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용 / 논설위원

한 지인이 얼마 전 사석에서 들었다는 우스갯소리(?) 한 토막을 전해줬다. 한국인들만 모르는 세 가지가 있단다. 첫째,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사는지 모르는 것 같다. 둘째, 일본이 얼마나 대단한 강대국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셋째, 북한이 얼마나 악랄한 집단인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유머’로만 치부하기엔 심장(深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중 첫째 예시를 듣는 순간 한 달여 전 한 고위 경제 관료가 늘어놓은 하소연이 문득 떠올랐다. 요지는 이렇다. “최근 외국에서 열리는 경제 관련 주요 회의에 참석해보면 한국 관련 언급은 거의 없다. 경제 여건이 좋은 나라로 인식돼 관심 밖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 네덜란드도 그런 유(類)의 나라다. 간혹 한국 경제 얘기가 나오면 ‘아웃 오브 크라이시스(out of crisis·위기 밖)’라는 표현을 써 가며 호평한다.” 그의 얘기는 계속된다. “대다수 참석자가 그렇게 보는 건 우리나라 재정이 다른 나라에 비해 탄탄하고, 수출도 괜찮은 편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통되게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나라는 터키, 브라질 등이다. 그런데 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면 언론과 학계 일각 등에선 한국 경제가 결딴날 것처럼 야단이다. 걱정이야 할 수 있지만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적지 않다.”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일견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쏟아져 나오는 각종 경제 관련 지표들은 그의 넋두리를 무색하게 한다. 우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어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지난해보다 네 단계 떨어진 29위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GNI) 잠정치도 2만7340달러로, 9년째 3만 달러 벽 앞에서 방황하고 있다. 성장률도 2.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 성장률도 2.6%로 대폭 하향하면서 구조조정이 더뎌지면 더 큰 폭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계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청년실업률은 10%를 넘어 매달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잘못 대응했다간 우리 경제가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한국인이 모르는 세 가지 중 첫 번째는 ‘한국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르는 것 같다’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