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고통과 회한을 이겨내고 이민에 성공한 세계 150여개국 600만 우리 교포들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2세기에 걸친 한국인 해외 이민사를 2권의 책으로 엮고 있는 카자흐스탄 교포 4세 한국학자가 한국을 찾아왔다. ‘증조부의 나라’를 찾은 사람은 카자흐스탄 국립대학 한국학과장 김 게르만(German Kim·50) 교수로 한국외국어대의 초청을 받았다.


지난 91년부터 미국·일본·러시아·중국·영국·캐나다 등 세계 30여개국을 드나들며 이주 한인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온 그는 이미 5년 전 연구 결실의 절반을 ‘한인 이민사 1권:19세기~1945년(The History of Korean Immigration:19th Century~1945)’이라는 책으로 내놓았다.


김 교수는 “각국 정부의 공식 이민 통계와 자료는 물론이고 구 소련 정부의 비밀문서까지 구해 조사했다”며 “그외에 각국 학자들과 교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수백 권의 관련 논문과 자료, 교포들의 증언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각국 정부의 공식 인구통계자료를 토대로 한국 이민 인구를 계량화했다”면서 “이 분야에선 아마도 최초의 연구일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가 각 국가에서 모은 자료는 백과사전 3000여권 분량. 자료 욕심에 있는 대로 논문을 복사하다가 자료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는 바람에 비행기 화물칸에 싣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어와 독일어·영어 등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김 교수는 카자흐스탄 국립대학에서 독일어와 역사학을 전공한 ‘한인 엘리트’이지만, 한편으로는 아픈 가족사를 지닌 ‘연해주 이민 1세대’의 자손이기도 하다.


“19세기 말 함경북도에 살던 증조부가 흉년과 기근을 못 이겨서 식구들을 데리고 연해주로 이주해 갔어요. 그랬다가 얼마 안 돼 일제가 들어서면서 가족들 모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지요. 어릴 때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며 고생했던 얘기를 해주신 기억이 있습니다.”


이민을 주제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선 김 교수에게 이민사가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김 교수는 “미국 220만명, 중국 200만명, 일본 64만명, 구 소련 52만명 등 우리만큼 해외 교포가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라며 “그러나 고통의 역사를 거쳐서 그만큼 성공한 해외교포를 가진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게 봐서 70년대 이전에는 독립운동이나 가난을 피하기 위해 만주나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자식교육이나 삶의 질 등이 중요한 이유로 자리잡으면서 캐나다나 호주 등이 선호하는 나라로 떠올랐죠.”


그는 올해 말 카자흐스탄에서 1945년 이후의 해외 이민사를 다룬 ‘한인 이민사 2권’을 출간할 계획이다. 또 같은 시기 지난 99년에 출간했던 ‘한인 이민사 1권’의 한국어판도 내고,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영어판과 일본어판도 출간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외국어대에서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서양교육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학부생들을 상대로 몇 차례 특강도 계획 중이다. 카자흐스탄인 부인과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김 교수의 또 다른 꿈은 해외 이민사를 완결한 뒤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료출처 : 조선일보
글=장준성기자 peace@chosun.com
사진=이기원기자 kiwiy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