반국가적인 “악마의 바이블”이 될 수 있는지 대답을 듣고 싶다.

둘째, 객관적 사실・올바른 역사관이 교과서의 국정화로 곧 찾아질 수 있는 것인가? 객관적 사실이란 역사적 실체(reality)겠지만 그 실체란, 나치스에 협력했던 자들이 진짜 레지스탕스들을 죽이고 저희들이 레지스탕스로 둔갑하여 영웅으로 등장하는 프랑스의 전후사에서 볼 수 있듯이,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역사관이란 더더욱 애매하고 복잡한 개념이다. 이렇게 어렵고 애매한 객관적 사실, 역사관의 문제가 정말로 교과서의 국정화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지 묻고 싶다.

셋째, 좌편향 우편향을 판단하는 좌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좌우를 판단하는 좌표가 중립을 벗어났을 때 그 판단은 의미가 없다. 극단적인 우편향의 좌표에서 본다면 모두 좌편향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역사・사회과교육을 통해 ‘위대한 국가상’을 세뇌적으로 주입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1972년 당시의 「유신」정부는 교육과정의 임시 개정을 통해 도덕・국민윤리를 교과로 신설하고, 국사를 사회과로부터 분리하여 역시 새로운 교과로 신설했다(1973년 제 3 차 교육과정에서 정식으로 확정). 국사와 세계사를 각각 다른 교과에서 학습하는 해괴한 교육과정, 사회적 사실이나 현상을 구조적으로 연계하여 학습할 수 없는 절름발이 교육과정이 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국가상의 정립이라는 미명 아래 상징적이고 자극적인 거짓 역사적 사실도 가르쳤다. 그런 사실들을 주입하고 암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반성하고 비판하는 사고력의 발달이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군사정권이 끝나면서 1992년 고시되는 제 6 차 교육과정에서 겨우 국사가 사회과로 복귀되고 국민윤리의 명칭이 바뀌었다. 이때, 나는 사회과 교육과정의 개발연구 책임자로서 국사의 사회과로의 복귀, 교육과정의 구속력의 경감, 민주적인 글로벌 시대의 국가・사회 주체의 명시(예컨대, 국민이라는 용어 대신 ‘시민’이라는 용어로의 대체) 등 교육과정의 균형과 민주화를 위해 진력했지만, 부족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후, 기복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역사・사회과 교육과정, 교과서가 민주적 발전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진적 발전을 거듭해야 할 이 시점에서 파행적 후퇴의 횡포가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사회과교육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귀중한 교훈과 반성의 재료를 읽을 수 있다. 우선, 학습자의 발달이라는 교육의 논리보다 정권의 정당성 확보라는 정치의 논리를 우선 시켜, 반공・경제개발을 앞세운 내셔널리즘 교육을 제도화시키고, 이에 바탕을 둔 철저한 이데올로기 교육이 실시된 군사정권기의 교육이 무엇을 남겼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때의 이데올로기 교육이 남긴 것은 “우리”라는 배타적인 밀착집단(cohesive group), 단순 단세포적인 흑백논리로 무장된 인간군, 효율성 지상주의가 낳은 교육적 격차와 교육적 소외자의 양산이 아니었던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분열되고, 이해와 포용은 아예 잊은 채 우리와 적을 편 가르고, 물리적・정신적 소외로 인해 불안이 만연되고 있는 것은 필연적 결과인지도 모른다. 획일적인 국가 통제의 교육이 초래한 반동과 이탈의 굴절된 비극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러한 교훈을 아랑곳하지 않고 획일적인 국가 통제의 교육-교과서의 국정화라는 지름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한계는 역시 지난날의 내셔널리즘 이데올로기 교육의 한계와 동일선상의 것이 아닌가, 언제까지 부(負)의 고리가 이어질지 두렵다. 1960・70년대의 국가 통제 교육의 추진에는, 바탕에 무엇이 깔려 있었는지, 그 방향의 정당성 여부를 일단 접고 본다면, 적어도 외형상, 나름대로의 국가관, 역사인식의 형태를 제시했고, 내셔널리즘을 근대화의 에너지로 하겠다는 의지가 보였으며, 국민교육헌장의 제정 과정에서 보듯이 각계의 어른들이 상당수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교과서 국정화 과정에서는 형식상의 대의명분도, 내셔널콘센서스를 구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걸 다 생략하고 특정한 하나의 목표만을 추구하는 원리주의적 모습 같은 것만 보일 듯 말듯 할 뿐이다. 그래서 “횡포”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때와 지금은 근본적으로 시대적 상황이 다르다. 지금 우리는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다. 한국과 한국인은 엑스트라가 아니라 글로벌 무대 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브랜드 값은 60・70년대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국내적으로도 이미 다문화 사회가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될 일들이 있다. 인류사회의 진보와 함께 정착・확산되어온 보편적 가치-민주주의와 공생의 이념을 공유하고 이를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노력이 없을 때 한국의 브랜드 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한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발신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교과서의 국정화라는 횡포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요구를 무시하고 역행하는 행위이다. 예컨대, OECD가 교육의 민주화 정도를 발표한다면 한국의 브랜드 값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았는가? 일본의 일부 정치가가 역사를 수정하려 한다는 우리의 비판에 대해, 그래도 일본은 역사를 국가적 행위로서 획일적으로 통제하지는 않는다고 반론해왔을 때 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글로벌 시대의 역사교육 역시 변화하고 있다. 인류사회의 진보(변화)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지속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요구, global history의 시점에서 역사 교재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무게를 더해가고 있다. 역사교육에 대한 획일적인 국가 통제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얼마나 배치되는 것인지 조차 생각할 수 없는 정치가 일을 저질렀다. 정치는 교육에 대해 보다 겸허했어야 한다.

교육은 동서남북・좌우 어떤 이데올로기로부터도 자유스러워야 한다. 정치적 보수・진보의 갈등도 교육에 투영되어서는 안된다. 교육의 주체는 미래를 살아갈 어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가는 이데올로기,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 스스로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지혜를 짜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데올로기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한다 하여 교육의 국가 통제라는 가장 저질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로서 한국은 웃음거리 후진국이 되었다.
좌편향・종북성향을 막기 위해 단행했다는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야 말로 가장 종북적인 행위였다. 국정 교과서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예로 꼽히는 북한을 따라갔으니, 이제 한국은 종북 모범생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