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련화 / 기자

국경절연휴를 끝으로 올해 모든 연휴일을 다 써버렸다는 사실이 생각나자 갑자기 의기소침해졌다.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돌려 가을해살이 비스듬히 비추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늘어진 햇빛은 빛났지만 많이 미지근해졌다.
매일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하루 종일 일에 지쳐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면 머릿속으로 피곤하다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진다. 혹은 누구에게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들어 여기저기에서 부쩍 “힐링”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모두들 힘들다고, 삶의 무게가 버겁다고, 힐링이 필요하다고 그렇게도 아우성이다.

사람마다 힐링의 방법은 제각각이다. 친구끼리 수다를 떤다든지, 여행을 간다든지… 나는 지금의 상태를 개선하는데 혹여 도움이라도 될까? 하는 생각에 여직 거들떠도 안 보던 자기계발서를 십여 권 샀다. 멋진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남다른 비결이라도 있겠지 싶었다. 시간관리법, 마음처방전 등 두 권쯤 읽었을까, 다 어디선가 한번쯤 들었을 법한 얘기들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오히려 피로감이 몰려들더니 종당엔 “에익”소리와 함께 내팽개치고 말았다.

자기계발서가 소용없다는 말이 아니다. 씌여진 내용들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맞는 얘기들이였다. 단지 거기에 기대려 했던 내 자신에게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펄펄 넘쳐야 할 젊은 세대가 힐링서에서 답을 구하려 하다니…한 사람의 슬럼프 따위가 과연 누군가의 위로에 의해 치유될 수 있을까. 무엇인가에 기대서 얻은 힐링이라면 결국 남는 것이 무엇일까. 가라앉았던 기분이 전환되고 나면 자신이 치유를 받았다고 느껴지겠지만 결국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며칠이 지나면 또 피곤은 원상 복귀되고 또다시 힐링이 필요해질 테니까.

우리 모두는 자신을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만큼 자신을 믿지는 않는다. 어딘가에 기대는데 습관이 베어서일까, 누구의 내면에나 분명 치유의 힘은 있지만 그것의 존재를 무시한 채 자꾸 어떤 무엇인가를 찾아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인간승리를 보여주는 스토리를 들으면서 우리가 격하게 공감하고 위안을 느끼는 것은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은 내면의 힘이 불끈거리기 때문이다. 인간승리를 이룬 사람들은 자신을 움직이는 어떤 강한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힘은 남에게 기대서 얻은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뿜어져 나온 강인한 정신력이였을 것이다.

피곤하다는 생각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쉽게 피곤해진다.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은 피곤할 때 오히려 “괜찮아, 아직 더 뛸만해”하고 주문을 거는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라고. 자기 자신을 강화하기 위해 운명이 가혹할 것을 봐라.라는 뜻이다. 나를 갈구는 모든 것이 내 삶을 더욱 강하고 훌륭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마련된 문턱이라고 생각하면 고작 “그까짓 거”가지고 여직 우거지상을 지었나싶다. 아무렴, 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고, 셀프파워 한번 믿어 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