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영 / 베이징 특파원

매년 연말 베이징(北京)에 상주하는 외국 기자들은 송년회보다 먼저 일 년 중 최대 난제인 ‘비자 연장’이라는 숙제를 맞이한다. 이 시즌이 되면 ‘중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 어느 매체는 비자 접수를 안 받는다더라’는 등 흉흉한 뒷소문이 돌기도 한다.

각종 서류를 준비해서 두세 번 이곳저곳의 절차를 거치고 여권을 공안에 제출해 내년 한 해 동안의 비자를 받는데 이 와중에 가지각색의 사연이 나온다. 사진 배경에 회색빛이 돈다거나 가족이 다 오지 않았다고, 혹은 미리 전화하지 않았다고, 서류를 볼펜으로 썼다고 퇴짜를 놓기도 한다. 30분 이상 공안에 붙잡혀 질문 공세에 시달린 사람도 있다. 8년째 연장한 한 특파원도 몇 번 퇴짜 끝에 접수를 했다니 ‘노하우’도 따로 없는 듯하다.

처리가 늦거나 답답하다고 짜증을 내거나 따져서는 안 된다. 서류를 접수하고 ‘이제 됐다’고 말해줄 공안국 직원의 심기가 상하면 위에서 나열된 각종 이유 외에 또 다른 ‘규정’이 나타나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 당국에서 처리 도중 오타나 입력 실수로 처리가 잘못돼 서류상 본인이 ‘없어진’ 것으로 나오거나 비자 시한이 잘못돼 갑자기 기한 만료에 닥치는 황당한 상황이 생겨도 누구 하나 사과하거나 바로잡아주지 않는다. 그냥 서류대로 본인만 ‘불법체류자’가 돼 추방 위기에 놓일 뿐이다. 갖은 마음고생 끝에 ‘이대로 귀국하는 것인가’하는 자포자기 생각이 들 때쯤 우여곡절 끝에 일이 풀린다.

이는 중국에서 관(官)이 민(民)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행정편의주의의 극치다. 도장이나 펜을 쥐고 창구에 앉아 있거나 전화기 앞에 앉아 있는 공무원은 민원인에게 ‘슈퍼 갑’이다. 서비스 마인드는 찾아보기 어렵다.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행정편의주의적 공무원들의 행태를 지적하며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의 어머니임을 증명하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 점을 예로 들어 개혁에 나섰지만 마인드는 바뀌지 않았다.

중국 정부의 언론 매체를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관리들은 세련된 매너를 보이며 ‘언제든 취재를 환영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전화를 받지 않거나 만나자는 요구에도 잘 응하지 않는다. 팩스로 질문을 보내도 답이 없다. 그러나 반대로 그쪽에서 요구사항이 생기면 몇 시가 됐든 전화를 하고 당장 만나자는 식이다. 불과 몇 시간을 앞두고 어디로 나오라고 통보를 한다. 그것도 그쪽에서 ‘낙점’해주는 매체에만. 중국에서 ‘주류매체(主流媒體)’라 불리는 신화(新華)통신, CCTV, 런민르바오(人民日報) 등은 당 혹은 국무원 선전부 소속 선전기관으로 매일 머리기사는 항상 시진핑(習近平) 주석 등 국가 지도자의 동정이나 ‘말씀’이다. 매체에 대해 지도부의 ‘선전 도구’로 필요시 ‘동원’하고 ‘이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최근에는 시 주석의 발언을 보도하다가 오타를 낸 중국 내 기자와 편집자들이 무더기로 정직을 당했다. 최근 개정된 ‘중국공산당 기율처분 조례’에는 ‘당 중앙의 중요정무에 대한 방침(정책)을 함부로 논하는 것’을 기율 위반 목록에 포함했다. 중국 매체에는 권력 비판의 기능이 없다. 중국 지도부는 ‘개혁 심화’를 말하는데 사상 통제는 더욱 강해지고 있으며 언론의 자유는 바닥에 처박혔다.

베이징은 가장 많은 한국 기자들이 나와 있는 곳이고 베이징 공관은 인력이 가장 많은 최대 규모의 해외공관이며 중국은 많은 기업이 진출해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남쪽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베이징에 나와 있는 한국 공무원들이 이 같은 중국 관(官)의 태도에 물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우리의 중요한 파트너이자 이웃 나라인 중국을 열심히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뒤처진 중국의 ‘슈퍼 갑’ 관 문화까지 보고 배울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