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식 /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중국전시관 입구에는 역사지도가 하나 걸려 있었다. 한나라 당시 만리장성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다. 만리장성은 전국시대 이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제후국들이 북방에 세운 여러 장성을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하고 연결한 것이다. 지도에는 만리장성이 청천강 유역까지 펼쳐져 있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북쪽 국경을 의미했다. 중국인들은 장성 안은 한족의 영토로 문명의 중심이고, 장성 밖은 야만인들의 서식지로 보았다. 중국은 한무제가 고조선 멸망 후 만주지역과 한반도에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주장한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지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평안남북도 일부를 중국영토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저명한 학술지 내셔널 지오그래피(National Geography)는 만리장성에 관한 논문을 게재하면서 장성지도를 삽입하였다. 지도에는 한나라 시대 외 전국시대, 진나라, 명나라 시대 만리장성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그 중 진나라, 한나라 장성은 각각 평양, 청천강까지 펼쳐져 있다. 미국의 한 고교 역사책도 동양사를 설명하면서 한나라 만리장성 지도를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중국인들의 일방적인 역사해석에 항의하고자 메트로폴리탄 중국관 담당자에게 연락하였다. 답변은 그런 문제는 자기들이 답할 사항이 아니라서 만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피 논문에 삽입된 장성지도의 출처인 장성연구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10개 이상의 장성지도가 있었으나 모두 동쪽으로는 요녕성까지만 나와 있고 한반도는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피 지도가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 작품, 다시 말해 만리장성의 동쪽 한계가 평안남북도였다는 것은 중국의 역사왜곡이 아닌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의도가 강하게 담겨 있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치밀한 계획 아래 국제사회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동북공정은 중국의 소수민족 및 변경관리 정책의 하나다. 55개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주주의로 흡수해 이탈을 막고, 영토통합을 유지하는 것이 중국정부의 최대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 지역경제개발로 소수민족들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고, 역사공정으로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희석시키자는 것이 속내이다. 특히 위구르족의 분리주의가 동투르키스탄 독립운동으로 확산되면서 중국정부는 변방관리에 더욱 민감해지고 있다. 중국 소수민족 중 국경 밖에 모국이 있는 종족은 조선족과 몽골족이다. 따라서 요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모국과 통합운동이 벌어지면 국경지역에 혼란이 오는 것은 물론, 다른 소수민족의 분리운동을 부추기고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면 영토분열이 일어날 수도 있다.

동북공정은 단순한 역사논쟁이 아니다. 영토논쟁이며 안보문제이다. 한반도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경우 북한 난민들의 대규모 탈북은 중국 동북3성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또 남북한 통일은 만주지역 조선족과의 대한민족주의 통합운동으로 확산되면서 만주에 대한 고토수복 운동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 대비해 중국은 우선 동북3성 지역의 경제개발로 조선족들의 중국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하고, 역사공정으로 만주지역에 대한 역사적 영토권한을 확고히 하려는 것이다. 동북공정은 방어적 전략이 아니다. 공격적이고, 선제적일 수 있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나고 외부의 개입이 불가피할 경우 중국은 정전협정 당사자로서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만약 중국이 만리장성 지도를 내보이면서 평안남북도에 대한 역사적 영토권한을 주장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최근 우리 사회와 정치권은 역사논쟁으로 에너지를 소모했다.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역사논쟁은 무엇인가? 물론 현대사에 대한 논쟁, 재평가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역사논쟁은 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가기 위한 것이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철저한 대응전략이다. 이것은 민족정체성과 영토를 수호하는 문제다. 일본 역시 우리 영토를 탐하고 있다. 독도만이 아니다. 신안보법안을 설명하면서 북한 급변사태 때 무력개입에 대해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 국방비가 처음으로 47조1685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한반도가 외세의 무력 개입으로부터 자유롭다고만 생각할 수 없다. 역사는 흐른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있고, 그 기억은 정체성으로 표출되고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역사는 살아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역사논쟁은 무엇인가? 우리의 영토주권부터 확고히 지키는 역사논쟁이 더 필요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