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삼/재중동포 시인·칼럼니스트

북방의 한 도시, ‘코리안타운’을 가로질러 남북으로 큰 길 하나가 놓여있는데 학교 가는 날이면 아침, 저녁 어린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제각기 아이들을 북쪽으로 혹은 남쪽으로 데리고 가는 조선족 부모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헌데 요즈음 나는 다 같은 민족이지만 매일 같이 이 길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이를테면 길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는 아이들은 부모와 중국어로 대화를 하고 길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아이들은 우리말을 하는 것이다.

왜일까?
길 북쪽에서 아이들을 남쪽으로 데리고 가는 조선족 부모들은 자녀를 길 북쪽에 있는 ‘한족학교’에 보내기 때문이고 길 남쪽에서 북쪽으로 데리고 가는 부모들은 자녀를 남쪽에 있는 ‘조선족학교’에 보내기 때문이다.

만약 집에서 조차도 우리말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길 북쪽 ‘한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우리말을 한마디도 못하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어느 학부모가 길 북쪽 ‘한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그 아이는 우리말을 전혀 못했다.

길 북쪽 ‘한족학교’의 한 교사가 하는 말이다. 지금 ‘한족학교’에 다니는 조선족 학생들이 100명도 넘는다고 한다. 학생들이 날로 ‘고갈’되는 ‘조선족학교’의 경우 100명이면 학교 하나를 유지하고도 남음이 있다. 근래에 학생들이 대폭 줄면서 어떤 학교는 학생이 겨우 6~7명, 심지어 학생 4명으로 학교를 유지하는 곳도 있다. 허니 학생 100명이 전부다 ‘조선족학교’를 다닌다면 얼마나 큰 역량이 겠는가!

어느 조선족 교사의 말에 의하면 조선족 교사들마저도 자녀를 ‘한족학교’에 보내려는데 자신만 ‘조선족학교’에 보냈다가 혹시 부모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이의 미래를 그르치지나 않을까? 고민하면서 결단을 내리기에 앞서 일부러 ‘한족학교’를 둘러보았다고 한다.

조선족 학생들이 대거 몰려가는 그 학교를 알아보니 학교 설비나 교사 수준은 ‘조선족학교’에 비해 월등한데 학생들이 워낙 많은데다 조선족 학생들까지 몰려가 학급당 학생이 70명에 달하여 그야말로 콩나물시루같이 빼곡히 앉아 공부를 한다고 한다.

자신이 교사이기 때문에 교육학의 원리를 알고 있는 그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교사일지라도 한 교사의 정력으로는 그 많은 학생들을 고루 돌보지 못한다는 것, 그러면 공부 잘하고 특기있는 몇몇 애들을 제외한 나머지 애들은 자연히 교사의 중시와 관심밖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것, 그렇게 되면 학습 성적은 물론, 창의력이나 개성발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자신이 근무하는 ‘조선족학교’는 교사의 질과 학교 시설 등이 뛰어난 ‘한족학교’들보다 못하지만 학급마다 아이들이 많지 않기에 (약 20여 명) 교사의 따뜻한 손길이 학생 한명 한명을 보듬어 줄 수 있고 학교에서 과외로 진행하는 여러 가지 활동에 학생 전체가 참가할 수 있어 창의력과 개성발전은 물론, 학생들의 재능을 키워주는데 유리할 수 있다. 거기에 교사들이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하여 그들의 열성과 지혜로(대신 학생이 적어 경쟁력이 좀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얼마든지 ‘한족학교’에 다니는 조선족 학생들 못지않게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게다가 ‘조선족학교’는 ‘한족학교’에 없는 ‘조선어’라는 이 언어 하나가 더 있지 않는가. 언어가 점점 하나의 특기로 각광받고 있는 오늘, 그만큼 미래에 대한 넉넉한 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감을 가지고 자녀를 ‘조선족학교’에 보내고 있는데 지금 조선족학교에서 자기 자식은 물론 모든 아이들이 조선어, 한어, 영어까지 곁들여 배우면서 지력을 높이고(이 학교에는 영어과목도 개설되어 있다.) 학생들 모두가 학교에서 진행하는 여러 가지 행사에 마음껏 참가하여 여러 가지 흥미와 재능을 키우는 것을 보면서 자녀를 ‘조선족학교’에 보낸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한족학교’ 모두가 이 교사가 확인한 그런 학교 같지는 않을 것이고 우리의 모든 조선족 교사들이 다 이 교사 같지는 아닐 것이다. 어떤 ‘조선족학교’ 교사는 자신은 민족교육으로 밥을 먹으면서도 자녀들은 ‘한족학교’에 보낸다. 결국 학생이 없어 학교가 문을 닫으면 자신의 밥통조차 흔들릴게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그렇다고 그들을 나무라거나 질타할 수도 없다. 자식을 어느 민족학교에 보내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국민의 자유이고 인구가 적은 소수민족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자면 대민족 속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우선 공통어인 한어를 더 잘 해서 주체민족과 두터운 인맥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세인이 다 알고 있는 상식, 허니 어느 부모인들 제 자식 잘되고 잘 나가는 것을 마다하겠는가!

그러고 보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격으로 민족이야 어찌되든 내 자식 출세만 하면 된다는 쪽으로 생각하는 부모나 교사와 달리 출세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올바른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자각하여 실천에 옮기는 그런 교사와 학부모들은 어떤 분들인가. 어쩌면 이런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있어 오늘날 학생들의 결핍이라는 이 위기 속에서도 우리 ‘조선족학교’가 그 생명을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군가 조선어의 운명이자 그것은  바로 조선민족의 운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어느 한 명인은 “어떤 민족이 노예가 되더라도 그 민족의 언어를 지키고 있는 한 감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렇듯 한민족에게서 언어와 문자는 그 민족의 영혼과도 같은 것이다. 때문에 창해의 일족이나 다름없는 중국의 조선족들이 지금껏 중국사회의 일원으로 우수한 문화민족으로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정책에 힘입어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언어와 문자를 장악하게 한 교육의 힘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언어와 문자를 수호하려는 노력이 더 절실할 때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몇 년 전이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조선족들이 도시로 많이 진출했지만 조선족학교가 없는 청도, 위해에 가서 조선족 분교를 만들자는 한 양심 있는 교육자의 글을 보고 좋은 발상이라고 칭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코앞에 학교를 두고도 먼 ‘한족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교사와 학부모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어렵게 분교를 설립한들 과연 학부모들 몇 명이나 따라줄까?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늘도 코리안타운 길 북쪽 ‘한족학교’로 부모와 같이 가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비록 걷는 방향이 다르다고 하여 조선족이란 민족 성분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언어와 문자가 민족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할때 자녀를 다른 문자와 언어를 가르치는 학교에 보내는 것은 길이 갈라져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목적과 추구하는 바와 기대가 엇갈린 ‘갈림길’일 듯 싶다.

우리 민족은 이 땅에 와 살면서 참으로 많은 “갈림길”을 경험했다. 그때마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길을 선택하여 지금까지 민족의 정체성이 근근하게나마 유지하고 있다.

교육만해도 그렇다. 어쩔 수 없는 환경속에서 대부분의 교사들과 부모들이 민족교육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자녀를 자기 민족학교에 보내 민족교육을 살려왔다. 하지만 오늘날 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더더욱 교육에서 찾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한 ‘갈림길’ 현상이 이곳저곳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어쩌면 ‘월경민족’이라는 특수성 외에 더 심각해진 현실적인 위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갈림길’이 이제 이곳 코리안타운뿐 아닌, 더 많은 곳에 확산되어 더는 극복할 수 없게 된다면 이 땅에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