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범 / 논설위원

중국을 방문한 한국군 관계자에게 중국군 고위관계자가 불쑥 말했다. “우리가 왜 당신들과 친하게 지내려 하는지 아는가? 당신들의 군 체계가 미국식이며 무기가 미국산이기 때문이다.” 이 인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몇 해 전 비공식 자리에서 오간 얘기지만 ‘아, 역시 중국은…’이라는 생각과 함께, 중국 외교의 냉혹함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중국 외교가 시나브로 성공하고 있다. 주요 2개국(G2)으로 성장해서가 아니라 난공불락 같았던 ‘혈맹(血盟) 한·미’ 사이에 틈새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드 문제부터 동남 중국해 군도(群島) 영토 문제까지 한국은 더 이상 ‘무조건 미국편’이 아니다. 중국의 노골적이고 집요한 사드 반대로 북핵은 논외가 되고 ‘사드를 포기해야 중국이 북한을 제재하고, 배치하면 중국의 북한 제재 의지를 꺾을 것’이란 여론까지 등장했다. 이는 박근혜정부와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동상이몽식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북·중 사이를 떼놓기 위해 친중국 노선을 걷는 한국과, 한반도에서의 미국 영향력 감소를 위해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려는 중국의 굴기(굴起)가 접점을 이뤘다. ‘사변(事變)’으로까지 불리는 박 대통령의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망루 외교’는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2270호 동참이라는 중국의 화답으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과연 윈윈일까.

한반도 ‘스테이터스 쿠오(세력 균형)’가 깨지고 있다. 비무장지대(DMZ)를 사이에 두고 북·중과 한·미가 대치하던 한반도는 정치적 프런트라인과 군사적 프런트라인이 동일했다. 하지만 미국의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정책과 이에 올라탄 일본의 ‘보통국가화’정책, 그리고 한국의 친중정책과 미묘해진 북·중 관계가 얽히고설켜 피아(彼我) 구분이 모호해졌다. 한국이 그 갈등의 중심이 됐다. 정치적 최전선이 DMZ 아래로 남하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형성을 암시한다.

강대국의 패권 싸움에 끼는 것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 말대로 결코 ‘축복’일 순 없다. 오히려 재앙에 가까운 현실이다. 그래서 대중(對中)외교가 성공할지 의문이 든다. 중국은 한·미가 바라는 대로 북한이 무너질 만큼 초강력 제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북한 붕괴 후 세계 최강인 미군과 국경에서 대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이 완충지대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최소한 평양-원산 선까지는 진주하려 들 것이다.

단언컨대, 중국은 북핵을 포기시킬 수 없다. 중국이 북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본다면 착각이다. 북한 지도부는 전폭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 중국에 내심 불신과 불만을 늘 가지고 있다. 상황만 허락하면 언제든 독자노선을 걸을 것이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친중정책은 한국 안보를 담보해 주지 않는다. 김정은은 필생의 목표인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탄·수소탄 및 대륙간탄도탄)으로 미국과 담판한다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은 이런 북한을 설득할 수 없다. 그렇다고 미국을 대신해 북핵을 상쇄할 만한 방어력을 한국에 제공할 리도 만무하다. 6자회담을 통한 북핵 해결을 주장하는 이면에는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저지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단언컨대, 중국은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다. 진나라 이후 중국 외교의 근간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이다. ‘인접국끼리는 불신 때문에 잘 지낼 수 없다’는 토마스 홉스의 가설보다 훨씬 원조다. ‘변방 오랑캐’가 강대해지면 늘 침략을 당했던 트라우마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악몽이 있다. 실제로 접경국 중 관계가 좋은 나라가 별로 없다. 티베트 같은 약소국은 무자비하게 굴복시키고 소련·인도와는 국경분쟁이 있었다. 베트남전 때조차도 월맹의 정규군 육성을 지원하지 않았다. 군사 강국이 되는 것을 염려해 게릴라전만 지원했고, 급기야 전쟁까지 벌였다. 전후에는 월맹과 월남의 영구 분단도 시도했다. 이런 전략은 한반도에도 적용된다. 북한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서도 안 되고, 지구상에서 사라져서도 안 된다. 14일 대북수출 금지 품목을 40여 종 추가했지만 수출입에 대한 제재도 죽지 않을 만큼만 할 것이다. ‘두 개의 한국’이 최상이기 때문이다. 박 정부가 대중 외교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